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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유와 여백을 두고 싸우기 위하여 - <남태령> 김현지 감독

<남태령>을 연출한 김현지 감독은 MBC경남에 몸담고 있다. <어른 김장하>가 그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그는 “다큐멘터리 외길 인생을 걷지 않았다”. 지역 방송국 PD로서 “하나만 할 수 없었던” 그가 신입 시절 처음 참여한 프로그램은 어르신들과 논밭에서 잔치를 벌이는 <얍! 활력천국>이었다. 40여분 방송에 자막만 300개씩 들어갔다. “그 감성이 지금의 광장문화를 설명하는 데도 잘 맞는다”고 돌이킨 김현지 감독은 12·3 비상계엄 2주 뒤 벌어진 남태령 대첩의 언어를 트위터에서부터 긁어모았다. 세대, 젠더, 계급을 횡단한 하룻밤의 연대를 일상으로 확장하려는 트위터리안들은 우선 유머를 놓지 않았다. 그건 김현지 감독이 추구하는 싸움의 기술이기도 하다.

- 전작 <어른 김장하>가 MBC 방영과 극장 상영을 거치며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을 받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어른 김장하>가 PD 김현지에게 남긴 영향은.

방송사 PD는 시청자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잘 없다. 개봉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 그들을 코앞에서 만나는 게 참 좋았다. 특히 2030 여성이 많았다. 이때 접한 훌륭한 개인들을 남태령에서 재회한 기분이다.

- 12·3 비상계엄 이후 일명 ‘남태령 대첩’으로 불리는 하루에 주목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나.

2024년 12월3일 이후 유튜브 채널 <엠키타카 MKTK>에서 ‘국민정신건강 회복프로젝트’라는 코너를 제작했다. 당시 트위터만 붙잡고 살았는데, 그 방송으로 나처럼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트위터만의 위트와 빠른 속도감을 나누고 싶었다. 그중 13화가 남태령을 다룬 에피소드였다. 전봉준투쟁단이 진주에서 출발할 때 전화 연결도 했던 터라 12월21일 밤 남태령을 지켜보며 서럽기도 했지만, 그 현장에서 연대한 사람들에게 반해버렸다. <어른 김장하>가 내게 남긴 일종의 답답함, 그러니까 ‘시청자들이 한명의 위대한 인물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무너지는 듯했다. 나부터 다시 뭐라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영화화할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시네마 달의 제안으로 여기까지 왔다.

- 영화의 포문을 여는 첫 인터뷰이로 ‘내향인’ 깃발 기수를 내세웠다.

나도 내향인이라 트위터를 보며 그분과 감정적으로 공명해왔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광장을 채웠다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었다. 나는 그분이 띠는 대표성이 있다고 봤다. 내향인 기수의 얼굴이 된 AI 다람쥐도 귀엽지 않나. (웃음)

-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인터뷰이가 연이어 등장한다. AI를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나뭇잎이나 그림자로 실루엣을 가리는 식의 배려도 눈에 띄더라.

여러 분야에서 대표성을 띤 트위터리안들을 섭외하려고 노력했고, 그들 중 다수가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안다. 전방위적으로 사이버불링이 이뤄질 수 있음을, 내가 그분들을 끝까지 지켜드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분들을 무대에 올리되 가려주고 싶었다. 인터뷰 장소도 그 점을 고려해 선정했다. 내향인 기수는 생활감 있는 집처럼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에스텔은 흑막의 아지트스러운 곳에서, 용주는 ‘정상성의 화신’과 같은 장소인 올림픽공원에서 찍었다. 피크닉 중인 가족들과 웨딩 촬영하는 헤테로 커플들 사이에 싱그러운 논바이너리 청년을 앉혀놓고 싶었다.

- 그들의 구심점은 남태령이지만, 출신지는 아산, 진주, 대전, 서울 등으로 다양하다.

나 말고도 많은 분이 남태령을 화두로 삼겠지만, 그분들이 다른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려면 긴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지역에 거점을 둔 만큼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 지역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

- 그 바람으로 ‘TK의 딸들’이라 자칭하는 팡자, 교수님 따까리, 유기체 아저씨를 모았나 보다. 앞선 인터뷰이들과 달리 왜 3인을 함께 불렀나.

내가 PK의 딸로서 증언할 수 있는데, PK, TK의 딸들은 고립돼 있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나아졌대도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들이 왁자지껄 기세등등하게 수다 떠는 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기를 세워주고 싶었다. 그들을 폐막식에도 초대했다.

- 말들의 향연만큼이나 텍스트로 전해지는 정보량도 상당하다. 전주환 전국농민회 부경연맹 사무처장이 ‘페미니즘’, ‘젠더퀴어’, ‘논바이너리’ 같은 표현을 입에 올릴 때는 그 옆에 거대한 자막을 띄웠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본 순간이라니, 조금은 예능처럼 보이길 바랐다. 사실 편집 초기에는 지금보다 예능적인 자막이 더 많았다. 외부 시사를 거치며 다듬었다.

- 초기에 예능의 톤을 더 직접적으로 구사하려 했던 까닭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할 때 쉽게 비장해지는 걸 보기 힘들다. 그러다 지칠 것 같아서 그렇다. 좀 덜 비장하게, 여유와 여백을 두고 싸워야 오래갈 수 있지 않겠나. 과거처럼 광장의 ‘사소한 문제들’을 표백해버리고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다. 이제는 좀 웃어가면서, 먹어가면서, 쉬어가면서 싸웠으면 한다.

- 러닝타임 1시간을 지날 무렵 그 유쾌한 필치를 한풀 꺾어가며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다시 그 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난 인터뷰이 대부분에게 남태령이 이끈 변화가 일상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남태령을 한편의 감동적인 신화로 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도 괜찮은 건지 물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안고 현실로 복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들 중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를 일궈 활동을 지속하는 분들이 있다. 남태령 정신을 알고 싶은 분들은 그 문을 두드려보시기를 권한다.

- 감독으로서는 위 질문에 어떤 답을 얻었나.

내가 듣기에도 너무 낭만적인 답을 하는 수밖에 없겠다. 대면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나아가자고 말이다. 옛날에는 이런 말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남태령>을 완성하면서 실감했다. 계속 만나다 보면 서로를 돌보고 싶어진다. 남태령에서 그 마음을 경험해본 청년이 많이 생겼다는 점에서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