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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결국 움직이는 사람, <암살자(들)> 배우 박해일

재환에게서 누군가는 해준(<헤어질 결심>)을, 혹은 장한(<덕혜옹주>)이나 민철(<제보자>)을 떠올릴지 모른다. 배우 박해일이 <암살자(들)>에서 꺼내든 카드는 본연의 곧은 심지다. 여러 필모그래피를 통해 쌓아온 그의 반듯한 이미지가 <암살자(들)>에서 정점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재환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저격 사건을 취재하는 영일(이민호)에게 지시를 내리던 때부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낭독하는 순간까지 재환은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느낄 수 있다. 그 속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끓어오르고 있음을.

사진제공 하이브미디어코프

- <암살자(들)>을 보며 시나리오도 재밌을 것이라 추측했다.

허진호 감독님이 간간이 동네에서 보자고 연락하신다. 그렇게 지난해 즈음 건네주신 시나리오가 <암살자(들)>이었다. 정말 빠르게 읽혔다. <헤어질 결심>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2022년에 연달아 개봉하고 3~4년의 공백을 뒀다. <행복의 나라로> <한산> <헤어질 결심> 감독님들이 다들 개성이 세지 않나. 연이어 찍고나니 지치더라. 그러다 <암살자(들)>시나리오를 읽고 이제 다시 움직일 때라는 걸 직감했다. 허 감독님은 나의 한계도 잘 알고 계신다. 그 상태에서 내게 어울리는 역할을 제안하셨을 거라 짐작해 믿고 따라갔다.

- 재환은 첫 등장부터 호송차에 탄 채 이송된다. 언론을 통제하는 당시 분위기와 외압에 굴하지 않는 재환의 성정을 일찍이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첫 촬영도 호송차 신이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좀 공포스럽더라. 시대적 공기를 느끼기 아주 좋았다. 그걸 찍고 재환이 신문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 작품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겠구나 하고 감을 잡을 수 있었다.

- 기자의 시선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끝난다. 중심인물인 재환으로서 극을 이끄는 재미가 있었을 듯한데.

70년대의 신문사 기자 역이 처음부터 긴 호흡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한국영화에 그리 많진 않았던 것 같다. <제보자>에서 언론인 역을 하긴 했지만 두 작품과 캐릭터의 결이 달라 재환이 신선했다. 동시에 허 감독님이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이 워낙 현실에 발붙이고 있어 그 부분에 관해선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작품을 준비할 때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이번 작품은 성격이 좀 달랐다. 제작사에 타자기를 미리 요청해 두드려보고, 미술팀이 신문사를 구현하던 와중에 “여기가 재환이 자리인가요?” 하고 끼어들어 의자에 앉아 대사도 읊고 움직여도 봤다. 재환에겐 신문사가 전진기지와 다름없으니 그 공간과 시대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 재환 특유의 톤이 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신뢰감, 안정감이 차분한 목소리에서 비롯하는 것 같았는데.

중견 기자이자 부장이니 경험치도 있고 한 발짝 떨어져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졌을 것이다. 긴급한 상황이더라도 머릿속으로 정리가 된 상태에서 지시를 내릴 테고. 그렇다고 고압적이진 않고 팀원들의 생각을 자주 묻는 등 수평적으로 일한다. 어떤 기자분이, ‘선배’, ‘부장’ 등 팀원들이 재환을 부르는 방식이 지금도 유효하다더라. 호칭에서도 느껴지는 팀의 동료의식이 재환의 태도에 반영됐다고 생각했다.

- 영일(이민호)을 유독 예뻐한다는 인상이다. 때로 무모하게 느껴지는 영일의 열정을 믿어주고 신입인데도 기꺼이 지면을 내어준다.

윤희(류혜영), 만섭(김대명) 같은 팀원간의 연대감이 기본적으로 단단하다. 매사 발 벗고 나서며 추가 취재가 필요하다고 해외로 떠나는 영일을 보며 조금씩 그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됐을 것이다. 편집됐지만 재환이 일본에 간 영일을 걱정하는 장면도 있었다. 재환이 자기 팀을 무척 챙기는 인간적인 사람 같다.

- 철구(유해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팀을 챙긴다.

철구는 가족을 챙기지만 재환은 가족에 관한 배경이 없다. 이 팀을 가족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감독님과 준비할 때 그런 얘기를 하긴 했다. 재환의 개인사를 구축하고 싶어서 “결혼은 했을까요?” 하고 물어보니 감독님 눈이 갑자기 반짝반짝해지시는 거다. 멜로물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럼 나도 덩달아 “한번 갔다 왔으려나…” 하며 삼천포로 빠져도 보고. (웃음) 그런 식으로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환경을 잘 만들어주셨다.

- 재환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낭독할 때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모두가 그를 지킨다. 그만큼 재환의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리는 게 느껴졌다.

그 신이 촬영 후반부에 배치돼서 다행히 전사를 쌓아올린 뒤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장에 있는 모두의 온도가 뜨거웠다. 지금도 기억난다. 이전 작품에서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라 나 혼자 만든다기보다 내 앞의 동료들에게서 전달되는 에너지를 탁구 치듯 주고받으며 연기했다. 자세히 보면 대사도 뭉개지는데 감독님은 그게 더 현실감 있다고 생각해 오케이하신 것 같다. 내 감정이나 톤이 튈까봐 걱정했는데 잘 나와 만족스럽다.

- 재환 입장에선 한 회장(정우성)을 만나는 장면부터 서서히 감정이 고조되어온 셈이다.

맞다. 다 맞물려 있다. 철구와 동료 기자들이 취재한 증거들을 취합하고 정리해 한 회장을 찾아가는데 김재환 부장으로선 그게 첫 취재이자 인터뷰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전체 흐름을 보니 재환이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려 많은 준비를 했고 또 보기보다 움직이는 사람이었더라.

- 재환이 야외로 나갈 때 흥미로운 일이 자주 연출된다. 정부가 마지막 브리핑을 하는 기자회견장에서도 재환의 몇 마디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난도가 높은 신 중 하나였다. 재환에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는데 조사 본부가 상황을 마무리하려 하니 이러한 정황은 어떻게 설명하고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 것이냐고 계속 물어본다. 재환의 액션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기자회견 신을 찍기 전날 미리 현장을 방문했다. 옆에서 혼자 큰 소리로 대사를 읊으면 미술팀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됐다. 느린 사람이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본촬영 때 헤맬 것 같았다. 재환의 가장 적절한 온도를 감 잡고 다음날 촬영에 임했다.

- 항상 현장에 미리 방문하는 스타일인가.

매번 그렇진 않다. <암살자(들)>은 당일에 해결하기엔 버거울 것 같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 직감이 들 때 촬영장을 찾아간다. 연극배우 출신들이 종종 그런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 역시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