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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공포영화 연출 데뷔 문법이 바뀌었다 - 호러영화 연출한 유튜버 출신 감독들, 데뷔부터 흥행까지

<백룸>

국내 예고편을 보다가 두눈을 비볐다. 블룸하우스와 그 자회사인 아토믹 몬스터 프로덕션을 가리켜 ‘<백룸> 제작진’이라는 문구를 쓴 게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서가 신경 쓰였다. 2010년대를 풍미한 호러 프랜차이즈의 신작을 소개하기 위해 최신 화제작을 언급하는 데서 격세지감을 느꼈달까. 어찌 되었든 <백룸>은 <인시디어스>와 나란히 거론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지난 5월 개봉 이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1천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장편 데뷔작으로 4억달러에 육박하는 월드와이드 흥행수익을 거두어들인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120만 관객을 만났다.

거칠어도 거침없는, 디지털네이티브 세대의 일격

케인 파슨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백룸>을 연출한 케인 파슨스 감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바로 ‘2005년생 유튜버’다. 이제 갓 성인이 된 그는 할리우드에서는 신인일지 몰라도 온라인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3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Kane Pixels>를 운영하며 <백룸> 세계관의 시초가 된 영상들을 비롯해 게임 <포털>, 만화 <진격의 거인> 등을 다룬 팬메이드 비디오를 꾸준히 업로드해왔다. 8월20일 기준으로 그의 채널에서 조회수 1천만회 이상을 기록한 영상은 12편에 달한다. <백룸> 공식 예고편을 제외하고 말이다. 유튜브는 일찌감치 그만의 극장이자 플랫폼이었던 셈이다.

케인 파슨스 감독과 비슷한 경로를 거쳐 올해 데뷔작을 공개한 <옵세션> 커리 바커 감독, <아이언 렁> 마크 피슈바크 감독을 향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옵세션>은 제작비 75만 달러 대비 약 500배 이상, <아이언 렁>은 제작비 500만 달러 대비 약 10배 이상의 수익을 달성했다. 이로써 <옵세션>은 북미 배급을 맡은 포커스 피처스의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도 등극했다. 세 감독을 한데 묶어 ‘유튜버 출신 영화감독’ 자체를 조명하는 시선도 늘었다. <백룸>의 프로듀서 코리 애덜슨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긍정했다. “유튜브는 이제 90년대의 선댄스영화제 같은 곳이다. 여기야말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온상이다.” 포커스 피처스의 제작·수급 총괄 키스카 힉스의 발언은 그 근거를 뒷받침한다. “그들이 유튜버든 아니든, 젊은 필름메이커들은 더 이상 정전을 참고하거나 고정관념에 얽매여 작업하지 않는다. 디지털네이티브 세대와 협력하면 비디오게임부터 인터넷 괴담까지 예상치 못한 다양한 요소들을 영화에 접목할 수 있다.”

커리 바커

케인 파슨스, 커리 바커, 마크 피슈바크 이전에 떠오른 필리포 형제의 케이스만 봐도 그러하다. 대니 필리포, 마이클 필리포로 이뤄진 이 쌍둥이 감독 콤비는 12년 전부터 운영한 유튜브 채널 <RackaRacka>에 <포켓몬스터>나 <세서미 스트리트>와 같은 애니메이션은 물론 <해리 포터>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의 캐릭터를 이용한 하드코어 영상들을 노출해왔다. 연기도 직접 했다. 주로 5분이 채 안되는 이 영상들은 작금의 숏폼 열풍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단발성의 자극을 선사한다. 만듦새는 거칠어도 순간적인 집중을 유도하며 치고 빠지는 능력만큼은 Z세대를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싶은 스튜디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2023년 개봉한 그들의 데뷔작 <톡 투 미>는 제작비 대비 2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려 속편 제작까지 확정지었다.

케인 파슨스와 필리포 형제가 2차 창작의 연장선상에서 호러를 구사해왔다면, 커리 바커 감독은 스케치 코미디에 좀더 강점을 보이는 유튜버였다. 그 또한 영상에 출연했는데, 친구들과 동네를 오가며 실없는 말싸움과 과격한 장난을 일삼는 게 주 콘텐츠였다. 그러다 2024년 단돈 800달러를 들여 만든 1시간 분량의 단편 공포영화 <밀크 앤 시리얼>이 레딧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탔다. 처음에는 러닝타임 80분의 장편에 가까웠으나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에 실패한 이 작품을 커리 바커 감독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that‘s a bad idea>에 푼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였을 무료 배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더 큰물로 이끌었다. 그렇게 완성한 그의 첫 영화 이 호러와 코미디의 절묘한 조화를 일군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구독자를 극장으로, 감상을 체험으로

마크 피슈바크.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한편 마키플라이어(Markiplier)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마크 피슈바크 감독은 공포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으로 이름을 알렸고,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인 <아이언 렁> 또한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삼았다. 그의 행보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3800만명이라는 엄청난 구독자 수를 등에 업고 상영관을 확대해나간 데 있다. 그는 스튜디오가 주도하는 전통적인 마케팅 플랜에 의존하기보다 자체 배급과 홍보를 택했다. 팬들에게 “자신이 사는 지역 영화관에 <아이언 렁> 상영을 요청해달라”고 부탁했고, 이게 먹혔다. 그의 구독자들은 당초 200개 정도에 불과했던 의 북미 상영관을 3500개까지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작품 안팎으로, 위 영화들은 관객을 모으는 비용과 방식에 도래한 변화를 증명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설명보다 체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인내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강렬한 심상을 던져주거나 끊임없이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백룸>의 세계관을 이룬 유튜브 영상들만 봐도 그렇다. 케인 파슨스는 컨셉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 텅 빈 공간, 불안정한 사운드,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을 조합해 시청자 스스로 세계를 탐구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청 메커니즘은 극장에서도 도움이 된다. 온라인에서 익힌 이미지들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와 결합할 때, 관객은 양쪽을 저글링하는 창작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상 자체를 하나의 체험으로 여길 수 있다. 이는 왜 하필 호러 장르에서 유튜버 출신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지 또한 대변한다. 호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동시에 인터넷 문화와 궁합이 좋다는 특징이 있다. 괴담, 음모, 고어의 성지이자 대피소로서의 인터넷은 오래전부터 호러의 금맥이었다.

마이클 필리포, 대니 필리포(왼쪽부터).

다만 유튜버 출신 감독들의 성공 사례가 아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유튜브는 영화제나 영화학교처럼 하나의 등용문에 불과하다. 인기 유튜버라는 배경이 투자를 담보하지도, 흥행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영화 및 대중문화 평론가인 제시 하센저는 <가디언>에 이렇게 적었다. “유튜브는 트레이닝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그 자체로 끝없는 통로와 ‘백룸’을 지닌 플랫폼이다. 오히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수많은 영화 제작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MTV와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영화 <브링 허 백>으로 새 성적표를 받은 필리포 형제처럼 케인 파슨스, 커리 바커, 마크 피슈바크 감독 또한 유튜버로서 얻은 관심 너머에서 차기작을 평가받을 것이다. 분명한 건 그들의 등장이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영화계를 긍정적으로 이완시켰다는 사실이다. 백지상태에서 관객을 모아야 하는 영화가 아닌 제작 단계에서부터 관객을 확보하는 영화, 관객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적극적인 2차 창작자로 상정하는 영화의 잠재력을 제대로 알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