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의 곽경택,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이제 윤종빈이 떠오른다.
고향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선정되는 일은 영광이고, 그중에 또 내가 제일 어리니 기쁘다.
- 어린 시절을 주로 보낸 부산의 동네는 어디인가.
태어난 건 영도이고, 유치원 때 당감동으로 이사를 갔다. 옛날 당감동엔 화장터가 있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지만, 어릴 때 화장터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안락 동으로 이사를 갔다.
- 지금의 감독 윤종빈을 만든 데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부산에서 나고 자란 경험이 영화적 감각이나 취향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을까.
모두에게 고향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나. 성장기 때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정서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런데 나 때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희귀한 영화들을 구해 보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시네필은 아니었지만, 또래 친구들이 <황비홍> <영웅본색>을 볼 때 나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A 컨피덴셜> 같은 영화를 봤다. 비디오 가게에서 주로 영화를 빌려 봤는데, 또래 애들이 선택하는 주류의 영화들에선 약간 비껴나 있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그러다 대학(중앙대학교 영화과)에 진학했는데, 동기들은 이미 너무 많은 영화들을 봤더라. 친구들이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감독과 영화 이름을 댈 때 그게 좀 신기했다. 그러니까 서울 사는 친구들은 이런 걸접하며 자랐구나, 하는 느낌 정도. 부산이라는 지역이 내 영화 취향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은 것 같고, 어린 시절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두루 어울렸던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같다. 앞서 얘기했지만, 화장터가 있었던 당감동이 예전엔 좀 못사는 동네였다. 그런데 아파 트에 사는 친구들이나 산동네에 사는 친구들 이나 다 같이 어울려 놀았다. 부산 용인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 정문으로 나오면 온천장, 후문으로 나오면 서동이다. 당시 서동은 약간 할렘가 수준이었다. 그 동네를 지날 때면 뭐하나 뺏길 각오를 하고 지나가야 했다. (웃음) 깡패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형들, 머리를 거의 반쯤 노랗게 물들인 형들이 불러서 신발 바꿔 신자, 그러는 동네. 하여튼 잘사는 친구, 못사는 친구, 공부하는 친구, 노는 친구, 다 같이 놀았다. 실제로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액션 비즈니스’ 쪽으로 빠진 친구들, 그러니까 조직폭력배가 된 친구들도 있는데, 그렇게 다양한 삶,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내 안에 축적돼서 훗날 영화를 만들 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영화 일을 시작한 뒤에야 오히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시선이 더 선명하게 보인 순간도 있었나. 단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고서 ‘서울 사람들은 좀 다른데’ 싶었던 순간이랄까.
제일 처음 서울에 와서 놀랐던 건, 부산에서는 친구 3명이 버스를 타면 보통 제일 먼저 타는 친구가 나머지 친구들의 버스비를 내준다. 버스비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에서 친구들이랑 버스를 탔는데 먼저 탄 친구가 자기 버스비만 딱 내고 들어가더라. 그때 좀 충격이었다. (웃음) 부산은 뭐랄까, ‘이번엔 내가 낼게, 다음에 네가 내라’ 이런 게 자연스러운 문화고 서울은 또달랐다. 좋고 나쁘고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도시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더라.
- 스스로는 ‘부산 출신 감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혹은 그런 지역적 정체성 에서 벗어나려고 한 적도 있나.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이쓴 대본을 받아서 연출할 수도 있고 유명 원작을 연출할 수도 있지만, 감독이 직접 글을 쓰는 경우라면 본인이 잘 아는 얘기를 써야 한다. 단편영화 <남성의 증명>(2004, 미쟝센 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작품상 수상)도 경상도 출신 남자애가 서울에 살면서 겪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이야기가 곧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미국 감독들도 본인의 출신이 어딘지에 따라, 이탈리아 출신인지 프랑스 출신인지 유대인인지, 그 영향을 받지 않나.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는 부산 사람이니 부산 영화를 만들어야 돼,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 감독님 영화 속 남성 캐릭터에는 실제 그 캐릭터의 출신과는 무관하게 ‘경상도 남자’ , ‘부산 남자’의 색이 있다. 강한 척을 하거나 투박하거나 츤데레 같은 면모 말이다.
