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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칸은 체질 개선 중 - 5개 극장에서 나누어 쓴 영화기자의 출장 노트

정치적 발언에 힘을 싣고, 퀴어영화들에 존재감을 부여하고, 경쟁부문 상단의 준수한 영화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비경쟁, 사이드바 섹션이 빛났던 올해의 칸을 체질 개선 중이라 말할 수 있을까. 5월의 햇볕을 뒤로한 채 어둠 속에서 마주한 작품의 면면들, 사람들을 기록했다.

➀ 드뷔시 극장(salle debussy)

뤼미에르 대극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드뷔시 극장은 경쟁부문 작품을 뤼미에르와 비슷한 시간대에 상영하는 쌍둥이 동생 극장이다. 감독, 배우가 모두 참석하는 경쟁부문 첫 프리미어 시사가 열리는 뤼미에르의 티켓은 아침 7시 예매 전쟁에 서버 시계까지 동원해 뛰어든대도 여간해선 잡기 어려운 탓에 드뷔시엔 곧잘 전우애가 감돈다. 올해 베를리날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잔드라 휠러의 신작에 기립박수를 띄울 기회를 노렸으나 역시 놓치고, 드뷔시에서 <파더랜드>를 보았다. 드물게 감독, 출연진 없이도 엔딩크레딧 후 긴 박수가 이어졌다. 무너진 세계를 어떻게 슬퍼할 것인가.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연설을 위해 동독과 서독을 오가는 토마스 만은 연단의 언어 뒤에 숨고, 딸인 에리카 만은 폐허가 된 조국의 현실 앞에서 점점 더 날카롭게 부서진다. 흑백의 화면은 영화를 한층 보편적인 차원에서 흡수시키는 경향이 있다. 파우베 파벨리코프스키의 흑백 역시 <파더랜드>가 역사적 해석을 딛고 인간 감정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흑백뿐 아니라 아카데미 비율, 미장센, 카메라워크 등에 있어 <파더랜드>는 표면적인 단순성을 유지하는데, 이는 곧 강렬함을 위함이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응축하기 위해 숏을 세공하므로 파블리코프스키의 단순함은 담백함과 구별되어야 한다. 요컨대 상업적으로는 물론 동시대 아트하우스 영화의 트렌드(가 있다면)와는 꽤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다. 자기 세계의 정수를 82분에 봉인한 감독은 이렇게 응수한다. “받아들여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단순함을 쌓아가는 데서 오는 일종의 비틀린 쾌감 같은 게 있다. 세상에는 이미 소음, 너무 많은 말, 움직임이 넘쳐 흐르니까.”

이자벨 위페르를 필두로 뱅상 카셀, 비르지니 에피라, 깜짝 출연인 카트린 드뇌브까지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프랑스에서 스타들을 대동하고 찍은 <패러렐 테일즈>는 초반 기대작이었다. <데칼로그> 여섯 번째 에피소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핵심 모티프를 파리로 옮겨온 작품에 예견된 우려 대신, 첫 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생상스의 <동물사육제>가 흐르는 칸 오프닝 필름 직후 스튜디오카날과 카날플뤼스 로고가 떠올랐을 때다. 제작, 배급사 로고에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부지런한 칸 관객들이 기다렸다는 듯 야유를 퍼부었다. 알고보니 카날플뤼스의 실질적 지배주주인 극우 성향의 보수 재벌 뱅상 볼로레가 언론사와 출판사를 인수하며 우편향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던 중, 프랑스 3대 극장 체인 UGC의 지분까지 대거 사들인 것이다. 제작-배급-상영-방송에 이르는 수직적 지배력 확보다. “영화의 획일화뿐 아니라 집단적 상상력의 파시스트적 장악”을 우려하는 연대 서한에 프랑스 영화인들과 켄 로치, 하비에르 바르뎀, 마크 러펄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이 참여했다. 문제는 칸 현장에서 카날플뤼스 CEO 막심 사다가 서명자들과 “더 이상 일하지 않겠다”는 블랙리스트를 선언해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 영화제 후반부쯤엔 카날 로고가 나오면 ‘파시스트!’라는 거센 일갈이 따라붙었다. <패러렐 테일즈>는 이웃을 관음하며 메타픽션을 써내려가는 괴짜 작가와 그 문하생의 판타지를 극대화함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의 매혹에 그쳤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원작이 지닌 윤리적 긴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파르하디의 톱니는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다.

