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지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 초콜릿을 좀….” 라운드 인터뷰의 첫마디로 하마구치 류스케는 기자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3시간16분짜리 영화를 보고 영화제 후반부에 자신을 찾은 기자들에게 ‘돌봄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 건네기에 퍽 알맞은 인사였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는 파리 외곽 요양원의 원장 마리루와 말기암을 선고받은 일본인 연극 연출가 마리, 이름마저 포개지는 두 여자가 일본어와 프랑스어로 대화하며 깊이 유대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영화에서 갑작스럽고 끈질긴 것은 병세만이 아니라 친밀한 타인의 존재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지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일·프 공동제작으로 만든 이 영화의 밑돌은, 죽음을 앞둔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자가 주고받은 20통의 서간집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다. 인간을 끝내 인간으로 대하는 일에 관하여, 감독은 서두르는 법 없이 입을 열었다.
- 약 5년이 걸린 기획이다. 돌봄이라는 주제에 시간을 할애해 그 세부를 들여다보는데 구체적인 착수 과정을 들려준다면.
일·프 공동제작이 결정되고 두 나라에서 촬영, 각국의 주인공이 있다는 큰 틀은 어렴풋이 정해졌다. 문제는 어떤 가교로 두 나라를 연결할 것인가였다. 40년 전 프랑스에서 개발된 휴머니튜드(Humanitude)라는 돌봄 기법이 있는데 나는 10년 전쯤에 책을 통해 접한 뒤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작품에 도입하게 됐다. 나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셨을 때 어머니가 내게 “할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몰라” 하고 말한 순간을 떠올렸던 것 같다. 슬프게도 우리는 통상 치매 노인의 인격이나 정신 같은 것은 사라져버린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들의 지성과 정신은 살아 있으며 다만 인지능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거기에 닿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인 휴머니튜드는 이 부분을 재활성화하기 위해, 상대편인 우리의 지각 능력을 더욱 높여서 교류하자고 독려한다. 눈을 아주 가까이 맞추고, 목소리를 크게 하고, 만지는 데 있어서는 상대가 예민한 부분을 마치 습격받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부분부터 터치하는 식이다. 쉽게 말해 치매 환자를 강제적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우하는 실천이다.
- 퍼포먼스를 포함한 휴머니튜드의 치료는 워크숍적 수행에 관한 감독의 영화적 관심사와도 절묘히 맞물려 있다.
그렇다. 나는 일터에서 우리가 사람을 반드시 인간적으로 대할 수만은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현실을 고민하곤 한다. 영화 촬영 시스템은 의외로 사람을 감정 있는 존재로서 대우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감정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말이다. “이 대사를 외워왔으니 이 카메라 앞에서 말해주세요, 가능하면 슬픈 느낌으로” 같은, 매우 인스턴트한 방식이 강요되는 구조다. 스태프들도 오랜 시간 닳고 닿는 방식으로 일하게 된다. 그래서 휴머니튜드처럼 인간과 인간이 서로의 물리적 조건에 주목해서 차차 친밀해지는 소통 기법 혹은 발상에 감응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셈치고 영화에 휴머니튜드를 다뤄보자고 생각해서, 2024년 3~4월에 약 2개월간 프랑스에서 시나리오를 위한 리서치를 했다. 그때 휴머니튜드를 실천 중인 한편 경영난으로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느 요양원을 찾았고, 작품의 실제 모델로 삼았다.
- 건조하게 반복하는 특유의 테이블 리딩을 이번에도 진행했나. 일본어, 프랑스어를 쓰는 이중언어 캐스트와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던가.
보통 촬영하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는 사실에 배우들이 동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왔다. 이번에도 당연히 같은 방식으로 했다. 이탈리아식 대본 리딩이라고 불리지만 나는 과거에 장 르누아르의 연기 지도법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비슷한 방식을 본 적 있다. 아시아의 청년이었던 내가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따라 했던 셈이다. 일본보다 유럽에서 이미 친숙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두개의 언어가 혼용되기에 생긴 차이는 감독인 나의 문제에 가깝다. 일본어 대사에 있어서는 어디에 쉼표를 넣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 의미의 단위가 제대로 들리는지, 배우들의 숨이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대사를 지도할 때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고 목소리의 상태에 주목했다. 배우가 충분히 이완하고 있는지, 말이 몸에 스며들어 있는지는 목소리를 들으면 알게 된다. 그런 것은 언어를 초월해도 바뀌지 않는다. 한국 배우들과 작업한 <심도>,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의 다언어 연극 연출 때도 모두 비슷하게 느꼈던 것이다.
-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자본주의의 공포가 압박해올 때 인간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의식적인 연결일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제작 기간이 겹쳐 있고 두 작품의 주제적 관심사가 이어진 것 같다. 자본주의에 대한 어떤 종류의 아이디어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그 시기에 내가 아마도 ‘회복’이라는 테마에 집중했던 것 같다. 요컨대 그 이전에 이미 굉장히 지쳐 있었다는 뜻이다. 감사하게도 <드라이브 마이 카>가 세계 각지에서 개봉하거나 영화제 상영이 있어 돌아다니게 되었고 같은 시기에 <우연과 상상>도 개봉해 약 1년간 프로모션이 쉼 없이 이어지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19도 겹쳤기 때문에 만약 해외에서 감염되면 돌아와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정신적 압박도 큰 상태였다. 나 자신이 어딘가 손상되고 깎여나가는 듯한 인상을 여러 국면에서 받았다. 그러면서 내 경험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체력 이상으로 일하고 있다. 계속해서 개인이 자기 한계를 시험하는 시대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제대로 보고 듣는 일, 만지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타인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줄어들수록 나 자신의 생활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느낌과 가까워진다. 더 크게는 좀처럼 바꾸기 힘든 시스템에 갉아먹히고 있다는 감각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착수했지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를 정치적인 영화라고 말하는 평가들에 동의하는 이유다.
- 관객의 집중력이 점점 짧아지는 시대에 3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를 들고 왔다. 이 정도의 길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은 어떻게 얻나.
시나리오 단계에선 4시간이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까. (웃음) 찍게 해준 프로듀서에게 고맙다. 정말로 필요한 요소를 설득력을 갖고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간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다만 모두의 염려대로 관객이 주의력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나조차도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지만 집에서 영화를 보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촬영감독은 누구지’ 하고 찾아본다거나. 결국 영화관이라는 장소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전부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라면 그것을 전제로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처음 30분이 꼭 엄청나게 흥미를 끌지 않으면 어떤가. 단편적인 요소들이 흩어져 있고,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상상해나가지 않으면 작품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찬찬히 집중해서 본 관객이라면 후반부에 큰 보람을 얻는다. 나는 그런 스토리텔링에 확신을 가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