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예년과 차원이 다른 맹렬한 더위 탓에 영화관은 상영관이라기보다 피난소에 가깝다. 그런데 늘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괴짜는 있는 법이다. 기왕 피난 온 김에 영화를 좀더 깊이 생각하고 싶은 이들, 엔딩크레딧이 오르면 스마트폰 검색 대신 책을 먼저 찾는 이들을 위해 최근 출간된 5권의 번역서를 소개한다.
일찍이 더들리 앤드루는 현대 영화이론이 영화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정복하려는 ‘총체화의 충동’을 거부하며 출발했다고 썼다. 아래 소개할 책들의 장점 역시 매끈한 이론보다는 영화와 직접 부딪히며 남긴 생생한 흔적에 있다. AI가 별점 3점쯤 되는 평균을 향해 수렴할수록, 내가 그날 무엇을 보았는지 적은 불완전한 기록이 오히려 귀해지는 시대다.
시대의 온도를 재는 두권
히토 슈타이얼의 <미디엄 핫: 발열 시대의 이미지>와 수전 손택의 <영화에 관하여>는 반세기 넘는 간격을 사이에 둔 현장 보고서다. 전자는 AI와 기후 위기, 데이터 노동이 이미지 생산을 바꾸는 현재를 기록했고, 후자는 손택이 1960년대부터 말년까지 남긴 비평·인터뷰·일기·편지 등 32편을 묶었다.
위대한 지성의 일관된 영화론을 기대하며 <영화에 관하여>를 펼쳤다가는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첫 글부터 ‘영화의 쇠퇴’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는 거창한 시대적 부고라기보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어진 특정 극장 문화의 쇠퇴를 향한 증언에 가깝다. 토마스 엘제서의 지적처럼 손택이 애도한 것은 영화제작 자체가 아니라 “뉴요커들이 영화를 보던 방식”이었다. “다른 어떤 도시보다 열배는 더 세련된 곳”인 뉴욕을 기반으로 한 자칭 “고급 문화” 내부자의 엘리트주의적 향취가 종종 버겁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남긴 메모와 일기다. 공공 지식인의 지성이 영화와 충돌하며 일으키는 연쇄반응은 퍽 재미있다. 예컨대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이라는 글에서 손택은 오프닝을 묘사한 뒤 곧바로 ‘밀렵꾼’이라는 주제를 꺼내 마지막까지 논의를 밀어붙인다. 엄밀함보다는 비평적 가설을 겁 없이 던지는 ‘속도’야말로 손택의 진짜 무기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겁 없음’을 잃어버린 현대 공공 지식인들의 태도와 자연스레 견주어보게 된다.
한편 <미디엄 핫: 발열 시대의 이미지 >는 지금 가장 뜨거운 쟁점을 다룬다. 최근 들어 AI 논의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글 ‘평균 이미지’에서 슈타이얼은 생성형 이미지를 실재의 흔적이 아닌, 방대한 데이터에서 추출된 통계적 산물로 규정한다. ‘사진적 닮음’이 ‘확률적 그럴듯함’으로 대체되면서 사회적 편견과 상투성, 착취된 노동은 은폐된다.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를 대단한 철학인 양 포장하는 테크 자본가와 투자 구루의 언어가 범람하는 요즘, 슈타이얼 특유의 저항 정신과 유머 감각은 무척 반갑다. 저자도 인정했듯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몇몇 문장은 벌써 낡아버렸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급변하는 세계를 증언하는 1차 사료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붉은색 텍스트 디자인이 눈을 피로하게 하는 데다가, SF를 ‘공상 과학’으로 구태의연하게 번역한 점은 다소 아쉽다.
이 두권을 겹쳐 읽으며 지금 비평이 해야 할 역할을 고민해본다. 줄리언 스탈라브라스의 표현을 빌리면 생성형 AI는 복잡성을 제거하는 ‘반엔트로피 기계’다. 그렇다면 지금 영화를 보며 적어야 하는 건 깔끔한 설명보다 평균에서 삐져나온 특이한 세부와 불편한 오차에 대한 집착일지 모른다.
도무지 영화와 관련이 없는
<숀벤 라이더 | 바람꽃 시나리오>와 <태풍클럽 시나리오>는 동명 영화의 4K 복원을 계기로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인터뷰, 평론 등을 묶어낸 책이다. <태풍클럽 시나리오>에는 소마이 신지 감독이 연출 의도를 묻는 질문에 “각본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난 몰라요”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하지만 두 시나리오를 찬찬히 읽다 보면 이 대답은 차라리 농담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숀벤 라이더> 시나리오의 도입부만 읽고 그 유명한 오프닝 롱테이크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다른 롱테이크 장면도 마찬가지다. 촬영되지 않은 에필로그는 그럭저럭 흥미롭지만, 어쨌든 영화 자체를 어떻게 찍었는지 알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시나리오다. <태풍클럽>은 한술 더 뜬다. 이를테면 수록된 글 대부분이 켄이 미치코를 쫓는 장면을 성적 격앙이나 강간 시도로 읽는데, 이는 각본상 켄이 벌이는 행동이 비교적 한쪽으로 명확하게 설명된 탓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해당 장면이 다르게도 읽힐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은 왜 손소녕의 글을 제외하면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 이외에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엔 불일치하는 점이 많다. 각본에서는 몸이 수면 아래 감춰진다고 적힌 대목도 영화에서는 정반대로 수면 위 곧게 튀어나온 몸으로 바뀌었다. 각본에 적힌 지침이 촬영 현장을 통과하며 변형됐다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소마이 신지가 분명히 각본에 그렇게 쓰여 있는 걸 잘 알고 찍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각본을 ‘결정본’이 아닌 ‘출발점’으로 읽어야 하며, 그래서 오히려 글을 읽는 재미가 커진다.
괴수라는 특잇값
다카하시 도시오의 <고질라가 오는 밤에>는 앞선 책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지만 정제된 학술서라기보다는 에세이나 즉흥 강연록에 가까운 거친 글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1993년 초판 뒤 여러 차례 개정 증보를 거친 이 책은 전후 수소폭탄 실험과 고도성장의 맥락 속에서 고질라를 읽는다. “인상이 강하다” 같은 주관적 표현이 불쑥 나오는 성긴 호흡이 묘한 쾌감을 주며, 그 와중에 ‘위치의 우위설’처럼 번뜩이는 통찰을 던진다.
앞서 언급한 ‘평균 이미지’가 기존 규범의 확률적 재생산이라면, 다카하시가 말하는 고질라는 그 규범을 깨뜨려 시대의 윤곽을 드러내는 ‘특잇값’이다. 저자가 내내 강조하는 ‘고질라는 괴물을 죽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인간의 변화를 요구하는 존재’라는 명제도 여기서 힘을 얻는다.
내게 21세기 고질라 영화 중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동시대 벌어진 3·11 동일본대지진과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정면으로 다룬 <신 고질라>(감독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였다. 이를 떠올리면 최근작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다시 ‘전후’로 회귀한 선택은 다소 구태의연하게 느껴진다. 책을 덮고 나니 자연스레 이런 비판적 감상이 피어올랐다. 만약 내 의견에 누군가 이견을 품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고질라가 오는 밤에>가 지닌 진정한 쓸모일 것이다. 고질라를 시대마다 다시 사고를 재촉하는 장치로 돌려놓는 힘이 이 책에 담겨 있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