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넘게 유튜브 채널 <that‘s a bad idea>에 짧은 영상을 업로드해왔다. <옵세션>을 이룬 아이디어들이 100분 넘는 장편영화로 엮일 수 있겠다는 판단은 어떻게 내렸나.
그동안 단편을 많이 만들었으니, 단편과 장편의 차이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옵세션>의 시초가 될 만한 단편 시나리오를 썼다. 남자가 여자에게 집착하든, 여자가 남자에게 집착하든,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게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를 찍을 생각만 해도 설레는 시나리오였으나 그냥 방치하고 있었는데,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를 보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심슨 가족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원숭이 발을 산 뒤로 모든 게 엉망이 되는 내용이었다. 집착이라는 테마에 소원이라는 장치를 적용하면 장편이 될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 <옵세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1.5:1에 가까운 화면비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핸드폰으로 사진 찍을 때와 유사한 화면비다. 중요한 건 화면 속 인물의 헤드룸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었다. 머리 위 공간이 넓을수록 관객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매 프레임이 사진처럼 보였으면 했다. 카메라를 고정한 채 찍은 사진 같은 영상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랐다.
- 소원을 들어주는 ‘원 위시 윌로’(one wish willow)를 손에 넣기 전, 베어는 니키가 “로맨스가 아닌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는 바람을 듣는다. 영화의 핵심을 암시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경고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사랑과 욕망, 사랑과 로맨스는 서로 다른 주제다. 니키는 그 차이를 또렷하게 알고, 그것을 자신만의 작품으로 구현하고 싶어 하는 여자다. 원래는 니키가 무얼 사랑이라 생각하는지, 그것이 로맨스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더 오랫동안 털어놓는 모놀로그가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줄여야만 했다. 언젠가 그 버전을 선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대사를 통해 관객을 긴장시키고 싶은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 그 후 베어는 원 위시 윌로를 부러뜨리며 “니키가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빈다. 모든 사건의 단초가 되는 한마디는 어떻게 다듬었나.
단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결정짓기까지 참 까다로웠다. 베어가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지만, 고심하며 말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베어는 장난감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게 진짜 작동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다. 정교한 대사는 대충 던진 소원처럼 들리지 않을 테니, 말 그대로 막대기 하나 톡 부러뜨리는 느낌의 대사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굴러가게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은 필요하니 단순히 “니키가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가 아닌 “니키나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라는 대사를 썼다. 그 말이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들리게 연출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였다.
- 그전까지 베어는 니키를 향한 애정 고백을 계속해서 미뤘지만, 니키와 친구로서는 잘 지내왔고, 다른 여성 동료인 사라의 호감도 산다.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서툴러도 너드처럼 사교성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모든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관객으로서는 그의 성정과 위치를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는데, 감독으로서는 베어라는 남성의 어떤 면모에 초점을 맞췄나.
우선 베어를 너드라고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학교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특수한 외부 활동에 재능을 보인 것도 아니니까. 그는 청소년기에 자기 자리 찾기가 아주 힘들었을 텐데, 마침내 밴드 활동을 하며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 들었을 테지만, 퍼스트 연주자는 한번도 못했다. 그렇게 자신감을 충족하지 못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게 이성 앞에서도 그를 부끄럼 타게 했을 듯하다. 베어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존스턴에게는 순수한 면이 있는데, 베어가 얼마나 순수하지 않은지 생각하면 흥미롭다. 순수에서 비롯된 어색함만큼은 캐릭터와 정말 잘 어울렸다. (웃음) 마이클의 어두운 면은 베어가 항상 꺼내 드는 ‘피해자 카드’로 발휘된 듯하다. 순진한 척하며 “아무것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게 베어의 무기지 않나. 베어의 눈에는 자신이 피해자로만 보였을 것이다.
- 그동안 니키는 자주 그림자 속에 놓이거나 후경에서 흐려진다. 반면 베어는 프레임 중앙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 구도가 반복되니 베어가 중앙에 없으면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촬영에 있어서 어떤 원칙을 세웠나.
규칙을 설정한 다음 따르는 걸 좋아한다. <옵세션>에서도 매우 엄격한 시각언어를 고수했고, 구도에 특히 신경 썼다. 화면 상단에 여유 공간을 둘 것, 핸드헬드 촬영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 등이 원칙이었다. 이번 영화에는 헨드헬드 신이 하나도 없지만, 내 다음 영화는 훨씬 역동적일 예정이다. 참고로 베어가 화면 중앙에서 벗어난 장면들은 전혀 의도된 바가 아니다. (웃음) 마이클이 표시된 자리를 벗어났음에도 좋은 연기를 펼친 신들을 그대로 남겨둔 것뿐이다. 의외의 효과를 끌어냈다니 기쁘다.
- 이 영화에서 감지한 또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공포가 고조될 때마다 웃음이 터질 만한 한끗을 가미해 관객에게 기묘한 감흥을 안긴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균형을 맞춰야 했다. 너무 어처구니없어지면 더 이상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농담이 몰입을 해쳐서는 안된다. 인물이 실제로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이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도 안된다. 그동안 내가 포착해온 코미디의 정수는 대부분 인물이 실제로 할 법한 행동을 해내고야 마는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즉 굳이 웃기려고 애쓰기보다 단지 솔직하게 인물의 상황을 묘사한 게 결과적으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 것 같다.
- <옵세션>은 북미 개봉 후 엄청난 흥행을 거뒀고, 당신의 이름은 또 다른 유튜버 출신 호러 영화 감독들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 그들과 일종의 동료의식을 느끼고 있나.
요즘 내 이름이 속한 유튜버 출신 감독들의 명단을 자주 보게 되는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유대감을 느낀다. <톡 투 미> <브링 허 백>을 연출한 필리포 형제는 내게 2년 전에 먼저 연락해왔고, 그 후로도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들 말고도 내게 연락한 유튜버들이 많다. 무언의 유대감으로 이뤄진 특이한 공동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일원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
-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제목은 <Anything But Ghost>고, 일을 아주 잘하는 유령 사냥꾼이자 사기꾼인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유령을 믿지 않던 그들은 얼떨결에 진짜 악마를 마주하면서 제대로 된 유령 사냥꾼이 되어야만 하는 위기에 처한다.
- 계속해서 호러를 추구하는 까닭은.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나는 아무리 엉뚱한 컨셉이어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걸 즐긴다. 유령이든 외계인이든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든 현실적인 상황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