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책> 뒤표지에는 두개의 문이 있다. 벨기에 화가 그자비에 멜레리의 그림 <도어>를 옮겨둔 것이다. 문들은 거울에 비친 한쌍처럼 비스듬히 서 있는데, 달리 보면 전혀 다른 두 방의 입구 같기도 하다. 김유태 작가는 이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에서 영화와 원작 도서의 관계를 봤다. 문학을 전공해 책을 “본향”으로 여겨온 그는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에서 출판과 영화를 담당하는 기자다. 책에 뿌리를 둔 영화를 보면 원작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히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부터 탈출하고 몸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에 촉각이 곤두섰다. 2018년부터 쌓인 그 탐문의 기록이 단행본으로 묶였다. 작가는 “철학에서 말하는 쾌(快)” 자체에 목적을 뒀기에 오랜 시간 연재처와 코너명을 바꿔가며 원고를 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내게 영화 <클로저>(2004)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 같지 않았다. 원작 희곡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서너번을 봤다. 나중에야 원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희곡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중고 서적을 손에 넣어 끝까지 읽었다. 원작과 영화의 결말이 다르니 주제도 달라진 것만 같더라. 무엇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둘 사이에 나만의 해석을 덧대고, 독자에게 공유하는 일이 즐거웠을 뿐이다. 차이를 탐색함으로써 두 세계 모두를 추체험한 듯한 환각을 느꼈달까. 그제야 이 서사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기분마저 들었다.”
김유태 작가는 <밤과 책>에 23편의 영화와 책을 짝지었다. 양쪽 공히 사랑할 수 있는 작품들로만 구성했다. 다만 한국 작품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외화에 집중했다. 수록 순서는 인쇄 직전까지도 고민했는데, 결국 <색, 계>가 첫장을 차지했다. 원작자 장아이링의 삶에서 소설의 기원을 가늠해보고, 소설과 영화에서 극장이 어떻게 언급되는지 견줘보고, 세번의 정사신 중 햇빛이 직선으로 틈입하는 순간을 포착해 한자로 된 영화의 원제(‘色|戒’) 속 세로선을 해석하는 등 공을 들였다. 이 밖에도 발견의 기쁨을 안긴 영화로 그는 <더 로드>(2009), <양들의 침묵>(1991), <패왕별희>(1993)를 꼽았다. 공통의 키워드는 ‘손가락’이다.
“코맥 매카시가 쓴 소설 <로드>는 주인공 남자의 소지품을 빼앗는 도둑의 손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오른쪽 손가락이 전부 잘린 그 모습이 ‘살로 만든 주걱 같았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자꾸 뇌리를 맴돌았다. 그 뒤 영화를 다시 보니 도둑이 열 손가락을 다 펼치며 빈손을 확인시키는 장면이 있더라. 특수분장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차이를 유심히 고려해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영화 <양들의 침묵>에는 없는 설정이지만, 원작 소설에서 렉터 박사는 다지증이다. <패왕별희>의 청데이도 여섯개였던 손가락을 소설에서는 두번, 영화에서는 한번 잘라낸다. 이런 변주를 돌려보고 돌려보면서 건질 수 있는 의미들을 적어 내렸다.”
초등학교 4학년 딸 덕분에 더 눈여겨보게 된 소재도 있다. 바로 체스. 아이가 1학년 때 방과 후 교실에서 체스를 배운 뒤로 같이 두는 시간이 늘었다. <콘클라베>(2024)에는 선종한 교황의 체스 실력을 치켜세우는 대목이 있는데, 소설에는 교황이 늘 이겼다는 문장만 있는 반면에 영화에는 “그분이 항상 여덟수는 앞섰다”는 대사가 삽입되었다. 왜 한수가 아닌 여덟수일까? 이는 체스판이 가로 8칸, 세로 8칸으로 이뤄졌으니, 교황이 상대의 수까지 내다볼 정도로 판을 장악했다는 뜻이 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2013)의 오프닝 시퀀스는 또 어떤가. 이 작품을 “그레고리우스(제러미 아이언스)가 규칙을 벗어나는 이야기”로 요약한 김유태 작가는 짐작했다. 첫 장면에 나온 그레고리우스의 체스판에는 분명 규칙을 어긴 한수가 있으리라고. 친구는 그에게 과잉 해석이라고 핀잔을 줬다지만, 김유태 작가는 잘못된 비숍 위치를 짚어냈다.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을 한 구석을 가만히 들여다본 결과물은 <밤과 책>에 체스판 배치도로도 담아뒀다. 집요한 시선으로 문학과 영화를 경애해온 그가 지금 가장 꽂혀 있는 작품은 단연 <오디세이>다.
“부끄럽지만 호메로스가 쓴 원전 <오디세이아>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왜 이 시점에 <오디세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지 묻게 되더라. 과거에 쓰인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지금 다시 만들어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늘 뒤따르니까. 어쩌면 놀런 감독은 이 영화로 세계 곳곳의 군인들에게 어리석은 전쟁을 반복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과연 원전에서도 이런 참회와 속죄의 테마가 두드러지는지 궁금하다. 파편적으로만 알았던 세이렌이나 키클롭스 이야기뿐 아니라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원전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밤과 책>에도 주로 소설을 다룬 만큼 서사에 잘 매혹되지만, 김유태 작가가 내러티브에만 천착하는 관객은 아니다. <호프>에 “별 5개 만점에 6개를 주고 싶다”고 극찬한 그는 취재차 방문한 칸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두번 봤고, 매번 열광했다. “이야기 들려주는 것에 관심을 두는 대신 관객 반응을 실시간으로 예상하고 배반해 나가며 한국영화 계보를 비껴간 선택”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서 “가성비를 외치며 왜 극장에 가야 하느냐고 따지는 시대를 뚫고 나가려는 몸부림”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에너지를 전염시키는 영화와 책에, 김유태 작가는 계속 마음 쓸 작정이다. <밤과 책>과 닮은 포맷으로 ‘한국영화편’을 엮는 소망을 품고 있고, 어느 시인과의 인터뷰집도 준비 중이다. 그는 “극장의 어둠과 책 속의 문장, 두개의 비현실에 기댈 수 있었기에 현실을 살아낼 수 있었다”는 고백을 차기작으로 거듭할 것 이다.
이 책을 펼치게 할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시간과 체력이 부족해 미처 책에 수록하지 못한 원고들이 있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와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비교한 글도 그중 하나다. 영화 속 장면에서 책등이나 표지로 얼핏 드러난 이름이었던 수전 손택을 키워드 삼아 썼는데, 그 소품은 아마 <은유로서의 질병>이나 <타인의 고통>이 아니었을까. 손택의 책들이나 시그리드 누네즈의 원작을 읽어봤을 정도의 열정을 가진 분이라면 <밤과 책>을 펼쳤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