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낼 사람이 필요했다. 배우 변요한은 그 문을 자신이 닫기로 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의 장태영은 정교하게 짜인 판 위, 현장의 우연들 속에서 빚어진 인물이다. 앞만 보고 내달리던 원작의 장태영보다 더 분노를 품고 나아가는 인물.
- <타짜: 벨제붑의 노래>를 택할 때 전작의 무게 때문에 망설여지지 않았나.
두려움이 있었다. 근데 만약 다른 배우가 이걸 찍고 그 영화를 나중에 보면 내가 비겁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이 시기에 나에게 이 작품이 찾아온 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자는 도전심이 생겼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전편과 연결 지점이 없는 다른 세계관이다. 2, 3편에는 고니 가족과 이어지는 전사가 있지만 이번 편에는 그런 전사가 아예 없고 미래만 보고 나아가는 구조라 흥미로웠다. 그런데 막상 연기를 하려니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 원작은 주인공 장태영의 시점으로 시작하는데, 영화에선 내레이션을 박태영(노재원)이 하면서 장태영을 소개한다. 전반부의 장태영은 마냥 밝지만,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 성격이 바뀐다. 1장과 2장의 장태영을 분리해서 접근했나.
“너 이렇게 만든 게 네 친구”라는 대사를 듣는 장면이 장태영의 변곡점이었다. 베트남 촬영 분량 중 첫날 그 장면을 찍었다. 무더위에 굉장히 습하고 모든 신체의 바이오리듬이 확 바뀐 날이었다. 컨디션도 몸의 리듬도 안 좋았는데,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니 그 상태가 장태영의 현실 같았다. 조중환(윤경호)에게 500원을 받는 순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눈물이 나더라. 대본에도 운다는 말이 없고 나도 울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 <한산: 용의 출현> 때 와키자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단순한 악역이 아닌 앤태거니스트로 정의했다고 했다. 장태영은 그간의 역할들에 비해 명료한 캐릭터다. 그럼에도 배우가 불어넣은 입체성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나 혼자 고민한다고 캐릭터가 보이는 현장은 아니었다. 내가 해야 하는 포지션이 있고 다른 배우들과 서로 채워주고 나눠야 했다. 풀리지 않던 답이 현장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본을 연구하면서 장태영이 된 게 아니라 현장에서 노재원 배우나 다른 배우들과 만나면서 장태영이 됐다. 장태영은 구김살이 없고 사건이 터지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인물이고 오직 현재만 보고 사는 사람인데, 신마다 그걸 분석하고 들어가는 게 어려웠다. 복수의 마지막 장면이 나에게는 해답이었다. 박태영에게 “불안하고 무섭지?”라고 하는데 그게 캐릭터의 핵심과 같았다. 박태영에게 소리 지르고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는데 내 몸이 가장 건조한 상태가 되더라. 장태영은 과거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고 앞을 보고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계속 심플한 텐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 아브라함 역에 문지훈(스윙스) 배우를 추천했다. 보통 캐스팅에 관여하지 않는 편인데,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나보다.
누굴 그렇게 추천하는 게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인데 그냥 딱 맞아떨어졌다. 마침 내 알고리즘에 문지훈 배우의 연기 영상이 떴다. 나는 다리만 놓은 거고 선택은 감독님이 했다. 나는 어떤 작품을 하든 마음가짐이 똑같다. 내 모든 걸 거기 쏟아내고 무사히 잘 끝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게 나에게는 전부다. 이번엔 <타짜>시리즈의 완결을 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이 지금 나에게 온 게 다행이란 생각도 한다. 더 혈기 왕성했을 때 맡았으면 과거를 뛰어넘고 싶다는 오기가 작동했을 것도 같다.
- 개봉을 앞두고 여러 유튜브에 출연했다. 과거에 개봉 전 홍보 활동들이 연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활동들이 편해진 것 같다.
<자산어보> 이후에 많이 변했다. 마음이 진짜 움직이고 좋아해야 그런 활동도 즐겁게 할 수 있는데, 그걸 찾는 과정이 있었다. 아름다운 사물을 보는 것보다 내 마음속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때 배웠다. 지금은 홍보 활동도 감사하고 즐겁다. 억지로 한 건 하나도 없고 다 실제로 신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서 영감도 많이 얻고 신나게 한 것 같다.
- 진심으로 즐기는 게 느껴졌다. 특히 <효연의 레벨업>은 조회수가 300만건 이상이다.
나도 하면서 어디까지가 대본인지 까먹었다. 가이드라인만 있었고 즉흥연기에 가까웠다. 엔딩을 이렇게 할 거고 이런 게임을 할 거다, 정도의 굵직한 컨셉만 있었고 그 사이엔 전부 주고받는 즉흥연기였다. 고도의 연기 스킬이 필요했던 것 같다. (웃음)
- 이번 영화는 체력 소모가 큰 작업이었겠다. 배에서의 격투나 묶여서 맞는 장면 등 합이 좋아야 하는 장면들인데.
원작에도 나오는 장면인데 현장에 가기 전에 몸에 대한 고민을 했다. 묶인 채 오래 있었을 사람의 시간 경과를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현장에서도 일부러 오래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서 살려달라고 외쳤으니 목도 쉬어 있지 않았을까 해서 대사도 쉰목소리로 했다. 그런 부분을 찾아가는 게 흥미로웠다.
- 40대부터가 진짜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앞으로 변요한의 40대 연기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깊어지고 싶다. 직관적으로 잘 보고 집중해서, 오랫동안 지켜본 것들을 마음속에 담아 또 다른 세계를 보여드리고 싶다. 영화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곳에서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대리만족으로 보러 오시는 관객들에게 일상과 동떨어진 세계를 선사하고 싶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면 ‘연기를 잘하고 싶다’, 오직 그 마음이다.
- 최근의 <경주기행>이나 <파반느>에서처럼 아주 작은 역할들도 주저 없이 선택한다. 역할의 비중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내겐 역할의 크기는 상관없고, 더 자유롭게 연기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 ‘나는 이 정도 비중의 이런 역할을 할 거야’라고 정하는 순간 그 자유로움이 없어진다. 배우로서 가야 할 길이 아주 멀고,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계속 확장하고 싶다. 역할에 대해선 욕심이 그득그득하다. 맡는 역할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카메라 앞에서도, 삶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