올해 드뷔시에서 본 가장 슬픈 영화는 <피오르>였다. 크리스티안 문지우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냉혹해지는 선택을 감수하자는 감독이다. 루마니아 오순절교회 가정이 노르웨이 피오르 마을에 이주하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웃들과의 갈등이 아동복지국과 법정까지 이어진다. 아이들은 곧 부모, 친구들과 격리된다. <피오르>를 본 후, 불과 며칠 전 파벨리코프스키 감독이 인터뷰 중 자신이 냉전기에 주목하는 이유에 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각자가 신봉하는 내러티브가 완벽하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협소하고 제한된 시선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현재는 냉전시대보다 어쩌면 더 복잡해서 잔혹한 세상이다.” 한쪽은 역사적 상흔을, 다른 한쪽은 오늘날의 문화 전쟁을 다루지만 나는 두 작가가 쌍방의 극단주의를 염려하는 지점에서 통한다고 느꼈다.

➁ 뤼미에르 대극장(Grand ThéâTre Lumière)

안드레이 즈뱌긴체프.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

올해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본 영화 중 두편이 제각기 경쟁부문의 극단을 달리는 모양새가 재미있다. 한편은 <호프>. 더 이상의 부연은 무용할 정도로 한차례 관심의 폭풍이 지나갔다. 분명한 건,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상영되었다면 모두가 아무런 논란도(그만큼의 흥분도) 제기하지 않았을 작품이 ‘경쟁부문’에 등장했다는 것. 그래서 주말 직전까지 지나치게 잠잠해 보였던 뤼미에르를 잠에서 흔들어 깨웠다는 사실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의 SF 크리처 블록버스터가 설왕설래를 이끈 주말이 끝난 후, 그 자리에 9년 만에 돌아온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감독의 <드림드 어드벤처>가 들어왔다. <호프>와 <드림드 어드벤처>의 유일한 공통점은 긴 러닝타임이다. 한쪽은 스펙터클, 한쪽은 자연주의로 긴 시간을 채운다.

구태여 <호프>와 비교하기도 전에 그리제바흐의 영화는 올해 대다수의 찬사를 이끌어낸 <파더랜드> <미노타우로스>그리고 <피오르>와 비교해도 남다르다. 숏과 내러티브를 정밀하게 조율해 감흥을 자아내는 수작들이 칸의 작가성을 전통적으로 뒷받침한다면, 바로 이 점 때문에 어느샌가 꽉 조여진 관객의 심장에 그리제바흐가 숨구멍을 낸다. <드림드 어드벤처>에서 고향 땅인 불가리아 국경지대로 돌아간 여성 고고학자 베스카는 오래된 친구들과 재회하고, 경유 밀수에 가담하면서 마피아 세력과 엮인다.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고고학자의 누아르이자 스릴러, 그리고 멜로드라마다. 그리고 스크린에 바람이 불도록 하고 관객이 당면한 장소와 날씨를 온전히 살아내게 한다. 플롯으로 조직되지 않은 어떤 시간을 견뎌낸 관객이라면, 그 끝에서 러닝타임 중 한번쯤 소망하거나 기다렸을 법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또 <드림드 어드벤처>의 마지막은 <피오르>와 흥미로운 쌍을 이룬다. 엄혹한 세계에서 제각기 첨예한 주제를 들고온 작가들이 영화의 엔딩에서 공교롭게 포개질 때가 있다. 올해도 몇 편의 영화들이 그랬고, 범인은 사랑이었다.

