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다시 극장의 중심으로 돌아왔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연초 <왕과 사는 남자>의 메가 히트 소식부터 호불호를 불러일으켰음에도 지지자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받았던 <호프>까지, 2026년은 지난해에 비해 한국영화계에 좋은 소식이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관객들은 분명 한국영화가 이전과 같은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는 듯 느끼지만, 업계 플레이어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현황을 살펴보고,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제도가 한국영화계에 미칠 효력을 점검해보자.
현재 한국영화 투자배급 상황은?
2026년 상반기에 영화를 한편도 개봉하지 않았던 CJ ENM은 9월에 최국희 감독의 <타짜: 벨제붑의 노래>, 10월에 연상호 감독의 <실낙원>을 개봉한다. 지난해에 이상근 감독의 <악마가 이사왔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개봉했고 올해도 적은 편수의 영화를 공개한 CJ이지만, 내년에는 CJ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CJ ENM은 올해 5편 정도의 신규 작품 제작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남동협 감독의 <정원사들>과 이모개 감독의 <남벌>, 우문기 감독의 <강시: 공포의 워크샵>을 포함해 신규 작품 투자와 배급에 들어간다.
최창우 CJ ENM 영화기획제작팀장은 “신중하게 판단하되 재미있다고 확신하는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방향”이라면서 “시장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작품 개발이나 제작 자체를 소극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관객에게 분명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를 더욱 면밀하게 판단하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최 팀장은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를 ‘확실한 맛’이란 키워드로 요약하며 “<왕과 사는 남자> <살목지> <군체> 등 관객이 작품에서 기대했던 재미를 명확하게 제공한 영화들이 좋은 성과를 거둔 반면, 기대했던 재미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했거나 장르적 매력이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은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투자 환경에 관해서는 “투자 환경이 개선될 수 있는 여건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라면서 “올해와 내년 극장 시장 및 한국영화의 회복세가 지속적으로 확인된다면 이후 자본의 유입도 보다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올해 상반기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김세형 롯데엔터테인먼트 투자제작팀장은 “올해 상반기 <하트맨> <와일드 씽>을 개봉하였으나 성과가 아쉬웠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트맨>의 경우 2021년에 제작한 영화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을 못하다 올해 개봉하였고 권상우, 문채원 등 배우들 모두가 열심히 홍보활동을 해주었으나 아쉽게도 성적이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한 <와일드 씽>을 언급하며 “가장 최근에 촬영을 마친 영화로 코미디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했고 배우 캐릭터 및 음원 등의 바이럴마케팅이 상당한 효과를 보였음에도 다소 못 미치는 성과를 내 전반적으로 아쉬운 상반기였다”라고 밝혔다. <하트맨>의 관객수는 24만명, <와일드 씽>의 관객수는 134만명으로 마무리되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그럼에도 한국영화를 꾸준히 투자배급하며 분투 중이다. 8월 말과 9월 말에 김미조 감독의 <경주기행>과 백종열 감독의 <부활남: 더 레드>를 각각 공개할 예정이다. 신작의 배급 일정을 확정한 손승록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팀장은 “<경주기행>은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 변요한 등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영화의 완성도를 깊이 있게 즐기는 관객층이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8월 말 개봉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부활남: 더 레드>에 관해서는 “유쾌하고 경쾌한 톤의 작품으로, 구교환 배우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스케일 큰 액션신이 다수 포진한 대작”이라고 소개했다. 손승록 배급팀장은 또한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관객층이 극장을 찾는 10월 연휴 시즌을 겨냥했다”라고 덧붙였다. <부활남: 더 레드>는 개천절과 대체공휴일로 이어지는 휴일을 노리고 9월30일에 개봉한다.
