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코로나 이후 최고기록 경신한 한국영화

2026년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 - 봄부터 여름까지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군체>

박찬욱 <어쩔수가없다>, 봉준호 <미키 17> 등 거장 감독의 복귀에도 전반적으로 성적이 부진했던 2025년의 최고 흥행작은 누적 관객수 563만명을 기록한 <좀비딸>이었다. 그 뒤로 <야당> 337만명, <어쩔수가없다> 294만명, <히트맨2> 254만명이 뒤따랐지만 천만 영화 없는 극장가는 회복세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2026년은 달랐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극장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1.9% 증가했고, 특히 한국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 매출의 94.2%를 회복했다. 올해 상반기 전체 영화 매출액은 5790억원, 관객수는 5705만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41.9%(1711억원), 34.2%(1455만명) 증가한 것이다. 상반기 흥행 톱3 모두 한국영화라는 점도 괄목할 만하다. 1위는 <왕과 사는 남자>(1691만명), 2위는 <군체>(574만명), 3위는 <살목지>( 324만명)다. 1~3위 모두 영화배급사 쇼박스의 배급작이다.

수치적으로 볼 때 2026년 상반기는 코로나 이후 최고기록을 경신한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한국영화 전체 매출액은 3702억원, 관객수는 373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81.7%(1665억원), 74.9%(1601만명) 늘었다. 해외영화는 예년 대비 관객수는 줄었지만 매출은 증가했다. 스케일 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개봉과 함께 아이맥스, 돌비, 광음 등 티켓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리미엄관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해외영화 매출액은 2088억원, 관객수는 1968만명으로 집계된다. 한국영화, 해외영화 모두 특수관을 가로지르며 상반기 특수관의 전체 매출액(457억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6.3% 증가했다. 특수관의 매출 증가 등으로 상반기 평균 티켓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1원 늘어 1만150원을 기록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분명 반가운 성적표다. 하지만 이 숫자만으로 한국영화의 체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다소 이르다. 시장 전체 매출과 관객수가 늘어난 것과 개별 한국영화가 관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반기 흥행작의 면면과 개봉작들의 성적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회복’이라는 진단 아래 여전히 엇갈린 성적표가 놓여 있다. 과연 무엇이 많아지고, 무엇이 늘어난 것일까.

봄에 다다른 늦겨울, <만약에 우리>와 <프로젝트 Y>

<만약에 우리>

2026년 1월까지도 극장가는 여전히 냉랭했다. <하트맨> <프로젝트 Y> <시스터>가 각각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지만 <하트맨> 24만명, <프로젝트 Y> 14만명, <시스터> 7만명으로 세 자릿수의 누적 관객수를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1월이 영화시장의 전통적 비수기인 것만으로 부진한 성적을 설명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가장 이르게 2025년 12월31일 개봉한 <만약에 우리>는 260만명을 동원하며 개봉 1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만약에 우리>가 1월 초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같은 시기를 맞이한 다른 세 영화가 그 분위기를 충분히 이끌어가지 못한 쪽에 가깝다. 작품 개별로 보면 아쉬움은 더 명확해진다. 배우 한소희, 전종서 여성 투톱물로 캐스팅 단계부터 관심을 끌었던 <프로젝트 Y>는 개봉 첫날 2만4398명의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하여 첫 주말까지 10만명을 모았다. 하지만 2주차부터 흥행 속도가 급격히 더뎌지더니, 1월30일~2월1일 주말에는 3일간 1만1385명에 그쳐 주말 박스오피스 12위까지 내려갔다. 이 지표는 산업 분석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스타 캐스팅과 관객의 관심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데까지만 유효하고, 개봉 후에는 부정적인 입소문과 실관람객 반응이 관객 이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타 캐스팅이 오프닝 도약을 도울 수는 있어도 롱런과 관심 확산까지 보증하긴 어렵다.