두 영화보다 확실히 더 길어서 화제가 된 영화는? 196분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요양병원 원장, 그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말기암의 연극 연출가가 작품의 중심에 있다. 칸에서 체감키로는 역시나 미국, 유럽 기자들도 하마구치 류스케를 적극 애호하는 인상이다. 비르지니 에피라가 열띤 일본어를 구사하면서 <드라이브 마이 카>의 다국어 연극처럼 언어 교류에 따르는 감동도 불러냈다. 따뜻하고 우호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영화에 다소 교훈적이라는 평가도 보인다. 다만 제작 시점을 생각할 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쌍을 이루는 영화로서 작가적 관심사의 한 지점을 단단히 매듭짓는 역할을 했다. 한쪽은 죽어가는 자연, 한쪽은 죽어가는 사람을 다루며 이를 초래하고 악화시키는 자본주의 세계가 배경막이다. 전편이 숲속 마을의 군상을 넓게 펼쳤다면 신작은 친밀한 관계의 성질에 집중한다. 감독상 수상작인 <라 볼라 네 그라>, 남우주연상을 두 배우에게 공동으로 안긴 <카워드> 등 퀴어영화의 존재감이 강했던 올해 경쟁부문에서 모두가 비공식 퀴어 팜으로 연호했던 영화도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였다.

한편 <미노타우로스>에 관해서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뤼미에르 1층의 3열 가장자리 좌석에 배치된 나머지 앞줄 관객의 뒤통수에 가려 영화 자막의 절반쯤만 보았고 이후 재상영도 모두 놓쳤다. 그러니까 러시아영화의 영어 자막을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면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야 정확할 텐데, 다소 오만을 무릅쓰고 <미노타우로스>는 언어 이전에 이미지로 분명히 포착되는 영화였음을 적어둔다. 안드레이 즈뱌긴체프가 우화를 구성하는 감독이라서다. 클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여인>의 구도를 현대 러시아로 옮겨온 즈뱌긴체프는 기업 CEO인 주인공이 아내의 불륜 상대를 처단하려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당국의 강제징집 요청에 응해 노동자들을 선별하는 과정을 병렬한다. 일상에 녹아든 현대 전쟁의 풍경 속에서 국가 폭력과 가정 파탄이 이보다 더 또렷할 수는 없을 만큼 교차하는 영화다. 아이디어로 본다면 <미노타우로스>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결론적으로 훌륭하다. 엄밀함 덕분이다. 즈뱌긴체프는 예상 가능하며 도식이 확고한 영화를 그저 펼치놓는 것이 아니라, 육중한 우아함을 지닌 화면에 옮김으로써 설득시킨다.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즈뱌긴체프는 시상식에서 푸틴에게 “학살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리바이어던>과 <러브리스> 이후 투병과 망명을 거쳐 약 10년 만에 돌아온 그는 올해 칸이 확인한 바 예술과 정치가 분리 불가능하다는 진술의 살아 있는 증거다.

➂ 바쟁 극장(Salle Bazin)

