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킬링 장면이 밈으로 널리 퍼지는 일종의 ‘밈 마케팅’이 영화산업에서 홍보 방식으로 정착한 지는 오래다. 올해 또한 많은 영화들이 밈이 되어 먼 곳까지 나아갔다. 먼저 올해의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이 된 박지훈의 저력이 드러난 명대사, “네놈이 왕족을 능멸하는가”가 이곳저곳에서 소환됐다. 연약하지만은 않았던 단종의 이면을 보여주는 게 영화의 핵심인 것을 생각하면 작품 내 중요 컨셉을 미리 알리는 것은 물론, 영화가 처음인 주연배우의 호연까지도 함께 보여주기 좋은 셀링포인트였다. 실제로 해체 7년 만에 재결합한 보이 그룹 워너원은 멤버들이 돌아가며 박지훈의 명대사를 재연했고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진화하는 좀비라는 특징을 내세운 <군체> 또한 밈 마케팅의 원활한 동력을 얻었다. 좀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상체를 부르르 떠는 장면은 영화적으로는 기괴하지만 일상이 되면 웃음을 유발한 다. 이에 따라 영화 속 좀비들의 진화 모먼트가 <군체> 맛보기처럼 클립 영상으로 퍼져나가는 동시에, 교실에 모인 중고등학생들이 좀비 진화를 따라하는 틱톡 챌린지가 널리 확산됐다.
이러한 밈은 꼭 작품 안에서만 파생되는 것은 아니다. 무대인사를 돌던 <왕과 사는 남자>의 박지훈은 팬들의 스케치북에 적힌 요구사항을 남몰래 재빠르게 수행했는데, 마치 2000년대 초반 플래시게임 <강의 시간의 불청객>을 연상시키는 듯한 긴박한 재미에 무대인사 팬서비스 영상 자체가 하나의 밈 콘텐츠가 되어 퍼지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팬들의 요구에 ‘빼지 않는’, ‘자기 작품의 홍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성실한 배우 이미지가 작품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밈화가 무조건적인 흥행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올해 상반기 가장 강력한 영화 밈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와일드 씽> 속 최성곤(오정세)의 “네가 좋아~”일 것이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최성곤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대중은 오정세의 미성에 열렬히 반응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마케팅을 구가한 탓일까. 주연 3인이 등장하는 트라이앵글 뮤직비디오가 처음 공개된 건 4월21일. 개봉일 6월3일로부터 7주 전이다. 최성곤 뮤직비디오는 5월22일에 공개됐다. 이 서브 콘텐츠들은 레트로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환대받았지만 워낙 콘텐츠 순환이 빠른 세대라는 점을 반영하면 극장 내 충성도를 연결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트라이앵글의 “사랑은 왜 이리 왜 이리 어려운 건지”를 따라 부르고, 최성곤의 유행어 “러브 유 ☞^^)☞~♥︎♡”를 텍스트화하며 놀았으나 이토록 대대적인 관심과 달리 <와일드 씽>의 관객수는 134만명에 그쳤다. <와일드 씽> 손익분기점은 200만명이다(하지만 최성곤의 인기가 좀처럼 식지 않자 영화 현장 증정 굿즈로 최성곤 포스터가 나오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호프> 또한 “해술이가 말한 거면 맞아”, “화아아악 죽이세유” 같은 위트 있는 대사가 밈으로 전환되어 알려졌지만 이것이 흥행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밈은 그 자체로 흥행을 보증하는 장치라기보다 영화를 둘러싼 특정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고 확산하는 데 효용이 있다. 무엇보다 밈은 관객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변주하고, 서로 공유하며 놀이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작사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통적 마케팅과 달리 관객이 직접 콘텐츠 생산자가 된다는 점에서, 영화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작품을 일상적인 대화와 놀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끝에 탄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