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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간적인 마주침을 위하여,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 김소영 영화평론가

김소영 영화평론가는 1994년 첫 영화 서적 <헐리우드 프랑크푸르트>를 낸 이후로 총 20권의 책을 냈다. 그중엔 공저자로 참여하거나, 영문으로 쓰인 책도 있지만 영화비평만으로 20권의 책을 낸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관해 묻자 정작 김소영 평론가는 “어찌저찌 그렇게 됐다”라고 말한다. “<한겨레 21> <씨네21>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여성신문> <한국일보>에 글을 썼다. 젊을 때는 (체력적으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지난 6월 출간한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은 영문 도서 <Korean Cinema in Global Contexts>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생태주의, 2부에선 디아스포라, 3부에선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영화를 다룬다. 첫장에서 재클린 밀스, 에밀리아 스카눌리터, 제인 진 카이젠 감독 등이 연출한 기후 위기가 스민 영화를 살피고, 다음 장에선 저자 자신의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만난 고려인 영화인들 최국인, 송 라브렌티의 삶과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는 신유물론적 관점에서 한국영화 <기생충> <어쩔수가없다>를 물과 불, 목재 등 물질적 관점으로 대 한다.

생태주의, 디아스포라, 신유물론, 세 가지 관점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행성이다. “행성을 뜻하는 플래닛(Planet)의 어원은 그리스어 플라나스타이(planasthai), 떠돌아다니다를 뜻한다. 세계화는 국민국가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결성하려는 시도이기도 하지만, 국민국가의 경계를 재구성하고 해체하면서 강제로든 자발적이든 디아스포라가 나타난다. 우르줄라 하이제는 이제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인식을 요구하고,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도 기후 위기를 포착하기 위해선 인류적 차원의 사유가 아니라 행성 시대를 개념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바탕에 둔 사유의 물길이나 수심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책을 집어들면 반짝하는 사유의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가 선형적인 지식이 아니라 순간적인 마주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가령 책의 중반에서 할애하는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에는 부모를 잃고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화물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 할머니 마리아 코발렌코가 등장한다. 짧은 만남만으로 노년의 여성에게 겹겹이 포개진 역사가 글을 읽는 자 앞으로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는 책의 후반부가 집중하는 물리학의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통용된다. “주요하게 인용한 캐런 바라드의 양자물리학이나 그의 저서 <우주의 중간에서 만나기>를 보면 찰나를 강조한다. 2시간 남짓의 영화 러닝타임이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형적인 시간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간성이 필요하다.”

영화학자가 양자물리학이나 신유물론에까지 손을 뻗은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 팬데믹이 계기였다. “이전엔 대학서 강의하면서도 중앙아시아, 러시아,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안산을 돌아다니며 다큐멘터리를 작업했다. 코로나로 모든 길이 막히면서 탐독한 차크라바티의 ‘행성의 시대’란 개념이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다. 이후 이사벨 스탕제, 캐런 바라드, 도나 해러웨이, 제인 베넷 등 여성과학자, 여성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이론을 구성했다.”

순간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알아차린다는 건 결국 영화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김소영 평론가는 인터뷰 중 “시네필의 순간이라는 건 영화와 감응하면서 발생하는 어떤 계기와 비선형적인 비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선사하는 건 실험영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시네필로서 그는 이 책에서 어떠한 위계도 없이 다종다양한 영화를 다룬다. 예를 들면 라우라 우에르타스 미얀 감독의 실험영화 <아에콰도르>를 분석할 때도 그는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피츠카랄도>와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을 나란히 소개한다. 제인 진 카이젠 감독의 <이 질서의 장례>에 등장하는 동티 설화를 설명하면서는 장재현 감독의 <파묘>를 각주로 불러들인다. “대중영화 평론을 오래 해서 어떤 영화든 편견 없이 대하려 한다. 그리고 영화에 내재된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그것에 실패해서 이론을 들이댈 때가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웃음) 기본적인 자세는 그렇다.”

영화를 내밀하게 살피는 과정이 있기에 저자가 영화 외부에서 불러들이는 이론이나 사회상에 관한 사유가 단순히 반영주의적 해석으로 읽히지 않는다. 이번 책 <행성의 순간, 영화 의 감각>에는 기후 위기와 이주, AI까지 여러 사회상에 주목하지만 그 시선의 중심에는 늘 영화가 자리한다. “영화의 내재성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김소영 평론가는 “영화 안에 작동하는 여러 가지 힘들이 기존 이론이나 개념이 아닌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까 늘 고민한다”라고 전했다. 최근 개봉한 <호프>에 관해서도 그는 촬영과 로케이션의 힘에 주목하여 “이전엔 한국영화가 할리우드를 모방하려는 욕망이 강했다면 이미 할리우드가 내재화돼 있고 이제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새로운 도약이자 도박”이라고 보고 있다.

김소영 평론가는 지난 7월 정년을 맞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도 부지런히 이번 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그동안 너무 과로해서 그 사이클을 멈추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과하게 일하면서 어느 시점을 지나면 어떤 순간도 즐길 수가 없게 된다”라고 말하지만 그의 사유를 다시 접할 일은 멀지 않을 듯하다. 요즘 사로잡힌 테마는 ‘유령 기술’이다. “기존 인간 눈 중심의 시각화가 아닌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레이저 펄스를 발사해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여 주변 물과의 거리와 형상을 정밀하게 3차원 입체 정보로 구현하는 첨단 원격 감지 기술.-편집자)와 같은 기술에 관심이 있다. 마야문명을 탐색할 때, 한국에서 보도연맹 학살이 일어난 곳을 찾아낼 때 쓰이는 기술이다. 망자를 불러오는 기술이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폭력의 지침들, 그것들을 보게 해서 유령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전의 그의 작업이 그러했듯 유령 기술 또한 글과 영화로 곧 이끌려 나오지 않을까. 그다음을 마주할 날을 기다려본다.

이 책을 펼치게 할 영화

<어둠의 깊은 지대>

“에밀리아 스카눌리터 감독의 <어둠의 깊은 지대>(2022)를 추천한다. 책의 표지 역시 이 작품의 스틸이다. 스카눌리터 감독은 ‘생태, 젠더, 기술의 얽힘’이란 책의 부제에 걸맞은 작업을 제일 용감하게 실천해내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어둠의 깊은 지대>는 해양 과학자들이 기후 위기를 이겨낼 새로운 산호종을 찾기 위해 심해로 잠수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