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의 ‘픽’을 받고 마침내 국내 개봉관을 찾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센티멘탈 밸류>
드럽게 아우른다. 오랫동안 가정에 부재했던 감독 구스타프(스텔란 스카르스가르드)는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를 자전적 영화에 캐스팅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어머니 역을 맡기려 한다. 할리우드 스타 레이첼(엘 패닝)이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예술적 표현과 인간적 연결 사이의 긴장을 탐사하는 <센티멘탈 밸류>는 정체성의 중첩을 통해 오랜 트라우마와 화해를 시도하는 영화다. 오슬로의 한 주택이 가족의 기억을 품은 채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캐릭터로서 활약한다. /김소미
<유레카>
리산드로 알론소는 세개의 화면비(아카데미, 1.85:1, 1.66:1)와 세개의 시공간(19세기 서부극 패러디, 현대 원주민 보호구역, 1970년대 브라질 정글)을 횡단한다. 비고 모텐슨의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흑백 서부극 프롤로그는 일종의 속임수다. 20분 후 화면은 줌아웃되며 곧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일하는 경찰 알라이나(알라이나 클리퍼드)의 집에서 틀어놓은 TV 속 영화임이 드러난다. 몇번의 전환 속에서 알론소는 원주민을 타자화해온 서부극의 장르성을 해체하고, 비전문 배우들이 빈곤과 실업에 허덕이는 보호구역의 가혹한 현실을 통과하는 슬로 시네마를 펼친다. /김소미
<두 검사>
1937년 스탈린 대숙청기의 폭력이 1.37:1의 아카데미 화면 안에서 차갑게 서술된다. 강제노동수용소 굴라그 생존자 게오르기 데미도프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두 검사>는 완결성을 자랑하는 카프카적 부조리극이다. 젊은 검사 코르네프(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가 선임 검사 스테프냐크(알렉산드르 필리펜코)의 혈서를 받고 소련 내무부(NKVD)의 고문과 조작을 폭로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지만, 관료주의의 미로 속에서 점점 더 깊은 함정으로 빨려든다. 건조한 대화와 유머, 복도를 걷는 발걸음과 문소리, 침묵의 배합으로 쓰인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경고장은 현대화된 파시즘을 향하고 있다. /김소미
<엄마의 시간>
다르덴 형제에게 프랑스 칸은 고국 벨기에만큼 친숙한 ‘동네’일 터다. 이미 칸영화제에서 두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가 제78회 칸영화제에서도 <엄마의 시간>으로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벨기에 리에주에 있는 미혼모 보호 센터로 들어가 다섯명의 10대 엄마가 지닌 저마다의 사연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회적 희생자이지만, 결코 희생자로만 남기를 거부한다”라는 연출의 변처럼, 영화는 사각지대에 몰린 곤궁한 이들에게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을 부여한다. 비전문 배우들의 가공되지 않은 연기가 생생히 담겼다. /정재현
<힌드의 목소리>
영화는 극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동시대의 비극을 어떻게 응시해야 할까. “현실의 고통에서 출발한 픽션이야말로 영화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밝힌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은 <힌드의 목소리>를 통해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을 고발하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한다. 이 영화의 근간은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가족들이 몰살된 차 안에 홀로 남겨진 6살 소녀 힌드 라잡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구조대원 사이의 교신 음성이다. 2025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긴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으로, 튀니지의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공식 후보작이다. /정재현
<아르코>
제4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인 크리스탈상과 음악상은 모두 <아르코>에 돌아갔다. <아르코>의 아르코(오스카 트레사니니)는 구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10살 소년이다. 구름 아래 세상을 동경하는 소년은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하고, 20년 전 세상에 불시착해 소녀 아이리스(마고 린가드 올드라)와 근접 조우한다. <아르코>를 보고 나면 누구든 영화를 연출한 프랑스 그래픽노블 작가 우고 비엔베누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기술 이상의 진심이 컷마다 가득해 긴츠 질발로디스의 <플로우>와 함께 봐도 좋을 영화다. /정재현
<엔조>
<엔조>의 크레딧에는 시네필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이름이 담겼다. 2024년 타계한 로랑 캉테 감독이 각본을 쓴 <엔조>는 그의 오랜 협력자인 로뱅 캉피요가 연출을 맡았다. 치열한 성장영화를 사랑해온 관객의 마음에 불을 지필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16살 소년 엔조(엘로이 포후)는 물려받은 부유함을 한편에 밀어두고 건설 현장 노동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삶이 휘청이던 시기에 만난 성숙한 우크라이나 청년 블라드(막심 슬리빈스키)는 엔조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기파괴적인 동시에 낭만적이고, 희극적이면서도 부조리한 청춘의 모든 것”(<가디언>)을 품은 영화는 관객에게도 불편한 성장통을 겪게 할 것이다. /이유채
<르누아르>
초기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정책이 마련된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플랜 75>를 보며 자신의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관객이라면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장편 <르누아르>에서는 1980년대의 11살 소녀 후키(스즈키 유이)가 주인공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엄마(이시다 히카리), 암에 걸린 아버지(릴리 프랭키)와 함께 사는 후키는 사람이 고통을 느낄 때 어떤 표정을 짓고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슬퍼하는지를 관찰한다. 호기심 많은 소녀가 전하는 감정과 주제 역시 <플랜 75>만큼이나 강렬하고 생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채
<다이 마이 러브>
린 램지 감독의 <다이 마이 러브>를 2025년 칸영화제에서 본 기자들은 속으로 외쳤다고 한다. “제니퍼 로런스 연기가, 미쳤는데?” 그러니까 <다이 마이 러브>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빠지고 <아메리칸 허슬>에서 두손을 든 그의 팬들을 위한 영화다. 여기서 제니퍼 로런스는 아기가 낮잠을 자는 틈에 글을 쓰려 하지만 좌절하고, 집 주변 들판을 돌며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되뇌는 여자 그레이스를 맡았다. /이유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