일단 성향상 멜로나 로맨틱코미디영화를 만들지는 못할 것 같다. 멜로는 여성의 판타지고 액션과 누아르는 남성의 판타지인데, 사실 나는 양쪽 모두에 소질이 없다. 내 영화 속 남자 들은 멋있으려고 하는데 좀 비릿하고 지질하고 그래서 현실적이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의 인물들을 보면 멋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 내가 본 부산 아저씨들은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있지 않았다. 어릴 때 성당을 다녔다. 내가 신부가 되길 바랐던 어머니의 바람으로 꽤 오랫동안 복사를 섰다. 당감동 성당에 다닐 때 주임신부님이 송기인 신부님 이셨는데, 부산경남 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무척 유명한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신부님 조차 말은 터프하게 하셨다. (웃음) 훌륭한 분이셨지만 말은 거칠었고, 웃기고 재밌는 분이셨다. 어릴 때 본 어른들은 대체로 그랬다. 반면 영화 속 인물들은 포장돼 있다. 아름다운 인물로 미화되거나 악인으로 과장되거나. 내 영화 속 인물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같다.
- <범죄와의 전쟁>은 부산이라는 지역성이 전면에 드러난 영화였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부산 사나이들의 영화를 한번쯤 만들어보고 싶었나.
그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번째 장편 <비스티 보이즈>를 만들고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리얼리즘 영화,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 이른바 영화제용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될것인지 아니면 상업영화, 장르영화를 할 것인 지. 근데 당시 영화계 상황이 좋지 않았다.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처럼 이름 있는 감독이 아닌 이상 신인 감독이 영화 투자를 받는 게쉽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고, 상업영화 감독의 길을 택한 거다. 그러면서 범죄물, 갱스터물을 하기로 장르를 먼저 선택했고, 갱스터들의 세계를 알고 싶어 취재를 시작했다. 거물급 조직폭력배 여럿을 검거한 전설적인 강력부 검사, 조승식 검사를 만나 범죄와의 전쟁 당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서울이 될 수도 호남이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잘 아는 장소가 좋을것 같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되었다.
- <범죄와의 전쟁> 속 부산은 인물들의 행동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환경으로 작동한다. 그만큼 부산의 정서가 중요했고, 그러한 정서는 인물들의 사투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최민식, 하정우 같은 서울 출신 배우들에게 사투리연기를 코칭할 때의 재미와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일단 최민식 선배님은 사전 준비를 오래 하셨 다. 촬영 전 3개월부터 매일 사무실에 나와 연습하셨는데, 사투리연기를 정말 힘들어 하셨 다. 계속 억양에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 스트 레스였던지 어느 날 본인의 방식대로 연기를 하겠다고 하시더라. 사투리에 신경 쓰느라 연기에 집중을 못하겠다고. 민식 선배님의 영화 속 사투리가 완벽하진 않다. 대신 연기로 승화시켰다. 오로지 연기로 설득한 거다. 하정우 배우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대사량이 적어서 티가 좀 덜 났다. 하정우 배우와는 워낙 친한 사이라, 부산 친구들을 붙여줘서 같이 밥 먹고 다니며 그들의 바이브를 느끼도록 했다. 사실 사투리라는 게 정답이 없지 않나. 이런 사투리도 있고 저런 사투리도 있다. 그런데 오답은 있다. 영화에선 그 오답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갔다.
- 그럼에도 최민식 배우는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라는 한국영화의 명대사를 남겼다.
그 억양이 진짜에 가깝지는 않지만 민식 선배님 특유의 연기로 그 장면의 맛을 잘 살렸다. 정확한 사투리연기에 집착하는 것보다 연기의 맛을 살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서부극과 무협 드라마가 결합된 사극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엔 어떤 영화적 시도를 해보고 싶었 나.
