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의 2시간40분이 흐른 뒤 객석은 집단적 충격에 빠졌다. 6분간 이어진 기립박수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한방향으로 모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어리둥절해했으며, 또 누군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이후 꼬박 10년 만에 돌아오면서 칸 경쟁부문 한복판에 미확인 물체 하나를 떨어뜨렸다. 분류되지 않는 흥분을 껴안은 이들이 새벽까지 크루아제트 거리에서 웅성거렸다.
칸은 최초에 나홍진의 영화를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적역인 K익스트림무비로 인식했다. <추격자>(2008)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황해>(2010)가 주목할 만한 시선, <곡성>(2016)이 비경쟁 부문에 개봉 이후 도착했다. 2026년, 그가 처음으로 경쟁부문에서 프리미어로 영화를 선보였다.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장인 해에 마침내 황금종려상의 후보로 거론된 것이다. 문제는 나홍진 감독이 이 자리에 무엇을 들고 왔느냐다. ‘오트밀 작가주의’라는 농담이 따라붙는 감독들의 정적이고 절제된 영화들이 즐비한 올해 라인업 한가운데로, 한국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를 쏟아부은 SF 액션 괴수 블록버스터가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칸 집행부가 앞으로 무엇을 예술로 호명하려는지, 장르영화의 야성에 어디까지 자리를 내줄 것인지를 한국영화로 시험하는 순간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외딴 어촌인 호포에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찾아온다.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호랑이가 소를 물어 죽였다는 신고를 받고 마을 어귀로 출동하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사냥과 낚시로 소일하는 성기(조인성)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청년들과 함께 숲으로 향한다. 영화는 두개의 무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공포에 떨면서 초토화된 마을을 가로지르는 범석과 후배 순경 성애(정호연)의 전투, 그리고 괴수의 진원지를 찾아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성기 일행의 탐험 이다.
괴수의 존재는 <호프>에서 일찌감치 감지된다. 그것도 내내 범석의 근거리에서 소리와 기척으로 스릴을 자아낸다. 그 상태로 영화는 러닝타임 45분 동안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연출의 뚝심이 미스터리와 스릴을 쌓아올려 <호프>의 첫 한 시간을 거대한 동시에 밀도 있는 세트피스처럼 기능하게 한다. 스크린에 데뷔하는 배우 정호연이 액션 스타로서의 아우라를 한껏 뽐내는 첫 등장 신에 뤼미에르, 드뷔시 극장의 관객들이 박수로 화답할 만큼 <호프>는 이 지점까지 관객을 손아귀에 확실히 쥔다. 어떤 관객은 이대로 괴수가 영영 등장하지 않는 영화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곡성>의 추종자라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지만 결코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의 현혹이라는 테마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뒤따르는 문제는 이 거창한 지연의 시간이 기대치를 높이고 긴장을 소진시켜, 막상 CGI 결과물을 마주하거나 반복적인 전투 시퀀스들에 노출될 때 실망감이나 피로감을 안기기도 쉽다는 것이다. 나는 <호프>의 무서운 타자들을 즐겼고 끝없는 질주 속에서 극대화된 운동의 쾌감을 만끽했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오래 이어지는 회전목마에서 이제 그만 내리고 싶다고 느꼈다. 실제로 칸 마감 직전까지 편집에 박차를 가한 상황이므로 일부 VFX가 미완성으로 보이기도 했다. 컴퓨터그래픽과 시퀀스의 리듬은 개봉 버전에서 칸 상영본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완될 여지가 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호프>는 구조적으로 필연적인 난제를 안은 영화다. 함의로만 암시되는 괴수는 언제나 대부분 실체로 드러난 뒤의 괴수보다 훨씬 무섭다. 이 장르의 오래된 딜레마, 즉 현현의 대가다.
외신들은 <우주전쟁>과 <프로메테우스> <프레데터> 심지어 <RRR: 라이즈 오어 리볼트>까지 끌어와 이 영화를 설명하려 애썼지만 모두 부분적인 이미지의 유사성에 근거한 비교일 뿐 어떤 영화도 <호프>의 적절한 짝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호프>의 첫인상은 이처럼 언뜻 현대 할리우드 장르물, 또는 블록버스터를 한국화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여기엔 함정이 있다. 이 영화의 내면은 차라리 오래된 아날로그 괴수영화에 다가간다. 나홍진 감독은 칸 현지 외신 인터뷰를 통해 “인간적인 손길과 물리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1950~60년대 고전기 괴수영화를 참조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단순히 크리처의 표현에 국한되지 않는다. <호프>에서 그 시대 괴수영화들이 공유하던 근원적 고립감과 이데올로기적 공포의 서사구조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야심을 읽었다. 1950~60년대 할리우드와 일본의 고전 괴수물은 냉전의 불안과 핵에 대한 공포를 거대 타자로 가시화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호프>가 하필 반공 푯말이 곳곳에 붙어 있는 과거의 어느 때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념의 유령이 떠돌던 공동체에 진짜 괴수가 들이닥쳤을 때 발생하는 기이한 에너지야말로 <호프>의 동력이다. <곡성>에 이어 합류한 홍경표 촬영감독은 밤 장면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를 자연광으로 밀어붙인다. 아무것도 숨겨지지 않는 환한 대낮의 카니발은 그래서 <호프>를 집단 최면의 한 풍경처럼 보이게도 한다.
한국 배우들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가 외계인들이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황후 조르를, 마이클 패스벤더가 전투 종족 마베이요를 연기한다. <본즈 앤 올>의 테일러 러셀과 캐머런 브리턴까지, 주요 외계 캐릭터 넷은 모두 모션 캡처와 페이셜 캡처로 구현됐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 외에 인물들의 서브텍스트가 거의 소거되어 있다시피한 <호프>에서 암시적으로나마 배경과 내적 동기 등이 풀이되는 존재는 오히려 외계 생명체다. 나홍진 감독은 끈적한 점액질의 혈액과 거구의 신체, 다종다양한 외모를 지닌 이 외계 이종(異種)들을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라 곤경에 빠진 타자들로 묘사한다. <호프>에서 만만찮게 무시무시한 쪽은 오히려 침입자를 일단 다 처단하고 보는 인간들일 수 있다. (상영 직후 극장을 빠져나가는 기자들의 우스갯소리. “한국인들 무섭네. 결코 봐주지 않네!”)
호포의 사람들은 대화하기보다 만담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거나 극한의 공포 앞에서 욕지기를 내뱉기 바쁘다. 프리미어 직후 해외 관객이 반복되는 한국어 욕설을 밈(meme)화할 정도다. 이처럼 <호프>는 희망 대신 입장의 차이와 무지가 빚어낸 거대한 불행을 가리킨다. 그리고 의미를 비워둔 자리에서 관객의 관점이 작동하길 기다린다. SF 서사시적 신화 구축의 시도가 이루어지는 종반은 속편을 예고하는 모양새다. 아직 계획 단계 정도라고 밝혔지만 속편 시나리오는 사실상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SF, 스릴러, 액션, 컬트 코미디를 횡단하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전에 없던 한국발 대형 프랜차이즈물로 자리 잡을까? 적어도 칸은 기대하는 듯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