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 적어도 2026년 한국영화에서, 우리가 알던 한국식 작가주의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본디 작가주의의 정수는 꽤 단순하며 거칠다. 장 지로두에 따라 “작품은 없다. 오직 작가(auteurs)만 있을 뿐”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후 앤드루 새리스는 영화에서 한 작가의 고유한 ‘약동’(Élan)을 느끼는 것이 작가주의의 중핵이라 주장했다. 작가라 불리는 영화감독에게 어떠한 신비를 부여하고 비평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일. 그것으로부터 영화를 인지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방향성이 바로 작가주의적 태도였다. 이 작가주의의 원리가 무너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한국영화 르네상스 무렵에 완성됐던 한국식 작가주의가 작금의 영화산업 안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식 작가주의는 산업 시스템 속 감독이 지닌 특유의 세계관에 있었다. 봉준호는 계급투쟁이라는 주제에서, 박찬욱은 탐미의 미학이라는 틀 안에서, 홍상수는 구조의 분해·조립이라는 특이에서 읽혔다. 장르의 영역도, 소재의 차이도, 사람의 됨됨이도, 기술적인 성취라고도 단정할 수는 없다. 앤드루 새리스의 약동을 다소 과감하게 현지화하자면 한국적 작가주의의 전제는 ‘정치적 태도’였다. 그것이 그들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가장 중요했다.
좌냐 우냐를 따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광의의 정치적 태도라는 것은 누군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뜻한다. 봉준호는 한강의 괴물마저 사회정치적 이슈의 산물로 보았고, 박찬욱은 지독할 정도로 세상을 탐미적이며 장르적으로 보았다(<공동경비구역 JSA>조차 사회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다자의 로맨스로도 해석된다). 홍상수는 어떻게든 날렵하게 모든 사회정치적 틀 짓기를 피해서 영화의 세계로 탈주하는 도사였다. 이창동은 전통적인 비극의 세계관에서 보통 사람들의 도덕적 몰락을 그렸다. 그들은 르네상스란 시스템 속의 작가였고, 대중도 그렇게 인지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물론 <왕과 사는 남자>의 이례적 흥행엔 장항준이라는 감독의 존재감이 강하게 동반됐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 장항준을 작가라 칭하기엔 모호하다. 스타 감독이라 쓰는 편이 옳다. 관객은 <왕과 사는 남자> 속 숏 어딘가에 각인된 작가적 비밀을 푸는 데에 딱히 관심이 없다. 장항준이라는 ‘사람’의 긍정적인 브랜드를 소비했을 뿐이다. 이 현상을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 다. 전통적 작가주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신비로서 영화감독을 바라본 것이고, 지금은 그 신비주의가 소용없어졌을 뿐이다. 지금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잠깐 눈을 돌리자면 <오디세이>에 대한 열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객은 크리스토퍼 놀런의 정치성이 아니라, ‘아이맥스’라는 별칭이 붙은 그의 브랜드에 우선 집중한다.
<군체>의 차례다. 혹자는 여기서 연상호 감독에게 작가라는 칭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연상호만큼 압도적으로 자신의 장르적 인장을 퍼뜨린 이는 현재 한국에 또 없기 때문이다. 그 장르영화들 속에서 꾸준히 비평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매체에서 넘어온 그가 배우의 얼굴을 쓰는 방식은 여전히 흥미로운 논제이며, <군체> 역시 그 연장에서 읽혔다(<씨네21> 1559호 ‘얼굴 없는 반쪽짜리 승리’). 하지만 비평적인 이야깃거리가 있고, 감독의 이름값이 높다고 해서 작가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연상호는 자신의 신비를 숨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연상호’라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 속에서 여러 변주를 가미하는 일종의 알고리즘(혹은 <군체>의 알파) 같은 존재다. 대중도 그를 신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누구나, 거의 대개의 대중이 그 시스템을 알고 연상호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인다. <군체>의 좀비 바이러스처럼 이것은 반응이지 풀이가 아니다.