<군도>의 시작은 강동원 배우였다. 예전에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에 출연한 강동원 배우를 보고 ‘참 만화 같다, 저 배우는 어떻게 저렇게 선이 예쁘고 몸을 잘 쓰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우연히 어느 GV 자리에서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강동원 배우를 언급했고, 이후 강동원 배우쪽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동원씨가 “감독님 준비하시는 작품이 있냐”고 하기에 “우리 같이 액션영화 한번 해보자” 하면서 시작된 영화다. <범죄와의 전쟁>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내가 어릴때 좋아했고 즐겼던 무협물의 장치들을 실컷 활용했다.
- <군도>는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서 조금 튀는 작품이다.
<군도> 같은 본격적인 액션물을 이전에 해본 적이 없었고, ‘한번 해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일단 영화에 말 (馬)이 나오면 힘들다. <군도>는 액션에 무지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제껏 액션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었고, 뭐가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 뭐가 가능하고 뭐가 불가능한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할수 있었다. 강동원 배우는 신체적 조건이 월등 해서 대역을 쓰면 화면이 튄다. 그래서 직접 모든 액션을 다 소화했는데, 감독 입장에선 부상의 위험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세팅해서 한컷 찍는 날도 많았다. 지금 같은 근로환경에선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 부산 기장의 아홉산숲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열여덟 소년 장사 백정 돌무치(하정우)가 지리산 도적 떼 추설의 도치로 거듭나기 위해 수련하는 장소이자, 도치와 조윤(강동원)의 마지막 결투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대나무 숲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원래 아홉산숲은 외부에 공개가 되지 않던 사유지였는데, <군도> 제작진이 주인 일가를 설득해 최초로 영화 촬영 허가를 받아낸 것으로 안다.
엔딩의 대결 장면은 처음부터 대나무 숲이었 다. 큰 대나무가 촘촘하게 자란 숲이어야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영화 속 조윤은 절대 강자다. 도치가 짧은 기간 수련해서 조윤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두홍 무술감독과 상의한 게, 영화의 결말이 말이 되려면 짧은 칼(도치의 무기)이 유리한 곳으로 가야 된다는 거였다. 대나무가 촘촘하면 긴 칼을 쓰기 힘들다. 그래서 결전의 장소는 대나무 숲이어야 했다. 그런데 전국을 뒤져도 우리가 원하는 밀도와 굵기의 대나무 숲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스태프 중 한명이 아홉산숲을 찾았고, 그곳의 대나무는 확실히 달랐다. 무조건 여기서 찍어야 했다. 어떻게든 섭외를 해야 했다. 다행히 제작부가 어렵게 섭외에 성공해 무사히 대나무 숲 장면을 완성했다.
- 부산에서 촬영할 때 마음이 편한가.
당연하다. 나는 시나리오를 부산에서 쓴다. 지금까지 모든 시나리오를 부산에서 썼다. 시나리오 쓸 때의 루틴도 정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운대에 있는 유명한 온천수 목욕탕인 송도탕에서 사우나를 한다. 송도탕은 초등 학생 때부터 아버지와 다녔던 곳인데, 온천수라 씻고 나면 피부가 매끈해진다. 그러고 나서 아침으로 돼지국밥이나 대구탕을 먹고, 글을 쓰다가 동백섬을 한 바퀴 돌면서 산책하고 또글을 쓰는 식이다. 심지어 스토리보드를 마무리할 때도 부산에서 한다.
- 부산이라는 공간이 창작에 영감을 주기 때문인가.
부산에서 작업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돼지국밥! 서울에서는 제대로 된 돼지국밥을 먹을 수가 없다. 서울에 전국 팔도의 음식이 다 있지만 돼지국밥과 밀면의 맛만큼은 부산을 이길 곳이 없다.
- <공작>의 얘기로 넘어가보자. <군도>에서 원 없이 액션을 찍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대사가 많은 스파이영화를 찍은 건가.
무의식적 반작용으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들은 흑금성 이야기가 너무 신기했다. 세상에 진짜 이런 일이 있었다 고? 호기심이 생겨 취재를 시작했다. 당연히 현실의 첩보 작전엔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같은 액션이 없다. 현실의 공작원들은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속여 뭔가를 얻어내는 사람들이다. 실제 첩보의 세계에선 액션을 하는 순간 정체가 드러나 미션에 실패 한다. 그게 공작원의 삶이라 액션이 없는 게이 영화에선 자연스러웠다.
