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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너의 초록을 사랑해 - <도라> 정주리 감독, 배우 안도 사쿠라

<도희야> <다음 소희>에 이어 칸을 찾은 <도라>. 이로써 정주리 감독은 지금까지 연출한 모든 장편영화를 칸에 보냈다. 정주리 감독과 안도 사쿠라, I.O.I 출신 김도연의 만남으로 궁금증을 일으킨 <도라>는 칸영화제 감독주간으로 초청받아 지난 5월17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알 수 없는 피부병과 고름으로 고생하는 도라(김도연)는 휴양을 위해 가족과 바닷마을을 찾는다. 도라는 자신의 가족을 반겨주는 연수(송새벽)·나미(안도 사쿠라) 부부와 평온한 듯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그 사이에서 제 삶의 첫사랑을 마주한다. 여름 잎사귀 같은 도라의 사랑은 가족, 퀴어,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며 수면 아래 묻힌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만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도라 사례를 모티브 삼은 <도라>. 페미니즘과 퀴어의 교차성을 다정하고도 기묘하게 끌어안은 영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정주리 감독과 배우 안도 사쿠라를 칸에서 만났다.

정주리, 안도 사쿠라(왼쪽부터). 사진제공 에피소드컴퍼니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도라 사례를 모티브로 <도라>를 써내려갔다고. 도라 사례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실어증, 호흡곤란 등 도라의 증상을 두고 프로이트는 억압된 욕망과 성적 갈등의 결과로 분석했다. 이때 도라는 K부인과 아버지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목격하고서도 여전히 K부인을 좋아하고, 설상가상으로 K부인의 남편으로부터 성적 접근까지 받게 된다. 이를 추행이라고 느낀 도라는 어른들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지만 모두 이 사실을 축소하거나 부정한다.

정주리 25살 즈음 처음으로 도라 사례를 알게 됐다. 프로이트의 히스테릭 분석이 무척 흥미로웠다. 시간이 흘러 여운이 오랫동안 남은 도라 이야기를 장편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7~8년 만에 도라 사례를 다시 꺼내 읽으니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 이 안에 도라의 진짜 목소리가 있나? 프로이트의 관점과 시선만이 남아 있는 거 아닌가? 그때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보고 싶었다.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하는 사람으로서 위치를 바꿔주고 싶었다. 영화 속 기본 골자는 도라 사례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아버지와 이웃 여자, 소녀에게 성적 접근을 하는 이웃 여자의 남편까지 도라를 중심으로 비쳐지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그렇다.

- 나미의 특징적인 모순도 눈에 띈다. 영화를 보며 나는 분명 도라를 향한 나미의 마음을 느꼈는데, 나미는 오히려 도라의 마음을 알고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과 결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았나.

안도 사쿠라 나는 기본적으로 답을 정해놓고 연기하지 않는 편이다. 여러 상황 끝에 캐릭터가 어디로 향해가는지에 집중하지, 정답을 어떻게 정해놨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 순간의 나미만 집중하려 했다. 지금 나미에게 주어진 상황, 기분, 감정, 억압…. 내가 캐릭터의 결정을 바꾸거나 번복하는 순간 작품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주리 모든 영화는 결국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도라를 거부하거나 혹은 도라를 향한 나미의 자기파괴적 행동은 결국 가장 마지막에 도라가 진짜 자기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도록 북돋는 매개에 가깝다.

- 캐스팅 단계에서 많은 주목을 이끌었다. 안도 사쿠라김도연의 조합. 심지어 퀴어 장르로 둘을 만나게 했다. 섭외 과정이 궁금하다.

정주리 먼저 나미는 이곳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다. 나 스스로도 이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니 이방인이더라. 그때 일본인이라는 설정이 떠올랐고 동시에 ‘안도 사쿠라!’ 하고 머릿속에 전구 불이 켜졌다. 정말 운명적인 일이었다. 처음엔 사쿠라씨가 영화 설정이 어렵다고 거절했는데 그 뒤에 온 마음을 담아 손편지를 보냈다. 김도연 배우는 정말 길고 긴 오디션 끝에 만났다. 오디션만 6개월 동안 3천여명을 본 것 같다. 시나리오 속 도라는 키도 훨씬 작았지만 이상하게 김도연의 얼굴 속에 회복한 도라의 얼굴이 보이더라. 내가 실제 도라 사례에서 가장 끄집어내고 싶었던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안도 사쿠라 도라 역을 김도연 배우가 맡는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사진을 찾아봤는데 정말 놀랐다. 이렇게 화려한데 도라를?! 머리가 이렇게 긴데! (웃음) 영화 속 도라에게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생명력이 있다. 솔직한 순간에도, 그렇지 못한 순간에도 그 생명력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게 바로 김도연에게 있다. 만약 영화에서 맑고 푸른 생명력을 느꼈다면 그건 김도연이 빚어낸 거다.

- 나미와 도라는 마침내 사랑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돌 출신 배우 김도연에게도, 한국어 연기가 처음인 안도 사쿠라에게도 모두 쉽지 않은 장면이다. 성적 장면을 재현하는 데 어떤 준비를 했나. 다양한 대비를 했을 듯하다.

정주리 이 장면은 연출자뿐만 아니라 배우들, 스태프들에게도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장면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이 여성들의 러브신을 남성 중심적이고 대상화한 시선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몸을 비추고 싶었다. 일종의 사명감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촬영감독님도 모두 여성 촬영감독으로 두고, 다른 시선을 더할 수 있도록 프랑스 촬영감독님을 모셔왔다. 이 장면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영화 전체가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다. 도라의 손으로 나미의 상흔이 드러날 때, 그 장면이 완성되고 나서 너무 눈물이 났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여성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회복으로 나아가는 두 몸이 얼마나 귀한가. 뭘 더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노출신을 두고 배우와 감독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배우는 자신이 바라는 노출 정도가 얼만큼인지, 접촉이 필요하다면 어디까지 허용하고 싶은지를 자유롭게 말한다. 감독 또한 코디네이터로부터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전달한다. 위계 관계가 뚜렷한 영화산업의 구조를 반영한 장치인 셈이다. 배우들도 감독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의견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앞으로 국내에 더 보편적으로 정착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