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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개인적인 영화 - <파더랜드>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

<파더랜드>는 1949년 냉전 초기, 13년의 미국 망명 생활을 끝내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한스 치슐러)과 그의 딸 에리카 만(잔드라 휠러)이 독일 땅을 밟는 여정을 따라간다. 82분간의 로드무비는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토마스 만은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괴테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공산주의자들의 앞잡이”, “배신자”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하며, 동독 바이마르로 향하는 중에는 나치 시절의 과오 청산에 앞장서지 않는다는 원망에 처한다. 그리고 에리카 만과 영혼의 쌍둥이었던 동생 클라우스 만의 자살 소식이 부녀의 행로에 육중한 침묵을 더한다. <이다> <콜드 워>에 이어 작고 내밀한 관계를 거대한 역사적 배경과 결합하는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시도는 전작보다 덜 격렬하고 응축된 방식으로 감정의 정수에 다가간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 토마스 만의 무엇이 당신을 움직였나.

토마스 만의 전기를 읽다가, 그가 전쟁 중 미국으로 떠났다가 유럽으로 돌아오는 냉전 시기에 주목하게 됐다. 분단된 세계를 마주하는 대문호가 양쪽 어느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자신으로 기능해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구분짓는 세계는 조악하기 그지없다. 진짜 토마스 만은 그 너머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 독일 방문 전에 이미 일어났던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더해지면서 내러티브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감독으로서는 일종의 무모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도 있었다. 시간을 압축하고, 인물들을 이동시키고, 실제 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던 딸 에리카를 아내 카티아의 자리에 집어넣는 일 말이다. 에리카 만이 실제로 자동차 레이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녀가 차를 모는 게 멋진 설정으로 느껴졌다.

- 토마스 만과 에리카 만 모두 이미 사료와 연구가 풍성한 실존 인물들이다. <파더랜드>를 만들 때 전기적 정확성을 얼마나 중시했나.

예를 들어 토마스 만이 아들의 부고를 듣고도 고향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 에리카의 성정체성 등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토마스 만은 독일이 아니라 스톡홀름에 있었고 노벨상 수락 강연을 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끝내 아들의 장례식에 가려는 마음을 먹지 못했다. 연회장에서 에리카의 연인이 나타나는 것 또한 여러 소재 중에서 내가 골라 뒤섞은 결과다. 실제로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파더랜드>의 많은 부분은 실제 사건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지만 영화적인, 시간적인 압축을 거쳐 세공됐다. 그러니까 정의가 필요하다면 <파더랜드>는 픽션이고 얼마간 판타지에 가깝다.

- 부녀가 독일 문화의 중심지 바이마르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바이마르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나치가 세운 부헨발트 수용소의 비극을 고발하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실존 인물인가.

내가 만든 캐릭터다. 물론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언론인으로 나치의 만행을 폭로해온 오이건 코겐 같은 인물이 있기는 하다. 그는 실제로 토마스 만에게 편지를 써서 “바이마르에 가신다면, 바로 옆 부헨발트에서 자행되고 있는 정치범 수감 문제와 과거의 비극을 외면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달라”고 청원했다. 부헨발트는 괴테가 바이마르에서 이동해 그곳 숲을 거닐며 시를 썼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괴테의 도시와 강제수용소가 그렇게 나란히 놓여 있다니! 중요한 점은 여기서 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갈라진 두 독일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심적 괴로움을 가지면서도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했다. 나는 그 점을 토마스 만이 부헨발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부헨발트가 아니라 죽은 아들의 꿈을 꾸는 장면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끔찍한 꿈이란 그렇게 작동하기도 하니까.

- 작품에 착수한 뒤 토마스 만의 소설이 당신에게 준 영향도 있을까.

영감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뚜렷한 극적 호(arc)를 갖추지 않은 이야기, 드라마가 있긴 하지만 과도한 드라마 없이 조용히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의 모든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니다. 특히 <요셉과 그 형제들>같은 대작은 너무 방대해서 손도 못 댔다. 중편소설쪽을 좋아한다.

- 영화의 오프닝에서 에리카와 클라우스 만, 두 남매의 긴밀한 통화 장면이 펼쳐진다. 둘의 각별한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묘사하고 싶었나.

쌍둥이가 아닌데 쌍둥이로 불렸던 남매다. 두 사람은 모든 걸 함께했다. 클라우스는 게이였고 에리카는 양성애자였는데 나중에 클라우스는 에리카의 연인과, 에리카는 클라우스의 연인과 결혼했다. 나는 그게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많은 일들이 자유롭게 일어났지만 혼란스럽다기보다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적 형식과 규율 같은 것이 있었다.

- 흑백, 짧은 러닝타임, 아카데미 비율 등으로 묶이는 <이다> <콜드 워> <파더랜드>의 형식적 연결성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일까.

순서대로 서로 공교롭게 맞물린 것이다. 사후적으로 답하자면, 세 작품이 이제는 서로를 고양시키는 관계이길 바란다. 나도 공통점을 보는데 그만큼 차이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다>는 내가 영화작업의 기본 단위로 생각하는 사진적 이미지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완전히 정적이고 사진적인 영화였다. 어떤 면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일련의 사진들 사이를 채운다고 할까. <콜드 워>는 카메라 무빙이 훨씬 더 역동적이었고 음악도 더 많았다. 그리고 매우 격렬한 여주인공이 있었다. <파더랜드>도 닮은 부분이 있다. 에리카 만이 언제나 밖으로 나가거나 어딘가로 향하는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저 필요한 순간에 카메라를 움직인 것이다. 나는 예술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동기가 부여된 결정을 따르는 감독이다. 이 장면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뿐이다.

- 당신의 모든 영화가 90분 이하인 이유는. 간결함과 응축의 미학이 왜 중요한가.

미학인지 운동인지 아니면 운동성의 문제인지, 전부 다인지 나도 늘 헷갈린다. 자연스럽게 압축하게 된다. 나쁜 편집, 나쁜 장면을 넣지 않으려 하고, 단순히 기능적인 장면을 넣지 않으려 한다. 하나의 장면이 강하고 울림이 있도록. 그것들을 모아놓으면 영화가 충분히 적정한 분량을 갖추리라고 본다.

-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가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됐다. 부분적으로는 클라우스가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감정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가 묻는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진짜 느꼈던 게 언제였지?” 그는 욕망이나 아름다움, 초월의 감각 같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를 통과했고 역사적인 이유로 우울했다. 그리고 작품이 출판조차 되지 않아서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겼다. 또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세상이 도와주긴커녕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가버릴 때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토마스 만의 모습에서도 나를 봤다. 게다가 그는 나이가 들어버렸다. 자살로 인한 상실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슬픔 너머로 다른 할 일이 주어진다. 그래서 상처와 희망이 늘 공존한다. 마지막으로, 음악!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젖히고 스스로를 비워낼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