- <군도>에서 액션이 어려웠다면, <공작>에선 무엇이 가장 큰 챌린지였나.
기댈 데가 없다는 것. 장르에 기대 화려하게 보여줄 무언가가 없었다. 심지어 액션도 없었 으니. 또 예산이 큰 작품이었다. 관객들이 재미를 느낄 만한 지점이 분명해야 했다. 흥미로운 첩보원의 얘기지만 분단 현실에 대한 이야 기,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아픔에 대한 이야기도 담긴 작품이었다. 이 이야기에 관객들이 공감해줄 거라 믿었다.
- <공작>의 시대적 배경은 1993~98년, 공간적 배경은 서울, 베이징, 평양이다. 로케이션, 미술 등을 통해서 관객이 진짜 그 시대, 그 공간에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게 중요한 영화였다.
일단 북한을 재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우리는 북한에 갈 수 없으니까. 처음엔 무슨 방법이 있겠지 싶었는데 갈수록 답이 안 나오더라. 아이고 큰일 났네. 어떡하지. 음, 예산도 부족하네. 어떡하지. 그런 상태였다. 영화라는게 원래 그런 과정의 연속이다. (웃음)
그 어려움들을 어떻게 돌파해나갔나.
계속 아이디어를 내는 거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원래는 중국 촬영을 계획했는데 영화 준비하던 도중에 사드가 터져 중국에 갈 수 없었다. 대만으로 촬영 지를 바꿨지만 생각했던 90년대 중국의 느낌이 나는 곳을 찾을 수 없어서 또 한동안 ‘어떡 하지’의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대만의 시골에서 찍었고, 사실상 풀 세팅을 했다고 보면 된다. 계속해서 솔루션을 찾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북한에서도 촬영을 하고 싶었다. 다양한 루트를 공략했고 별의별 아이디어를 짜냈 지만 북한에서 직접 촬영하는 데는 실패했다.
- <군도>를 찍으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고, <공작>을 통해 해외 로케이션의 경험을 쌓았다.
수많은 도시에 머물렀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본영화 촬영지로서의 부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언덕도 있고 들판도 있고, 예스러운 동네도 있고 마천루의 현대적 동네도 있고, 웬만한 건 부산에 다 있다. 부산에서 숙박하면서 공업단지가 있는 울산, 창원 까지 오갈 수도 있다. 거점도시로서도 훌륭하다. 사람들도 정겹고 영화 촬영에 협조적이다. 무엇보다 부산엔 맛있는 음식이 많다. 그래서 스태프들도 모두 부산 촬영을 좋아한다.
- 부산에서 촬영하면서 장소 자체가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나 영감을 준 경우도 있었나.
부산에서 찍은 장면들은 대부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공간들이다. <범죄와의 전쟁>의 남포동과 중앙동 거리도 그렇고, 달맞이고개 빌라촌도 그렇고, 워낙 익숙하고 잘 아는 공간 들이어서 새롭게 영감을 얻었다기보다는 ‘여긴 이 장면에 어울리겠다’ 싶어 헌팅한 곳들이 다.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중국집 두곳 중하나는 부산 차이나타운에서 찾았고 또 한곳은 실제로 내가 알던 중국집이었다. 이른바 하정우 배우가 ‘소주 가글’ 하는 그 중국집이다. 나도 영화를 꽤 찍었으니, 전국에 있는 유명한 중국집은 다 가보지 않았겠나. 그런데도 우리 영화에 나온 중국집만 한 곳이 없다.(웃음)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는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중국집(화국반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신세계>에서 그곳을 또 사용했다.
- 부산이 영화 도시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어떤가.
그러고 보니 부산엔 부산국제영화제도 있다! 내 영화 필모그래피의 시작이 되어준 곳이어서,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부산이 할리우드처럼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촬영 스튜디오가 더 많이 생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