2026년 한국영화계를 논할 때 쇼박스를 빼놓을 수 없다. 쇼박스는 2026년 초부터 <만약에 우리> <왕과 사는 남자>로 좋은 성적을 내고 <살목지> <군체>까지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쇼박스 내부에서는 섣불리 샴페인을 터트리기보다 여전히 신중을 기하는 입장이다. 쇼박스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부터 연이어 개봉한 작품들이 다행히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고, 그것이 한국영화와 극장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큰 다행”이라면서도 “박스오피스 매출은 확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총관객수는 여전히 코로나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상반기만 보고 판단하기는 다소 이르다”라고 밝혔다. 또한 신작 투자와 관련한 질문에도 “당연히 영화가 다양하게 많이 제작되어야 하니 신작에 대한 내부적인 갈증은 크지만, 시장의 난이도가 높아진 만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라면서 “영화가 많이 제작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관객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때는 아니다”라고 보았다. 이와 관련해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프로듀서 A는 “의외로 쇼박스가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보다 조심해서 접근하자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메가박스중앙이 지난 6월15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상반기에 좋은 성적을 거둔 쇼박스는 부금 문제로 마냥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맞물려서 메가박스중앙의 영화사업(투자배급) 브랜드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상황은 복잡하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올해 이환 감독의 <프로젝트 Y>와 박봉섭 감독의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나홍진 감독의 <호프> 등 세편의 한국영화를 개봉시켰다. <프로젝트 Y>는 관객수 14만명,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16만명에 그쳤고,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알려진 <호프>의 경우 관객수 440만명을 기록 중이다. 아쉬운 성적과 향후 투자나 배급 계획을 묻는 질문에 메가박스중앙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현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부분이 없다”라고 밝혀왔다. 많은 투자배급사가 뛰어드는 9월 추석 시장에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참전하지 않을 예정이다.
NEW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는 해외 로케이션을 감행한 규모가 큰 영화였으나 관객수는 190만명 선에 그치며 아쉬운 성적을 받았다. <휴민트>가 한주 앞서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에 스크린을 빼앗기면서 NEW는 개봉 50일 만에 넷플릭스에 작품을 공개하였다. 상반기 성적표가 아쉬웠던 만큼 NEW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EW 관계자는 “한두개 작품은 연내에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수립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린라이트 혹은 착시
상반기에 극장을 찾는 관객이 늘었으므로 한국영화계도 회복세에 들어선 건 아닐까. 프로듀서 A는 “전형적인 착시효과”라고 선을 긋는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창 잘될 때 코스닥이 완전 바닥을 쳤던 것과 비슷하다. 전형적인 산업의 쏠림이 심각하다”라고 말한다. 대작 영화들을 연출한 감독 B 역시 “단순히 투자배급사가 한국영화 시장이 안 좋아서 조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돈이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이전엔 영화로 투자금을 잃더라도 그전에 벌어놓은 돈이 있어 수습되고 한국영화 투자의 로테이션이 이뤄졌다면 몇년간 투자금이 빠져나가기만 했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투자자 C는 이와 관련해 “요즘은 규모 있는 영화의 경우, 투자배급사가 홀로 메인 투자를 맡는 게 아니라 제작사와 공동투자를 한다”라고 귀띔한다. CJ ENM이 공동투자한 <정원사들>이 그런 경우다. 투자배급사의 떨어진 체력은 인력 면에서도 드러났다. 프로듀서 A는 “과거 한국영화가 60~100편가량 제작될 때 CJ ENM 투자팀이 3팀까지 있었고 1개 층을 150명으로 이뤄진 투자팀이 썼다. 지금은 야금야금 인력이 줄어서 60~70명 정도이고 나눠졌던 투자팀과 기획팀이 합해져 1개의 투자기획제작팀으로 운영된다”라고 설명했다.
