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 무섭되 친숙하게 - 요즘 관객이 호러 무비를 가지고 노는 법

<메간> 시리즈의 프로모션을 위한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올라온 영상. 메간이 춤을 춘다. 인스타그램 @m3gan

호러영화가 무섭다고만 해서 잘되는 시대가 아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유희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지난 몇년간의 대표적 예시는 <메간> <메간 2.0> 시리즈였다. AI 인형 ‘메간’이 괴기한 살인 기계로 돌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인데, 주인공 메간의 다소 엽기적인 댄스 신이 불꽃을 쏘아올렸다. 무섭지만 친숙하고 웃긴 메간의 모습을 활용하여, 유니버설 픽처스는 틱톡을 위시한 X, 인스타그램 등을 지배해갔다. 2023년 1월 <메간>이 개봉했던 시기 틱톡의 ‘메간’ 해시태그(#m3gan) 콘텐츠의 조회수는 10억회 가까이였고, <메간 2.0>까지 이어진 현재엔 60억회를 넘기고 있다. 메간과 함께 춤추고 이야기하고 노는 모습은 관객들을 극장으로까지 불러들였다. <메간>은 1200만달러의 제작비로 1억8180만달러를 벌며 대흥행했다.

틱톡에서 메간이 케이팝 걸그룹 캣츠아이와 영상통화하는 컨셉의 프로모션 영상. 조회수 400만회를 기록. 틱톡 @M3GAN 2.0

다만 <메간 2.0>은 흥행에 고배를 마셨다. 제작비 2500만달러로 3900만달러 정도를 버는 데 그쳤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호러는 너무 많이 소비될수록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장르물의 대가 듀나 평론가는 7월의 신간 <공포의 문법>에서 다음과 같은 공포의 습성을 밝혔다. “예술 작품이 주는 공포는 늘 수명이 있습니다. (중략) 예술 작품으로 인한 공포는 첫 감상 이후 어느 정도 자극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첫 감상은 꼭 직접 감상일 필요도 없지요.” 틱톡과 인스타그램으로 이미 수없이 메간의 모습을 보고, 영화를 간접경험했다면 공포물의 힘은 효력을 잃기 마련인 것이다. 요컨대 호러 무비의 성공 여부는 무섭되 친숙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익숙하지 않은 선에서 일어난다.

극장 안팎으로 퍼지는 놀이

케인 파슨스의 유튜브 영상 ‘The Backrooms(Found Footage)’를 패러디한 ‘Shrek in Backrooms?(Found Footage)’ 영상. 백룸의 공간에서 슈렉이 춤추고 있다. 조회수 1043만회. 유튜브 채널 < Madkeanu >

하여 중요한 것은 영화 마케팅측의 일방적 공급이 아니라 수요자가 직접 뛰어드는 유희에 있다. 무섭되 친숙한 무언가를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계속하여 변주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케빈 파슨스의 <백룸>은 그 태초가 유튜브였던 만큼,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패러디되면서 IP의 인기를 지속한 대표적 사례다. <백룸>의 비어 있는 무대 공간에 <슈렉> 시리즈의 슈렉이 있다든지, 영화를 카툰 형태로 재구성한다든지 하는 팬들의 놀이가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 <백룸>을 카툰 그림체로 패러디한 “Backrooms Movie” ‘Recap Cartoon’ 중 일부. 유튜브 채널 < Hrundik >

한국도 비슷하다. 올해 가장 성공한 호러 무비 <살목지>는 또 다른 양상의 유희를 보여줬다. 영화 속 무시무시한 괴담이 펼쳐졌던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살목지에 관객들이 직접 찾아가 방문 인증숏을 남기는 유행이 퍼지면서 영화의 인기를 견인했다. 예산군은 영화 상영 후 하루 수백명의 인파가 살목지를 찾았다고 밝혔다. 두려움의 근원을 놀이로 전유해버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호러 무비를 가지고 노는 방법이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발생하고 있다.

‘[패러디] 호프 촬영썰’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 작중 외계인 인 마베이요가 배우 조인성과의 촬영 비하인드를 푼다. 영상 캡션엔 “재미로 봐주세요. 문제 시 삭제하겠습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말 그대로 ‘재미’ 의 행위로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 Hone >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에선 호러 무비를 일종의 2차 창작 재료로 쓰는 일이 더욱 빈번해졌다. 최근엔 <호프>가 온라인 유희의 주요 대상이었다. 작중에선 인간들을 이리저리 무참히 살해했던 외계 종족들이 인터뷰 콘텐츠에 등장하고, <호프>의 특정 시퀀스를 게임으로 재구성하는 등의 놀이가 유행했다. AI 콘텐츠 제작자인 류기덕 아이로믹스 대표가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영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영화 <호프> 한줄 리뷰. ‘이거 완전 TPS(3인칭 슈팅) 게임이잖아?’ 다들 감독의 숨겨진 텍스트를 찾느라 바쁘신데, 전 AI로 후다닥 만든 게임 데모 영상으로 리뷰를 대신합니다”라는 말로 동시대 호러 무비의 소비 양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

<호프> 속 범석(황정민)과 바미기르(캐머런 브리턴)의 전투 신을 FPS 게임으로 재구성한 AI 영상. 인스타그램 @jadekeymusic

호러 무비의 관습과 이미지는 이제 나올 만큼 나왔다. 이 시대 호러 무비의 책무이자 성공 비결은 관객에게 유희의 여지를 남기는 일로 보인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면, 공포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끊임없이 소구하기 위해서 공포 사이의 틈이 필요하다. 물론 그 틈을 수용하고 권장하는 영화계의 열린 태도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