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박해영 작가는 감정이 바뀌는 순간에 집중한다고 한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면 왜 그랬는지를 알기 위해 방금 일어났던 일을 되짚어본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진저리날 만큼 감정을 집요하게 다루는 이유를 가늠케 하는 습관이다. 그의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를 작가의 방식으로 돌아보고 싶었다. 공개된 4화까지 보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그만 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 황동만(구교환)과 변은아(고윤정)처럼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표기되는 감정 워치를 차고 있었다면 불쾌, 불편, 지침, 피로 같은 단어들이 화면에 떴을 것이다. 이 감정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불편함의 근원을 찾아서
되짚어보니 시작은 1회 중반이다. 황동만이 박경세 감독(오정세)의 영화 ‘팔 없는 둘째 누나’ 시사 뒤풀이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큰소리로 설파하는 순간이다. 황동만은 출연 배우가 근처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연기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옆자리 동료가 “좀 작게 말하라”고 만류하는 데도 영화가 “촌스러워 미쳐버린 줄 알았다”고 넌더리를 친다. “재밌었다”라는 반대의 감상을 내놓은 앞자리 동료에게는 “답답한 소리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이 동료는 참다못해 자리를 뜬다. 이쯤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황동만은 호감이 쉽게 생길 수 없는 주인공이라는 걸. 영화판에 뛰어든 지 20년째지만 감독 데뷔를 하지 못한 “40대 무직 남” 황동만은 풀리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타인과 상황을 가리지 않는 발화로 해소하며 살아간다. 무례하고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면서도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 그를 보는 건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2화 초반, 박경세가 “나는 안 불쌍하냐”고 외치는 장면이다. 박경세와 황동만이 속한 영화인 모임 ‘8인회’의 아지트에서 박경세는 자신과 작품이 황동만에게 모욕당하는 데도 왜 아무도 그를 내치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특히 황동만을 챙기는 이준환 감독(심희섭)을 콕 집어 “황동만만 불쌍하고 나는 안 불쌍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이준환은 “불쌍해, 우리 다 불쌍해”라고 답한다. 자신을 좀 가여워해달라는 이와, 우리는 가여운 존재라고 합의하는 사람들. 이들의 공간에서 퍼지는 익숙하고도 해묵은 정서가 불편하게 달라붙는다.
마지막으로 변은아 PD가 어떨 때 코피가 나는지 말하는 순간이다. 만성적인 코피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그는 “그들의 나약함을 목도한 느낌”일 때 코피를 쏟는다고 설명한다. 이때 그의 목소리가 회의실 장면과 겹친다. 동료들이 게걸스럽게 웃고 떠드는 반면 변은아만 웃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은 저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미묘한 우월의식이 신경에 걸린다.
이렇듯 <모자무싸>의 인물들은 자기 연민과 자아도취 사이를 오간다.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며, 모이면 신세를 한탄하는 이들의 세계는 더없이 눅눅하다. 그렇다 한들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악인도 아닌 이들에게서 왜 거부감이 먼저 들까. 드라마에서까지 현실의 피로를 느끼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일까.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박해영의 인물들이 치부를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황동만처럼 타인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박경세처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여기며, 변은아처럼 타인을 한 덩어리로 묶어버리고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 지점은 <모자무싸>의 기획 의도를 떠올리면 더욱 선명해진다. 박해영 작가는 “큰 해를 끼치진 않지만 만나면 불편한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그들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몸부림치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 몸부림을 보는 게 왜 민망한지도 따라가 보니 자신의 모습이어서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황동만은 그 자각에서 출발한 인물 이다.
<모자무싸>의 인물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것이 박해영식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저 감정 상태를 펼쳐 보인다. 행복해지라고,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설득하진 않는다. ‘어떤 상태가 돼라’는 요구가 지금 시대의 시청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아는 듯하다. 대신 자세히 보여준다. 파악할 수 없어 답답했던 감정 덩어리를 하나씩 해체하고, 그것에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 네가 지금 느끼는 것은 질투이고, 허기이며, 불안이라고. 정확하게 아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는 사실 역시 그는 알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박해영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 작가다. 아직 베일에 싸인 ‘감정 워치’는 박해영식 위로를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종종 ‘알 수 없음’이 뜨는 황동만과 변은아의 워치에 감정들이 명확한 단어로 표시될 때마다 불편함 속에서도 묘한 해방감을 느낄 거라고 예상한다.
황동만이 말하는 황동만을 기다리며
밉상이긴 해도 황동만은 궁금한 인물이다. 4화까지 황동만은 주로 타인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로 시청자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1화 오프닝으로 돌아가보자. 박경세는 자신과 황동만이 속한 8인회의 멤버인 이기리 감독(배명진)에게 황동만에 대해 늘어놓는다. 박경세에 따르면 황동만은 “김치찌갯집 개업식에 가서 김치찌개가 싫다고 말하는” 삐뚤어진 인간이자, “평생을 껄쩍지근하게 열받게 하는” 인간이다. 이후로도 황동만은 타인의 말 속에서 계속해서 규정된다. 누군가는 그를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부르고, 그의 삶은 “누군가는 그만하라고 얘기해줘야” 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가 집필한 시나리오 ‘날씨를 만들어드립니다’는 “주인공에게 파워가 없”어 채택되지 못한 무용지물이고, 그의 창작 활동은 가족에게서조차 “언제까지 집구석에서 놀 거냐”는 타박을 받으며 본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20년간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면서도 “망가져 나를 증명”하며 견뎌왔다. 실패한 황동만, 구제불능의 황동만. 그러나 그에게는 ‘버티는 파워’가 있다. 또 다른 파워는 ‘느낄 줄 아는 파워’다. 호감을 느끼는 은아에게 반찬통을 받고 기뻐서 날 듯이 춤을 추고, “왜 영화를 하느냐”는 질문에 왈칵 눈물을 쏟는 사람. 세상을 향해 자기 이름을 외칠 에너지가 마르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생동감과 생명력을 알아본 변은아와의 관계가 진전되기 시작하면서 <모자무싸>는 황동만에게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주려는 듯 보인다. 앞으로 그가 직접 말하고 보여줄 인생은 무엇일까. 그가 선언했듯 그의 미래에는 “빛나는 진실”이 있을까. 그에게 느끼는 이 불편함은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까.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황동만이 자기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