반면 같은 시기에 관객을 맞은 <만약에 우리>는 정반대의 흥행 곡선을 그렸다. 사실 <만약에 우리>는 개봉 전부터 흥행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영화는 아니었다. 구교환, 문가영 배우의 조합은 기존 멜로영화가 내세워온 전형적인 스타 캐스팅과는 결이 달랐고, 특히 원작 주인공과의 이미지 차이 등으로 관객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여기에 국내 관객에게도 익히 알려진 중국영화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했다는 점도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원작의 인지도는 분명한 자산이지만, 이미 완전한 결말로 인식된 이야기를 다시 관객이 선택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만약에 우리>는 개봉 이후 관객을 꾸준히 확장했다. 개봉 전의 우려를 고려하면 더더욱 눈에 띄는 결과다. 이 흥행은 스타의 명성이나 원작의 유명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개봉 전 제기된 약점을 작품 본연의 감정과 배우의 호흡으로 정면돌파하면서, 먼저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이 다음 관객의 선택으로 거듭해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설 연휴를 함께 통과한 <왕과 사는 남자> VS <휴민트>

<왕과 사는 남자>

설 연휴를 맞이한 2월부터 극장가는 본격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연휴(2월16~18일)를 기점으로 <왕과 사는 남자>는 2주 전(2월4일), <휴민트>는 1주 전(2월11일)에 개봉하면서 사실상 2파전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휴 기간 측면에서도 두 영화에 상황은 유리했다. 개천절부터 주말, 추석 연휴, 대체공휴일과 한글날까지 7일간의 (직장인 기준 개인 휴가를 덧붙이면 최대 열흘) 장기 연휴로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났던 지난해 추석 풍경과 달리, 2026년의 설 연휴는 대체공휴일 없이 주말 포함 닷새로 비교적 짧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가족 단위로 극장 대이동을 하기 적합한 상황. 하지만 그 유리함이 모든 영화에 돌아간 것은 아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초반부터 긍정적 입소문을 얻어 연휴 닷새 동안 267만명을 더하며 누적 관객수 417만명을 기록했고, 설 연휴 첫날인 16일에는 57만명을 동원했다. 코로나 이후 설 연휴 일일 최다 관객 기록이다. 당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한 상영관에 10대부터 70대까지 모든 연령층의 관객이 한데 뒤섞였다는 후기가 계속해 인증됐다. 손익분기점도 개봉 14일 만에 돌파했다. 반면 <휴민트>는 개봉 당시 사전 예매율 1위를 기록했지만 같은 연휴 닷새 동안 98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개봉일부터 연휴 마지막 날까지 누적 관객수는 128만명으로, <왕과 사는 남자>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 연휴가 끝난 뒤에도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이후 흥행세를 확장하지 못한 <휴민트>는 최종 관객수 198만명에 그쳤고, <왕과 사는 남자>는 1691만명으로 한국영화 역대 2위 기록을 세웠다. 올해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수 경신 속도가 어느 정도로 빨랐냐면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프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박지훈 배우는 본편 촬영 당시 119만명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영상 자막에는 600만명으로 기입되었고, 그 방송분이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의 제목은 ‘천만 영화’로 나온다. 해당 영상의 섬네일에는 ‘1100만’이라고 쓰여 있다.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을까. 가장 먼저 작품을 선택할 관객층의 범위가 달랐다. 설 연휴가 압축해 보여주듯 남녀노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왕과 사는 남자>의 역사적 소재와 달리 <휴민트>는 강렬한 장르적 취향을 앞세우며 비교적 좁은 범위의 관객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휴민트>가 액션과 장르성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현재 관객의 가치관과 다소 동떨어진 장면으로 관객 평가의 호불호가 나뉘었다는 인상이다. 감독의 대중적 이미지도 영향을 주었다. ‘눈물 자국 없는 몰티즈’ 등 친근한 별명의 장항준 감독이 무게 있는 사극을 맡았다는 소식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개봉 초반 방송인 유재석, 이동진 평론가 등으로부터 긍정적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감독 당사자가 직접 자랑해도 얄밉게 느끼지 않는 대중 친화적 이미지는 작품의 큰 결함으로 제기된 ‘호랑이 CG’도 하나의 밈으로 전환할 만큼 큰 포용력으로 작동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평행구조에 선 텐트폴, <군체> <호프>의 엇갈린 반응

