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센(왼쪽부터).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도대체 외계인들은 왜 지구에 불시착한 걸까. 우연히 떨어진 지구에서 괴물들은 인간의 공격을 받는다. 다시 말해 호포항 부근을 쑥대밭으로 만든 건 외계인의 소행이 맞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인간의 불합리한 자극이 먼저 선행됐다는 말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한데 뒤섞인 칸영화제의 축소판처럼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테일러 러셀은 <호프>의 다양성을 넓힌다. 영화 표면에서 이들은 그저 단일한 외계 생명체로 뭉뚱그려 보이지만 시나리오상에선 훨씬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정을 갖고 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맡은 ‘조르’는 평민의 신분에서 황후가 되었다는 설정을, 테일러 러셀이 연기한 ‘아이도보르’는 조르의 시녀이자 세자의 유모로서 위기에 맞닥뜨렸다는 배경이 뚜렷하게 있다. 이를 두고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준비 과정에서 나홍진 감독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영화를 상상하고, 또 그 상상을 체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나홍진 감독은 이야기의 배경 설정과 전사까지 굉장히 세세하게 갖고 있다. 정말 거대한 세계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 드러나는 건 빙산의 일각이다. 물론 에일리언 캐릭터는 영화 후반부에 몇몇 장면으로 축약돼 나오지만 분량을 떠나서 이 설정 속에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상상하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구사하려 노력했다.”
<호프>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쉼 없이 돌아가는 만담 코미디다. 한국 고유의 정서를 십분 이용한 장치지만 테일러 러셀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호프>의 진짜 매력을 느꼈다. “최초 상영 당시 한국 배우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그들과 관객들이 웃을 때마다 내가 느꼈던 코미디를 재차 확인받는 것만 같았다. 시나리오에서 혼자 재미있다고 짐작만 했던 부분들이 사실은 한국에서도 재미있는 거였구나, 나만 웃긴 게 아니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뉘앙스로 축소됐던 내 감정을 허락받는 느낌이었다. 글에서 현실로 살아나는 유머의 다층적인 보편성을 경험하면서 작품이 더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뭐랄까, 뇌의 어떤 부분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호프>. 다음 편의 이야기로 확장될 때 두 배우는 세계관에 어떤 이야기로 참여하고 싶을까. 먼저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원대한 우주 전투를 기대했다. “지난 2년 동안 나홍진 감독과 깊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여러 디테일을 접하고 상상했다. 그동안 감독님 내면에서도 결정과 아이디어가 계속해 변화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무언가를 확언하긴 어렵다. 다만 우주로 향하게 될 다음 이야기에서 철학적 관문을 여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테일러 러셀 또한 설렘을 말했다. “나홍진 감독은 내가 지금까지 함께 일해본 감독들 중 가장 나를 놀라게 하는 감독이다. 만약 속편 제작이 확정된다면 그다음의 새로운 이야기로 놀랄 준비를 하고 싶다. 그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