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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현장의 틈 사이로 - <지축의 밤> 장건재 감독

장건재 감독은 규모에 맞춰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다. 영화 제작사 모쿠슈라에 함께 속한 김우리 대표, 윤희영 프로듀서와 받을 수 있는 제작 지원과 찍을 수 있는 장소 안에서 걸맞은 이야기를 찾고 함께할 동료를 모은다. 최선책을 궁리하는 과정에서 실무적으로 배우는 것들과 현장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순간 하나하나까지를 영화 만들기의 일부로서 존중한다. <지축의 밤>은 2025년 가을, 후지필름코리아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후지필름에서 ‘GFX ETERNA 55’라는 라지포맷 시네마 카메라를 출시했는데, 그 카메라로 찍은 영화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본격적인 준비는 그해 겨울부터 시작했고, 올해 3월에 5회차로 촬영을 마쳤다.”

<지축의 밤>은 영화 현장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극 중 촬영 현장은 영화 ‘파이널 라운드’와 ‘긴긴밤’ 두곳이다. 두 영화의 감독은 헤어진 연인 사이이고, 함께한 연애를 반영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필 같은 날, 가까운 곳에서 촬영하던 두 현장의 스태프들은 길에서 마주친다. 계약상 영화 안에 후지 카메라가 언급돼야 해서 현장 이야기를 떠올린 건가 짐작했으나 실제로는 무관했다. “바로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예전에 써둔 시나리오들을 살피던 중 2020년에 쓴 게 지금 규모와 여건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 선택했다.” 그때만 해도 “한 감독의 아주 작은 영화 촬영장”이 중심이었으나 수정 과정에서 “두 감독의 현장과 연애 이야기”로 확장됐다. 영화의 주요 장소가 고양시 지축지구와 3호선 지축역이 된 이유 역시 현실적인 로케이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축 근처 구파발 주민이다. 어디 멀리 가지 말고 주변에서 찍자고 생각했을 때 젊은 시절에 영화를 찍었던 곳이기도 한 지축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지축은 일산 초창기 신도시와 비슷한데 곧 리뉴얼을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지축역 같은 오래된 역사를 포함해 사라질 공간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가까이 살지만 깊이 아는 동네는 아니어서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게 많다. 어떤 작업을 하든 공부하고 탐색하는 과정 자체를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지축의 밤>에는 영화인 영화 속 흔한 주인공인 배우와 감독뿐 아니라 조감독, 프로듀서, 스크립터, 촬영감독, 동시녹음 기사까지 다양한 영화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한쪽에서 배우와 감독이 감정신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대기하던 촬영감독과 동시녹음 기사는 방금 찍은 신과 장비를 점검하거나 서로의 페이를 물으며 현실적인 시간을 보낸다. 낭만이 빠진 영화 현장은 더없이 생생하다. 현장의 다양한 얼굴을 담은 이유에 대해 장건재 감독은 “‘소설이나 그림이 주 소재인 영화에서 소설가나 화가가 주인공인 건 편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에 영화 현장을 다루기로 한 만큼 현장에서 쉽게 누락되는 것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평소 자신의 현장을 둘러보며 품었던 고민도 자연스럽게 녹였다. “내가 속한 현장을 규모가 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스태프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추어리즘에 가까울 것이다. 동료애에 의지해서 굴러가는 소규모 작업일지라도 여기에도 분명 노동이 존재하고 돈이 들어간다. 이 안에서 노동과 돈은 늘 첨예한 문제다. 친한 감독의 작품을 도와주기로 했을 때 하루에 시간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이동하며 드는 기름값은 누가 부담하는지, 다른 스태프들의 페이는 어느 정도인지 같은 고민들.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다.”

언제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촬영장. <지축의 밤>에서 작은 마찰은 1부 ‘파이널 라운드’에서 벌어진다. 지축역 역사 안, 민지(신예지)의 작별 인사를 현수(임현묵)가 받아주는 신에서 현수 역의 배우가 인사를 받는 연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감독(이승현)은 배우의 의견을 들어주느라 결정하지 못하고 딜레이가 발생하자 조감독(옥수분)의 속은 타들어간다. 감독의 우유부단함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으나 사실 장건재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영화 만드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인사를 받는다, 받지 않는다. 이런 행위 하나가 단순해 보여도 다음 장면은 물론 배우가 그다음 감정을 이어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감독이 배우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모습을 넣고 싶었다.” 이토록 무거운 역할을 실제로 수년째 수행하고 있는 장건재 감독은 버겁지 않을까. “진두지휘해야 하는 자리에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다행인 건 데드라인이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내린 결정들이 최선이라고 믿고 갈 뿐이다.

결국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지만 각 파트의 전문가가 모여 있는 작업이라는 것도 자리의 부담을 덜어준다.” 장건재 감독은 안선경 감독과 연기 워크숍 과정을 담은 영화 <최초의 기억>을 만들 만큼 연기에 대한 호기심을 오랫동안 가져왔다. 그만큼 <지축의 밤>촬영에 들어가기 전 “가능한 한 리허설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했고 배우들과 대화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하는 배우 겸 감독으로서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점도 많다. “결국 연기라는 행위는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라는 걸 처절하게 배웠다. 카메라 앞에 서면 시점이 달라지면서 평소와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게 된다.”

<지축의 밤>의 하이라이트는 당황스럽게 시작해 뭉클하게 끝난다. 우연히 마주친 두 현장의 스태프들은 어색함도 잠시, 인사와 함께 이 밤의 고충을 주고받고 그들 뒤로 양쪽에서 운행 중인 지하철이 교차한다. 만족스러운 교차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애를 먹지 않았나 싶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조감독이 ‘지금입니다!’ 할 때 카메라를 돌렸다. 현명한 조감독의 판단을 따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웃음)” 지난 3월 이종필, 윤가은 감독과 <극장의 시간들>을 내놓은 장건재 감독은 전주 일정을 마친 뒤 차기작 <배우의 시간>에 집중할 계획이다. “남도 영화 연기 워크숍에 관한 작품이다. 모든 것은 당일,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 결정되는 완전한 즉흥연기 작업을 담았다. 올해 개봉을 목표로 남은 계절 동안 부지런히 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