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 힌지(Hinge)는 2024년부터 Z세대 D.A.T.E(Data. Advice. Trends. Expertise.) 보고서를 발표해왔다. Z세대로 분류되는 앱 사용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 동시대 연애 양식을 조망하고, 더 나은 교제를 위한 팁을 건네는 식이다. 첫해 그들이 주목한 키워드는 ‘거절’(rejection)이다. 다양한 성 지향성을 가진 1만5천여명의 표본 중 90%는 사랑을 찾고 싶다고 했지만, 56%에 달하는 응답자가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관계를 시작조차 못해봤다고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소리라 그랬을까. 이듬해 보고서에서는 아예 Z세대와 밀레니얼간의 격차도 명시했다. 관계 맺기에 장벽이 되는 요인으로 거절당하는 공포, 창피당하는 공포를 각각 꼽은 인원을 더하면 Z세대가 61%, 밀레니얼이 46%라 유의미한 차이가 느껴진다. 행동심리학자, 부부상담사 등으로 이뤄진 힌지의 전문가 집단은 이렇게 조언한다. “이제는 Z세대가 거절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잠재적인 파트너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밝혀야 할 때다.”
Z세대 감독이 만든 Z세대 주인공들의 영화 <옵세션>은 그걸 못해서 벌어진 재앙에 관한 이야기다. 거절에 대한 회복탄력성?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밝히기? 그런 건 베어(마이클 존스턴)라는 이름의 20대 초반 남자애가 짝사랑하는 동안 장착해둔 자세가 아니다. 그는 음반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니키 프리먼(인디 내버레티)을 좋아하지만, 그뿐이다. 화끈하게 고백할 용기가 없을뿐더러 둘만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에도 어설퍼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답답한 형국이 진득키는 베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선택권을 박하게 이어지는 도입부를 지나면 진짜 호러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베어가 니키의 선물을 사려고 들른 잡화점에서 무심코 구매한 ‘원 위시 윌로’(one wish willow)가 불씨를 지피는데, 믿거나 말거나, 부러뜨리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뭇가지를 꺾어버린 베어는 니키가 떠난 자동차에 앉아 빈다. 니키 프리먼이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날부로 프리먼양은 더 이상 프리하지 않다. 베어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베어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굴며 각종 기행을 일삼는다. 이 무슨 남성 복종(male submissive) 판타지인가 싶다가도 BDSM의 테두리를 훌쩍 벗어나 일상을 침범하는 연인을 감당하는 건 매우 겁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옵세션>은 이처럼 애인의 집착이 빚은 공포라는 하이 컨셉을 밀어붙이다가 기막힌 틈 하나를 낸다. 주문의 효력이 간헐적으로 풀리면서 니키가 혼란스러워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조차 자신이 왜 이러는지 헷갈리는 순간을. 의도가 다분한 삑사리는 피해자성을 전복하기에 이른다. 바깥에 드러나는 가해자는 니키일지라도 사태의 원흉은 베어라고 말이다. 이 망한 연애의 시발점에는 베어의 무지, 무기력, 무책임이 있었고, 니키는 베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이용당했다.
<옵세션>은 또래 문화나 젠더 이슈를 적극적으로 논평하는 데까지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겉보기에는 장르적인 재미에 충실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지난 5월 북미 개봉 이후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한명의 캐릭터를 초과한 세대의 증상을 엿본 듯 열띤 토론을 펼쳤다. 진정한 빌런이 누구인지를 다투는 것은 물론 영화를 성적 동의(sexual consent)에 얽힌 호러로 독해하는 반응도 잇따랐다. 어디까지가 합의이고, 어디까지가 통제인지 모호한 가운데 관계를 지속하는 불안을 영화가 은유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미투(me too) 이후를 통과한 세대의 사회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 또한 니키를 궁극적인 피해자로 본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 고개를 들었다. 국내의 경우만 해도 경찰에 입건된 스토킹 범죄가 최근 3년간 28% 증가했다. 가해자는 남성이 여성의 3배꼴이지만, 여성 비율도 갈수록 늘고 있다. <옵세션>의 묘사가 문제적으로 읽힐 여지는 충분하다.
<옵세션>은 어디까지나 장르영화다. 그리고 사랑은 원래 무섭다. 사람을 흔들고, 망치고, 때로 죽이기도 한다. 그걸 아는 채로 뛰어드는 게 얼마나 지겹고도 낭만적인지 아는 이들은 이 영화의 가학성에 피식피식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 웃음의 반대편에는 슬픔도 도사리고 있다. 나를 잃는 슬픔. 더불어 사랑이라도 붙잡아보고 싶을 때의 슬픔. 어쩌면 이 영화는 니키와 베어를 향한 판단보다 포용을, 비난보다 공감을 부추긴다. 니키를 사로잡기 전 베어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상상해보라. 니키가 마지막에서야 짓는 표정은 또 어떤가. 그 참혹한 잔상들과 함께 남겨질 당신을 위해 커리 바커 감독의 인터뷰를 덧붙인다. 화상으로 만난 그는 벌써 차기작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돌입했다. 예상보다 담백하고, 논쟁보다 산뜻한 그의 답변들이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