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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00%의 앤 해서웨이, <오디세이>를 통해 다시금 전성기를 구가 중인 배우 앤 해서웨이에 대하여

2012년, 앤 해서웨이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레미제라블>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해다. 이듬해 오스카를 비롯해 모든 TV 중계 시상식은 <레미제라블>의 앤 해서웨이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겼다. 2026년, 앤 해서웨이에 관한 기사가 다시 쏟아진다. 예정된 영화 차기작 5편이 모두 같은 해에 나와서다. 그 편람도 다양하다. 모두가 고대한 프랜차이즈의 속편과 흥행보증수표의 블록버스터, 괴짜 아트하우스 감독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 A24가 배급하는 호러 뮤지컬과 아마존 및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심리 스릴러까지. 이중 <오디세이>가 공개되자 모든 외신이 앤 해서웨이를 찾았다. 언론은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를 두고 ‘<오디세이>의 심장’이라 상찬했고, <버라이어티>는 재빨리 “유니버설 픽처스가 내년 오스카를 위한 유권자 포섭에 들어갔으며 앤 해서웨이를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중 어느 쪽으로 캠페인할지 고심 중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대부분의 전문지가 ‘앤 해서웨이 베스트 퍼포먼스10’과 같은 필모그래피 돌아보기 기사를 발행했고, 이변이 없다면 그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와 <오디세이>로 2026년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릴 배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씨네21>도 2012년 앤 해서웨이에 관한 긴 배우론을 썼다. 2026년, 우리도 다시 한번 앤 해서웨이를 말하려 한다.

은근할 수 없는 정확도

<오디세이>

앤 해서웨이는 정확한 연기를 하는 배우다. 그의 페넬로페도 명확하다. 남편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의 빈자리가 클 땐 고독하고,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가 철 모르는 소리를 할 땐 분노한다. 손님을 빙자한 구혼자들의 추태가 도를 넘을 땐 당연히 신경질을 내고, 왕비의 권위를 내세울 땐 마땅히 장엄하게 군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라며 연회 주최의 정당성을 천명하거나 “남자만 왕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지난 20년간 왕좌를 지킨 건 나야. 난 복수가 아닌 오디세우스를 원해”라며 분개할 땐 관객 또한 영화 속 톰 홀랜드의 리액션처럼 별다른 수사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는 읽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입이 떡 벌어지는 테크니션의 기예나 미묘(Subtle)하게 감정을 누출하는 통칭 내면연기에 비하면, 어쩐지 단순한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데 그 100%의 단순함이 앤 해서웨이 연기의 미덕이다. 마치 복수정답이나 열린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 시험 문항처럼, 감정의 길이 분명한 상황이라면 배우가 내려 마땅한 정답을 이견 없이 납득시킨다. <레미제라블>의 판틴도 그랬다. 그는 판틴의 기구한 삶을 그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모두 잘랐고 체중을 15kg 감량했다. 모범적이고 공정하기까지 한 절차다. 그런데 모두가 앤 해서웨이의 <I Dreamed a Dream>에 탄복한 까닭은 과정을 넘어 결과를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판틴의 절망과 울분이 훌륭한 가창력에 실려 명장면을 만들어냈고, 라이브 가창과 극단의 클로즈업이라는 영화의 방법론이 적어도 이 넘버, 이 연기에 한해서 쓸모가 컸음을 입증해냈다. 거꾸로 묻는다. <I Dreamed a Dream> 없이 <레미제라블>을 말할 수 있을까? 언급한 연출 방식 이외의 옵션이 판틴에게 유용했을까? 차라리 삭발과 체중 감량에서 대안을 찾는 편이 쉽겠다.

