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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 <산산조각> 장기하

올해 전주영화제에 장기하가 참석한 이유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감독(<밀수>), 영화배우(<패스트 라이브즈> <바이러스>)이기도 한 만큼 어떤 게스트여도 어울린다. 작품을 알고 나니 좀 복잡하다. 특별상영 섹션에서 최초 공개된 단편영화 <산산조각>에서 그는 공동 연출자이자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고, 영화에는 그의 신곡이 흐른다. 들리는 얘기로는 올해 하반기, 이 곡들을 모은 장기하의 첫 솔로 정규앨범 《산산조각》이 나오고 영화와 음악에 앞서 한편의 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를 만나 <산산조각>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았다.

- 그러니까 이 모든 작업은 첫 정규앨범을 위한 프로젝트였던 건가.

애초부터 시, 영화, 음악의 순서를 거쳐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구상으로 시작했다. 우선 시는 내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두어달 동안 다듬어 완성한 시를 영상 제작팀 모래내거동수상자들(이하 모거수)에게 보냈다. 프로젝트 합류를 결정한 모거수 감독님들이 그 시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내 피드백을 반영한 최종고로 영화를 제작했다.

- 영화 <산산조각>은 하얀 기하(장기하)와 까만 기하(장기하), 실물 캐릭터 베개몬(이윤정)이 등장하는 일종의 실내극이다. 모거수의 아이디어였나.

다 감독님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다만 시를 전달할 때 이야기가 일반적인 기승전결보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구조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실내극에 맞는 세트를 지어 이틀 동안 촬영했고, 야외 장면을 위해 캐나다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편집본을 받기 전까지 몇곡을 만들지도 정해두지 않았다.

- 이후 녹음 작업을 위해 독일 함부르크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고.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외국에 나갈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곡 작업에 들어가면서 ‘좋은 소리란 뭘까’라는 고민이 점점 커졌다. 훌륭하다고 알려진 스튜디오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답을 찾아볼 시점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또 1차 데모를 동료들과 함께 들으며 이번 앨범은 이전보다 훨씬 공을 들여 완성도를 끌어올려보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시부터 음악까지 전체 작업 기간이 2년 넘게 걸렸다. 이런 방식의 작업은 처음이라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 큰 그림 파악을 마쳤으니 이제 영화 <산산조각>에 집중해보자. 하얀 기하와 까만 기하를 모두 연기했다. 각각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두 인물을 최대한 대비되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얀 기하는 흔히 말하는 ‘파워 J’다. 극 중에도 나오지만 정한 시각에 짜놓은 식단을 먹어야 하는 인간이다. 반면 까만 기하는 충동적이고 장난기 많은 모습을 상상했다. 다만 둘을 선악 개념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 대사 없이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쓰는 무성영화 연기는 이전에 해왔던 연기와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

정말 새로웠다. 촬영 전에 내 대역을 맡은 장홍석 안무가, 베개몬 역할의 이윤정 안무가와 두달 정도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했다. 초반에는 몸을 자유롭게 푸는 데 집중했다. 그래야 몸이 어떤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고 하더라. 후반에는 각 시퀀스에 필요한 동작을 익혔고 현장에서는 그동안 맞춰온 호흡을 그대로 수행했다. 준비하는 동안 <바이러스>를 함께한 김윤석 배우의 조언을 항상 마음에 새겼다. 선배의 말을 요약하자면 “뭘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였다. 과장이 필요한 연기였지만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고 제한 안에서 다양함을 찾으려 했다. 이번 일을 통해 배운 게 많다. 관성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 보니 몸에는 훨씬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은 것들을 해보는 게 좋은 자극을 준다는 것도.

- 두 기하 사이를 오가는 베개몬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소중함을 잊고 지냈던 존재.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베개몬’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감독님들의 설명을 들은 미술감독님이 베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지금의 형태로 구체화됐다.

- 앨범 공개 전이라 가사를 직접 언급할 수는 없지만 계절의 반복과 순환 이미지가 주요하게 쓰인다. 앞서 이야기가 순환구조였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고. 작업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시간이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반복된다고 느끼나.

그런 것 같다. 평소에도 인생은 뭘까, 시간이란 뭘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 거창한 의미라기보다는 일상적으로. 그럴 때마다 직선보다는 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모든 게 돌고 돈다고 여길 때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 죽음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산산조각>의 장면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고민할 때 특히 더 그랬다. 죽음을 생각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 언어를 비트는 작업은 꾸준히 해왔지만 이번에는 유독 말을 예민하게 들여다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언어도 내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직업병일 수 있는데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 사람의 화법을 잘 캐치하는 편이다. 친한 친구들이 반복적으로 쓰는 단어가 뭔지도 다 안다. 예를 들면 사실관계를 따지는 상황이 아닌데도 꼭 “사실은”으로 말을 시작한다든지. 어떤 단어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들어갔을 때 문장에 독특한 리듬이 생기는데 그게 참 재밌다.

- 앨범 발매 전까지 남은 일정은 무엇인가.

95% 이상 끝났고 앞으로 두달 정도는 디테일을 다듬을 예정이다.

- 연기하는 장기하를 가까운 시일 안에 볼 수 있을까.

검토 중인 작품은 없지만 연기는 계속하고 싶다. 촬영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연기와 음악 모두 결국 언어를 재료로 삼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 무성영화에서 1인2역을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예전에 시트콤(<감자별 2013QR3>)과 여러 영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으니 무엇이든 쓸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