<호프>

칸영화제의 환호를 받은 두 작품도 상반기에 관객을 만났다. 먼저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군체>는 진화하는 좀비라는 독특한 소재와 함께 배우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김신록의 호흡을 선보였다. 한달 빠르게 개봉하여 관객수 324만명을 달성한 <살목지>가 호러와 공포를 향한 관심을 달군 뒤였기에 <군체>가 그 분위기를 이어가기 적절했다. 그리고 영화배급사 쇼박스의 전략적 타임라인은 적중했다. <군체>가 관객수 574만명을 기록하며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올해 흥행작 2위에 오른 것이다. 속도도 빨랐다. 개봉 4일 만에 100만명, 5일 만에 200만명을 넘겼고 24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흥행의 핵심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부산행>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좀비 진화, 배우 전지현의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 개봉 시점 역시 5~6월의 연휴와 지방선거 등 관객 유입이 가능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바로 5월1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배포한 영화관 입장권 6천원 할인쿠폰(이하 정부 할인쿠폰)이다. 관객에게 지급된 정부 할인쿠폰은 총 225만장으로 배포 전날 대비 전체 예매량이 약 40% 증가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때 가장 큰 수혜를 본 작품이 바로 <군체>다. 정부 할인쿠폰 배포 첫날 전체 예매량은 31만7808장. 그중 1위를 차지한 <마이클>은 전날 대비 예매량이 1만5724장 늘어난 데 비해 2위를 차지한 <군체>는 전날 대비 2만1727장 증가했다. 예매율 1위보다 더 큰 폭으로 반등한 셈이다.

칸영화제와 정부 할인쿠폰의 경로를 모두 거친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다. 2026년 초 <씨네21>이 51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올해 가장 주목하는 영화’로 <호프>가 압도적 1위(51인 중 33표)를 차지했던 만큼 산업 안팎으로 많은 기대감이 모였다. 실제로 개봉 후 초반까지 <호프>는 <군체>와 비슷한 속도를 냈다. 개봉 첫날 33만명을 모아 올해 최고 오프닝을 기록했고, 개봉 3일 만에 100만명, 5일 만에 20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관객 평가는 개봉 첫날부터 엇갈렸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 7.22점, CGV 골든에그지수 83% 등 초기 지표에서도 호불호가 확인됐다. 대중적 관심도가 높았던 만큼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로 자유로운 후기가 퍼져나갔고, 기존 공식대로 실관람객의 반응이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지기보다 극단적 호불호로 나뉜 설전의 풍경을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이런 잡음에 다소 민감한, 그러나 흥행가도로 가기 위해서는 영화가 반드시 사로잡아야만 하는 일명 ‘머글 관객’들을 포섭하는 데 실패한 듯 관객 증가 추세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호프>가 상영된 기간 동안 온라인 곳곳을 장악했던 화제성과 실제 관람 규모 사이에는 실질적 간극, 혹은 선택적 공백이 존재한다. <호프>는 ‘좋다고 말해도 되는 영화인가 아닌가’. 주관식을 뛰어넘어 문화적 주제가 돼버린 시끄러운 질문 아래 중립지대에 머무는 관객은 오히려 <호프>를 선택하기도, 외면하기도 했다. <오디세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개봉이 잇따르면서 <호프>의 흥행 부진을 이야기하는 분석도 많지만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호프>의 교차적인 장르성을 생각할 때 메인 타깃이 크게 분리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보다는 호불호 감상이 계속해 중첩되는 사이 상당한 규모로 온라인상의 바이럴이 형성됐지만 그것이 새로운 관객의 유입으로 비례, 증가시키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2026년 상반기는 단언컨대 한국영화의 분기점이 될 만한 시기다. 영화의 땅으로 귀향하듯 많은 관객들이 실시간으로 문턱을 낮추는 중이다. 다만 관객들의 다양한 감상과 바이럴 방식이 역동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침체기를 거치느라 차마 반영하지 못한 요소들을 이제는 더욱 면밀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