<아마겟돈 타임>

큰 눈과 큰 입. 길고 오똑한 코. 앤 해서웨이의 노골적인 눈, 코, 입은 김혜리 기자의 표현처럼 “1980년대 미스 USA풍의 이목구비에 비밀이라곤 당최 없어 보이는 분위기”(<씨네21> 886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만든다. 토크쇼나 인터뷰 기사 속 앤 해서웨이를 보면, 언제나 크게 웃고 자주 운다. 감정을 드러내는 모든 창구가 선명해 거짓말이 100% 불가능해 보이는 얼굴. 배우는 남을 속이는 일이 직업의 일부임에도 앤 해서웨이(와 그가 분한 캐릭터)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도무지 속일 수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 속 루린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가 에니스(히스 레저)에게 잭(제이크 질런홀)의 부고를 전할 때, 루린은 원작 소설의 표현처럼 “눈보다 더 차가운 여자”가 되고자 하지만 앤 해서웨이의 프리즘을 거치면 안간힘이 무색하게 애써 매장한 진실이 흘러 넘친다.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 속 에스더도 마찬가지다. 교장선생님 앞에서 되도 않는 이유를 들며 아들 폴(마이클 뱅크스 레페타)을 변호할 때, 아버지 애런(앤서니 홉킨스)의 병세를 알아챘지만 폴 앞에서 짐짓 괜찮은 척 굴 때. 앤 해서웨이는 그 복잡한 심경을 꾸역꾸역 속으로 밀어넣는 걸 ‘다 보이게’ 연기한다. 도무지 은근할 수 없는 배우의 태생적 속성을 배역의 성격으로 구축해내는 것이다. 오차 없는 이목구비 운용에 멜로드라마틱한 감정 표현, 여기에 더해진 뛰어난 가창력은 고전기 할리우드 스타에게 요구되던 덕목이기도 하다. 문화 웹진 <슬레이트>의 아이삭 버틀러는 <오디세이>를 기점으로 앤 해서웨이의 연기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가 1920년대에 활동했다면 스타가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기를 기대하지 않았던 관객들을 위한 훌륭한 스튜디오 영화를 수십년간 찍었을 것이다. 더글러스 서크와 작업했다면 지금보다 더 큰 성과를 이뤘을 것이다. 바버라 스탠윅 같은 앤 해서웨이의 연기 양식이 빌리 와일더를 만났다면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 그의 연기가 영화 수업의 교보재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들은 앤 해서웨이가 열연한 후 바로 컷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숨을 고르는 순간까지 꼭 숏에 포함시킨다. 짐작건대 그건 무표정이 아니라, 지나간 감정의 여진을 통째로 앓는 또 다른 연기다. 그 침묵이 여운을 배가한다.

<콜로설>

하지만 앤 해서웨이는 훈련된 테크니션인 동시에 미묘한 내면연기에 능한 배우이기도 하다. 수차례 언급한 대로 앤 해서웨이는 절륜한 가창력을 지녔고 뮤지컬영화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의 축하 공연과 토크쇼에서 노래를 할 때마다 화제를 모은다. 앤 해서웨이는 에미상에서 ‘최우수 목소리 출연상’도 받았다. <심슨 가족> 시즌21에 목소리 출연해 를 과할 정도로 잘 불렀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가 음정을 익히듯 악센트를 학습하고 종종 노래하듯 대사를 뱉는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영국인 배역이 생각보다 많은 이유도 악센트 소화력에 연유한다. 더욱이 앤 해서웨이는 성대모사와 모창에도 능하다. 배우가 인터뷰 현장에서 작업기를 언급하며 동료 영화인을 성대모사하는 일은 부지기수인데도, 앤 해서웨이는 매슈 매코너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말투를 거의 복제해내 다수의 ‘짤’을 생성하기도 했다. 이 모사력은 당연히 스크린 연기에서 명중한다. 예컨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 셀리나 카일이 복면과 코스튬을 썼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연기는 미세하게 다르다. 앤 해서웨이는 고양이처럼 인중을 늘이고 입매를 누인다. 그러면서 브루스 웨인에서 배트맨으로 변할 때의 크리스천 베일 특유의 인토네이션을 고스란히 흉내낸다. 한편 앤 해서웨이와 평단 모두가 지금까지 필모그래피 최고의 연기라고 꼽는 <레이첼 결혼하다>와, 앤 해서웨이가 기회가 올 때마다 ‘과소평가받은 작품/연기’로 호명하는 <콜로설>에선 그의 미묘한 연기를 맘껏 즐길 수 있다. 공교롭게 두 작품에서 앤 해서웨이는 중독자로 분했다. 역기능적 심리 상태를 연기할수록 앤 해서웨이는 외적 표현을 절제한다. 대신 의존력과 통제력이 속에서 격하게 맞붙고 있고, 그 와중에 어떻게든 관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내비친다. <레이첼 결혼하다>의 초반, 킴이 재활원에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짐짓 허세를 부릴 때, <콜로설> 속 글로리아가 서울(!)을 공격하는 괴수와 자신이 동기화됐음을 자각했을 때. 앤 해서웨이는 고요히 강하다.