<왕과 사는 남자> <군체>에 대해 우리는 장항준과 연상호의 정치성을 논하지 않는다. 논하는 비평가가 있더라도 대중은 그것을 딱히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대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 스스로 그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다. 관계는 역전됐다.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의 부피보다 훨씬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군체>는 딱 장르적인 범주 내에서 소비됐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팟캐스트 <회랑>의 공개 방송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 “사회는 정치보다 크다.” 바꿔 말하자면 사회는 영화보다 훨씬 크다. 영화를 두고 무수한 리액션이 온라인에서 일어나는데, 그것들은 어떠한 정치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단순한 유희, 집단적 애호, 임시적 유행, 문화적 거래 등은 사회를 대하는 정치성의 시선에 국한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현실적인 문제다. 애초부터 작가주의란 어떠한 비평가들의 수사였으며, 수사란 마케팅의 수단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마케팅은 소비를 촉구하고 시장을 움직인다. ‘작가주의’라는 틀이 한국의 영화산업에서 현실적 쓸모를 잃었다는 점은 개념적인 논제일 뿐 아니라 실무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24년 11월에 발행한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서 관객의 영화 선택 요인 중 ‘감독’은 36%에 불과했다. 장르가 82%, 소재가 79.8%, 함께 보는 사람의 취향이 56.6%였다. 대중은 감독들이 지닌 세계관을 독해하는 일에 피로감을 느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서사를 미리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 그것에 반항하는 현대 영화 소비자들의 심리와 비슷한 논리다. 지금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대중적인 소비재로 여겨진다. 어쩌면 초기 영화가 품었던 매체의 본질로 회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6년 영화의 정체성은 숏폼 콘텐츠로 잘리고, AI로 변형되어 소비되는 엔터테이닝의 소스에 가까워졌다.
이제 <호프>다. <호프> 앞에서 한국식 작가주의는 완전히 패배했다. 나홍진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있다. <추격자>에서 <호프>까지 그의 세계관은 꽤 일관적이다(<씨네21> 1565호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중한데? - 나홍진의 필모그래피, <추격자>→<황해>→<곡성>→<호프>’). 누군가는 충분히 나홍진의 약동을 느낄 법하고, 그를 작가라 부를 만하다. 다만 <호프>가 나홍진보다 컸다. <호프>는 작금의 소비문화에 꽤 어울리는 재료였다. 영화는 일종의 2차 창작을 통해 FPS 게임이나 댄스 챌린지 등으로 변주됐다. 대중은 <호프>에 나홍진의 작가성을 부여하기보다, 그저 보고 전유하기를 원했다. 비평이 억지로 잡으려 하는 작가주의의 틀은 큰 힘이 없었다. 물론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호프>가 칸영화제에 가지 않았다면, 비평적으로 별다른 화제를 부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호프>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호프>를 두고 2007년의 <디 워> 사태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20년 전의 평단과 대중은 심형래 감독의 ‘정치적 태도’(여기서의 정치성은 꽤 이념적인 뜻이었다)를 두고 싸웠다. 속된 말로 ‘국뽕이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당시 논란의 중심이었던 진중권 평론가는 공중파 방송인 <100분 토론>에 나와 대중이 <디 워>를 좋아하는 4가지 코드를 주장했고, 그중 첫째는 ‘국가주의’였다(심영섭,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논단. “‘대중비평(Mass Criticism) 시대’의 등장, 그리고 비평가와 대중의 거리(距離)”, 2010). 반면에 지금 대중은 <호프>를 두고 국가주의적이거나 정치적인 태도를 주창하지 않는다. 그저 놀이의 대상으로 삼고 싶을 뿐이다. 나홍진은 자신보다 큰, 본인의 정치성보다 큰 영화를 만들어버렸다. 완전한 역전. 지금 “작가(auteurs)는 없다. 오직 작품이란 이름의 재료만 있을 뿐”이다. 2026년의 대중이 원하는 것은 농밀한 세계관이나 작가주의적 해독이 아니다. 기호(記號)가 되기 이전의 기호(嗜好)만이 그 욕망의 대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