<드림드 어드벤처>팀 포토콜.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칸을 오래 찾은 기자들이라면 주로 작은 바쟁관에 머무를지도 모르겠다. 기자, 평론가들만 드나들 수 있는 프레스 상영관으로, 영화제의 중심인 컨벤션 센터 팔레 데 페스티벌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프레스룸에 있다가 커피 한잔을 빨리 해치우고 상영관으로 올라가면 그만이다. 따라서 확연히 노년 기자들이 많다. 이 일에 호기심과 자부심이 있는 젊은 기자들이라면 종종 그들의 능숙함을 지켜보면서 많은 감회를 느낄 만한 공간이다. 칸을 처음 찾았을 때 내 감상도 그랬다. 70대 평론가들이 거기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모습에 어떤 경외감을 느꼈다. 올해는 같은 공간에서 헌신의 이면을 보았다. 이 경험을 쓸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데드라인>을 비롯한 현지 소식통들이 이미 보도했으므로 간단한 경위만 옮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비터 크리스마스>가 바쟁관에서 상영한 지 약 15분이 지났을 무렵,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응급실을 찾는 장면에서 나와 같은 줄에 앉아 있던 초로의 기자가 건강상의 위급 상황을 겪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나와 몇몇 기자들이 보안 요원을 불렀고 상영관의 불은 켜졌으며 당연히 영화도 중단되었다. 병원 이송 전까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상영관을 나가달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알모도바르의 영화가 재개된 것은 동료가 병원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까지 전해진 무렵이었다. 관계자가 무대에 올라 상황을 브리핑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시작된다”고 말하자 그제야 안도의 박수가 터졌다. <비터 크리스마스>는 심란한 소동을 겪은 이후 이어진 영화여서만은 아니고 확실히 알모도바르 영화 중 평작에 속할 작품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일에만 전념한 광고 감독 엘사가 편두통 발작 끝에 친구와 란사로테섬으로 떠나는 이야기, 그리고 엘사의 삶을 각색하는 영화감독 라울의 이야기가 이중으로 얽힌다. 중반까지는 평이하기 그지없는데 후반에 이르러 이 영화가 <페인 앤 글로리>의 후속작임이 선명해지는 구간만큼은 돋보인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그랬던 것처럼 알모도바르는 엔딩크레딧의 헌사를 통해 자기 영화의 쓰임새를 밝히고 그것이 실로 유효하게 다가오는 희귀한 감독이다. <비터 크리스마스> 역시 그가 사랑한 어머니, 여자배우들, 상실한 시절과 존재들에 대한 헌사로서 미덕을 발휘한다. 넘쳐 흐르는 멜랑콜리와 색채는 물론 여전하다. 자신에게 남은 유한한 시간을 인지하는 76살 작가가 쓴 <비터 크리스마스>를 보고 나오는 길, 오늘 함께 끝까지 영화를 보지 못한 어느 베테랑 기자의 안부가 더더욱 걱정스러웠다.

그 밖에 올해 바쟁관에서 틈틈이 본 경쟁부문의 프랑스 초청작들은, 자국영화를 일정 비율 안배함에 있어 집행부의 쇄신이 필요함을 확신케 했다. <여자의 일생>(감독 샤를린 부르주아 타케), <가랑스>(감독 잔 에리), <버스데이 파티>(감독 레아 미지우스)가 주범이다. 모두 여성감독들의 영화이고 여성영화라 할 수 있지만, 그 의미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럽다. 칸, 베를린, 베니스와 같은 국제 규모의 영화축제에서 감독의 성비를 적절히 살피고 발굴하는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칸의 ‘의식’은 부지런하지 못한 것 같다. 여성감독들의 선정에 있어 프랑스 감독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올해 경쟁부문을 통과했더라면 더 큰 파급력을 지녔을 사이드바의 여성 혹은 논바이너리 감독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주목할 만한 시선 <한밤중의 연인들>의 소데 유키코, 같은 부문 <틴에이지 섹스 앤드 데스 앳 캠프 미아즈마>의 제인 쇤브룬, 비평가주간 <라 그라디바>의 마린 아틀랑. 다수의 지지 속에서 쇤브룬의 영화는 퀴어 팜을, 아틀랑의 영화는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했다.

➃ 바르다 극장(Salle Varda)

<파더랜드>

바르다가 사랑한 해변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바르다 극장에서 본 올해의 인상적인 두편은 프리미어 부문에서 상영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흑뢰성>, 그리고 경쟁부문의 괴작인 아르튀르 하라리의 <언노운>이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흑뢰성>은 16세기 최고 권력자에게 반기를 든 성주 무라시게가 갇힌 성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탐문하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투옥시킨 명민한 적장에게 수사를 의뢰하게 된다. 2024년에만 <차임> <클라우드> <뱀의 길>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인 70대의 구로사와 기요시지만 시대극은 필모그래피에서 전례가 없는 영역이었다. 심리 스릴러와 호러의 장인답게 그의 사무라이극은 칼부림의 관습을 벗겨낸, 액션 없는 미스터리이자 대화극이다. 드뷔시 극장에서 <흑뢰성>이 첫 시사를 한 날엔 객석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고지, 소데 유키코가 나란히 앉아 스승의 영화를 관람하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편 <흑뢰성> 역시 올해 여러 아쉬움을 낳았던 경쟁부문에 차라리 들어갔으면 좋을 영화다. 2024년 알랭 기로디 감독의 <미세리코르디아>가 그랬듯이. 프리미어 상영작 선정에 있어서 칸 집행부는 앞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려 했으나 헤어초크가 거절했다고 알려진다.