혐오를 통과하다

2013년 오스카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앤 해서웨이. 사진출처 GettyImagesKorea

앤 해서웨이의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해서헤이트’(Hathahate)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추측건대 근래 앤 해서웨이가 유튜브 채널 에서 “많이 힘들었다”라고 고백한 그 시기다. 단 한번도 톱스타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그를 두고, 2010년대에 전세계적 비방이 이어졌다. 조롱의 근거는 여성혐오다. 이제 막 20대 말, 30대 초를 지난 여성배우가 지나치게 야망을 뽐내고, 지나치게 매사에 열심이며, 지나치게 가식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감격에 찬 오스카 수상 소감 이후 <글로브 앤드 메일> 등의 매체마저 해서헤이트에 동참했다. 업계조차 여론에 떠밀려 앤 해서웨이 캐스팅을 주저했다. 이때 크리스토퍼 놀런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이어 <인터스텔라>에 앤 해서웨이를 기용한다. 훗날 앤 해서웨이는 모든 지옥이 지나간 이후 “크리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커리어의 동력을 잃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인터스텔라>와 <인턴>의 연이은 흥행, 페미니즘 리부트가 도래해서야 해서헤이트의 위험성을 깨달은 자성의 목소리가 할리우드에 울려 퍼졌다.

앤 해서웨이는 늘 페미니스트였다. 데뷔 초부터 여성의 욕망과 여성배우의 배역 한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액션 연기 대신 몸매 관리 비법에만 관심을 갖는 언론을 향해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토로했다. 이 행보는 해서헤이트를 통과한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앤 해서웨이는 동료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위민 인 할리우드 행사, 유엔 주최 여성의 날 행사마다 연단에서 연설했고, 타임스업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나 트럼프 정부의 혐오 정책 또한 강경하게 비판 중이다. 근래엔 <원 데이>를 연출한 여성감독 론 셰르픽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앤 해서웨이가 무례하게 군 일은 없다. 오직 “그 시기의 내가 내면화된 여성혐오를 가지고 감독님을 대했을까봐 두렵고 후회된다”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앤 해서웨이의 필모그래피가 이 행보를 뒷받침한다. 자신의 공적 ‘여배우’ 이미지를 가지고 놀던 <오션스 8>, 정상성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줄곧 탐구한 <더 허슬> <아일린> <마더스> 등의 여성 투톱물이 그 예다. 그리고 프라임 비디오 최대 흥행작이자 해리 스타일스의 팬픽을 원작으로 한 <너란 개념>의 제작과 주연을 겸하며 40대 여성배우가 여전히 로맨틱코미디의 흥행을 견인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입증해냈다. 현재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인 앤 해서웨이는 출산 이후 오스카 캠페인과 <베러티> 홍보, 그리고 <프린세스 다이어리 3>제작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여전히 앤 해서웨이는, 100%로 달린다.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