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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두를 위한 영화 상영 환경 만들기,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서수연 작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머잖아 가로로 짧고, 세로로 긴 글 상자가 돌아왔다. 그는 저서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에 쏟은 마음에 더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가독성 좋은 단문들로 꾸려 행갈이를 거친 답신을 보내왔다. 상대가 빠르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배려한 그의 메시지에서 숙련된 직업인의 향기가 났다. 그는 우리나라 1호 음성해설 작가. 2003년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시작으로 영화, 공연, 전시 등 7800여 작품의 음성해설을 썼다.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를 세워 음성해설을 연구하고,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음성해설은 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라고들 여기지만 그는 이를 “세상의 이야기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 부른다. 그는 20여년간 그 도구를 세공해왔다.

- 음성해설 작가라는 직업을 생소하게 여기는 분이 많다. 자기소개 노하우가 생겼을 듯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을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해하신다. 내가 쓰고 낭독한 해설은 물론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지만, 비장애인의 감상에도 다른 감각을 전할 수 있다. 이제는 시청각 정보를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로 나를 소개한다. 콘텐츠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시각장애인을 배제하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 성우 데뷔를 꿈꾸며 녹음실을 드나들다가 음성해설 대본을 쓰고 읽는 일을 제안받았다. 도전을 결심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복지관에서 낭독 봉사를 할 때도 시각장애에 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음성해설이라는 걸 알고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인 드라마, 영화 감상이 어렵다는 현실을 그제야 안 것이다. 한번은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 체험을 한 적도 있다. 이런 사건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도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터득한 음성해설 방법론을 책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1부에 아낌없이 풀었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극영화, 드라마에서는 카메라워크에 대한 해설을 자제한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도심 풍경이 쫙 드러나는 숏을 보고 “카메라가 도시를 비춘다”는 식의 해설을 쓰기 쉬운데, 이렇게 하면 시각장애인은 어떤 인물이 카메라를 들고 화면에 나온다고 오인할 수 있다. 인물이 스파이나 촬영감독일 수도 있지 않나. 잘못된 정보 전달을 피하고 스토리로의 몰입을 돕기 위해 촬영 기법은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의 바다>처럼 카메라가 자유자재로 수면 아래를 돌아다녀 기포를 일으킬 정도로 눈에 띄는 사례들이 있다. 이때는 촬영 기법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설명을 곁들인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잘 타야 한다.

-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라고 해서 색상 묘사를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밝혀두기도 했다.

많은 분이 시각장애인은 곧 전맹(全盲)이라 착각하는데, 시각장애인의 80%는 저시력 장애를 가진 분들과 사고나 지병으로 중도에 장애를 얻은 분들이다. 색을 일부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색을 기억하고 있다. 전맹이어도 색을 알고, 특정 색을 선호하기도 한다. 생활보조원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의 옷을 고르는 식이다. 책에도 적은 것처럼 “진짜 색이 완성되는 무대는 우리의 뇌 속”이기에 시각장애인도 색깔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통로를 넓혀야 한다.

-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주로 담당하다가 처음으로 극장용 영화의 음성해설을 맡은 작품이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2007)이었다고. 관객이 한 공간에 모여서 관람하는 특성은 어떻게 고려했나.

일부러 극장에 방문해 의식해보니 영화보다 환경이 확 체감되더라. 특히 주변 관객의 웃는 소리, 호흡 소리가 내게 예리하게 스며들었다. 코미디 장르의 특징이기도 했다. 연극 공연할 때도 비슷하다. 어떤 날은 관객이 많이 웃지만, 어떤 날은 아무도 웃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지 파악해 음성해설과 겹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도 음성해설 작가의 몫이다. 코미디만큼이나 호러 장르의 음성해설이 까다롭다. 공포영화는 음향효과로 인해 더 무서워지는데, 그 사이를 음성해설이 파고들어야 한다. 분위기를 흐리지 않으면서 공포의 포인트를 밝히는 음성해설을 쓰기가 쉽지 않다.

- 2009년 영화 <해운대> 영상 유출 사건이 음성해설 작업 환경에 파장을 불러온 탓에 <이끼> 음성해설 대본을 쓰기 위해 남양주종합촬영소까지 다녀온 일화도 있다. 근래 음성해설 작가의 노동환경은 어떤 편인가.

음성해설 자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내가 아무리 이를 “모두를 위한 일”이라 해도 소수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수요가 적다는 판단은 예산 문제와도 연결된다. 비장애인도 외화를 보기 위해 한글자막이 필요한 것처럼 시각장애인도 음성해설을 필요로 하는데, 한글자막과 음성해설의 가치는 다르게 매겨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음성해설 작가를 키우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인건비는 적다. 그러다보니 미흡한 대본이 양산되는 현실도 막기 어렵다. 피해는 고스란히 음성해설 이용자들이 받는다. 관련 기관에서 살뜰히 살펴봐주길 바랄 따름이다.

- 영화계에서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는 용어가 확산되었고, 공연계에서는 배리어컨셔스(barrierconcious)나 무장애 같은 말도 쓰이나 접근성(accessibility)이라는 표현을 권장한다고.

다들 유사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용어들이지만 배리어프리나 무장애 같은 표현은 장애를 없애야 한다는 식의 의미로 혼동되거나 창작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경향도 있다. 반면 접근성을 높이자는 목적으로 가용 재산과 인력을 동원해 하나씩 시도하다 보면 모든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강박은 덜 수 있다. 접근성이라는 말이 어색할 수는 있지만 낯설수록 여기저기에서 써야 익숙해진다.

- 경력을 쌓던 중 영국 런던시티대학교와 뉴캐슬대학교에 진학해 ‘기호간 번역’으로서의 음성해설을 깊이 공부했다. 유학 생활 당시 접한 ‘문화 매개자’(cultural mediator)라는 개념에 오래 시선이 머문 까닭은.

내가 음성해설로 작품과 관객 사이를 잘 중재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단절감을 줄 수 있다. 누군가의 트리거가 될 만한 요소, 스포일러가 될 만한 요소를 신경 써서 설명해야 한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닌 분석과 계획을 거친 매개가 내 역할이라는 걸 배웠다. 그 깨달음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키워줬다. 그러니 음성해설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서 음성해설 기능을 켜서 그것만 참고할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식견을 넓히라고 권하고 싶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할리퀸 로맨스부터 무협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서했다. (웃음) 자기만의 언어가 풍부한 사람일수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 책을 펼치게 할 영화

<한란>

“최근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한란>음성해설을 쓰고 있다. 영화는 물론 재밌어야 하지만, 시대를 아우르는 기록으로서도 의미를 가진다. 제주4·3사건의 역사를 다룬 <한란>도 그 예시다. 맥락은 다르지만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에도 음성해설의 역사와 인식 변화가 녹아 있다. 이 또한 뜻깊은 기록으로 바라봐줄 독자라면 책을 재밌게 읽어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