떨어진 체력은 몸집 줄이기로 나타나고 결국 제작비 축소로 이어졌다. 프로듀서 A는 “요즘 제작되는 영화들은 순제작비 60억원 미만이 많다. 대형 투자배급사들도 대놓고 예산 작은 작품을 가져오라고 대놓고 얘기할 정도”라고 밝혔다. 투자자 C도 “코미디, 공포,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의 투자 문의가 많이 오고 대부분이 순제작비 40억~50억원 규모의 영화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영화감독 B는 “현재 순제작비 50억원 이하의 영화들이 제일 많이 제작된다”라면서 “과거로 환산했을 때 중저예산에 속하는 영화들”이라고 말한다. 내실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동의하면서도 영화감독 B는 “제작비 50억원 언저리 혹은 그를 조금 넘거나 조금 안되는 영화들만으로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보도록 할 수 있느냐, 했을 때 확신하기 어렵다”라면서 “편하게 OTT로 볼 수 있는 작품 이상을 현재 한국영화계가 해낼 수 있느냐를 생각해보면 우려스럽다”라고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비쳤다. 현재 줄어든 한국영화의 제작 규모로는 OTT에서 공개되는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오디세이>와 같은 블록버스터 양쪽 모두와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언뜻 극장에 순풍이 부는 듯 보이지만, 바야흐로 창작자나 제작자 모두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시대다. 규모 있는 영화를 다수 만든 영화감독 B조차 “이제 겁이 난다. 앞으로 한두 작품을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내로라하는 영화감독들조차 현재 영화 찍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OTT 영화의 경우, 잘되지 않아도 그렇게까지 티가 나지 않지만 극장 영화는 무언가 하나 삐끗해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산업 전체에 민폐가 되고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라고 현재 영화계의 경직된 분위기를 설명했다. 게다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법정관리 절차도 한몫했다. 프로듀서 A는 “CJ ENM이 최근 4~5편 정도의 투자를 급하게 결정하는 걸 보면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제외하고 이상근 감독의 영화 1편만 투자배급한 데 비해 5배 제작 편수가 늘어난 건 맞다. 하지만 한해 5편 정도 하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법정관리 신청을 했으니 늘어난 게 도로 줄어든 셈”이라고 분석했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제도, 한국영화의 마중물 될까
많은 영화인들이 올해 추석 시장부터 내년까지를 한국영화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는다. 영화감독 B는 이 시기를 “실낱같은 마지막 기회”라고 요약한다. “지난해에 이대로 한국영화계가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본영화계처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시장이 조금 살아나고 있어서 정말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든다.” 영화계 관계자 D도 “한국영화의 전체 물량이 적다보니 그동안 뜨문뜨문 개봉했다. 내년부터는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이하 중예산) 작품으로 월별 라인업이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예산 수혜를 받은 작품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차근차근 개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정한 데드라인에 따라 2025년 중예산 확정을 받은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제작 커버넌트픽쳐스, 감독 권오광)과 <몽유도원도>(제작 영화사두둥, 감독 장훈)가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예산은 한국 영화산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중예산 규모 영화의 신작 제작을 촉진하기 위해 2025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영진위가 보조금을 일부 지원하여 민간 투자 활성화를 적극 유도하고 영화산업 선순환 구조의 복원과 영화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목표로 정부 자금이 투입된다. 2025년에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을 준비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에 2027년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이를 감안하여 영진위는 약정일로부터 15개월 이내에 제작을 완료하고, 24개월 이내에 극장에 개봉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마침 리포트를 쓰고 있는 8월 셋째 주는 2026년 중예산 확정작들이 메인 투자 유치 결과를 영진위에 제출해야 하는 데드라인이다. 이번주가 지나면 정확히 2026년 중예산 확정작들의 진행 사항을 소상히 알 수 있을 전망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순항 중이다. 올해 4월 중예산 지원을 받은 작품은 모두 16편, 그중 2편은 이미 촬영을 끝냈다. 순제작비 20억원 이상 30억원 미만인 가군의 지원확정작 <나의 첫 번째 졸업식>(제작 이디오플랜, 감독 김진화), 순제작비 6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인 다군의 지원확정작 <정원사들>(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감독 남동협)은 프로덕션을 마무리하고 후반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는 중예산 확정작에 4개월 이내에 메인 투자를 유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촬영을 완료한 2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14편도 메인 투자를 확정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2편 정도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메이드’되었다.
한국영화의 마중물인 중예산을 통해 대형 투자배급사들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신규 투자에 돌입하고 있다. NEW는 지난해 중예산 확정작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도 지난해 확정작인 <몽유도원도> 촬영을 마쳤다. CJ ENM은 올해 지원을 받은 <정원사들>의 공동투자를, 쇼박스는 올해 지원을 받은 <당신의 과녁>(제작 씨앗필름, 감독 변영주)에 투자와 배급을 맡는다. 비교적 많은 신작 제작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은 영화감독 B의 말처럼 “실낱같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한국 영화인들은 다시 영화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