온갖 괴소문을 접한 뒤 늦은 밤 바르다 극장에서 마지막 회차로 본 아르튀르 하라리의 <언노운>은 과연 괴이했다. 동시에 전반 1시간의 마력으로는 2026년 칸에서 본 어떤 영화들도 <언노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감독, 작가, 촬영에 포진한 하라리 패밀리는 최면적인 카메라워크와 편집술로 독창적인 음산함과 실존주의를 밀어붙인다. 만화적 컷 편집은 이 작품이 아르튀르·루카스 하라리 형제가 함께 쓴 그래픽노블 <다비드 지머만의 사례>를 원작 삼았을을 알고 납득이 갔다. 성적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불가해한 힘에 의해 신체가 바뀌는 남녀의 이야기다. 시놉시스만 보고서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나 조너선 글레이저를 떠올렸는데, 실체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후예에 더 가까워 보인다. 대단히 자유롭지만, 끝도 없이 침잠하는 전개가 사변적인 프랑스 문학처럼 미로를 형성하기에 관객에게 버거운 영화임은 사실이다. 끝내 스스로 불명 상태가 되길 택하는 영화가 수상작 경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후대에도 괴작으로 호출될, 오래 살아남을 작품은 이런 영화일 수 있다.

➄ 저 멀리, 크루아제트 극장(Théâtre Croisette)

북적거리는 뤼미에르 대극장 인근의 인파를 뚫고 해변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감독주간이 열리는 크루아제트 극장이 휴식처로 나타난다. 호텔 와이파이를 연결하지 않으면 통신마저 터지지 않아 거의 갇힌 기분이 드는데, 칸의 속보 전쟁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니 그것마저 위안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올해 가장 느린 영화, 그리고 가장 (좋은 의미로) 엉망진창인 영화를 만났다.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두배의 자유>의 감독 리산드로 알론소는 2001년 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데뷔작인 <자유>를 선보인 이후 슬로 시네마의 한 기준점으로 여겨져왔다. 그가 25년 만에 같은 인물(같은 배우)을 불러냈다. 아르헨티나의 벌목꾼 미사엘이다. 미사엘은 여전히 숲속에서 홀로 나무를 베며 살고 있는데, 예산 삭감으로 환자들을 강제 퇴거 중인 병원에서 누이를 데려오는 사건이 그로 하여금 고립을 깨고 나오도록 한다. 사회경제적 부담이 가장 먼저 떠넘겨지는 안전망 밖에서의 삶은 여전히 꿋꿋하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한편, 리산드로 알론소가 심은 정치적 날은 25년 전보다 짙은 우울도 벼려낸다. 알론소의 영화는 느림 그 자체가 윤리인 세계다. 2023년 발표한 <유레카>의 다층적 구조를 털어버리고 데뷔작의 단순성으로 돌아간 감독이 느리게 바라본 현재는 무척이나 황량하다. 전주국제영화제가 투자에 참여했고 작품을 배급할 예정이다. 한편 캉탱 뒤피외의 <현기증>은 감독주간 시상식의 유쾌함을 이어받기에 적절한 폐막작이자 뒤피외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PS1 게임을 연상시키는 3D 모션캡처로 제작된 이 영화는 자크라는 남자가 이른 아침부터 친구 브루노를 찾아가 인류는 사실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데서 시작된다. 뒤피외 특유의 부조리 코미디를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의 껍데기 안에 집어넣고, 시각적 조악함 자체를 미학적 선택으로 전환한 영화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죄책감이 드는데 사실 그저 눈물나게 허접해서 웃긴 영화다. 제79회 칸은 모두가 “정치가 돌아왔다”고 외치는 목소리로 뜨거웠던 동시에 어느 극장을 한없이 가벼운 웃음으로 채우기도 했다. 다름 아닌, 영화의 축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