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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믿음직한 환경에서 이뤄진 연기, <암살자(들)> 배우 이민호

진상을 알아내려는 자와 사실을 말하려는 자 모두에게 거칠고 위험했던 1974년. 8·15 영부인 저격 사건의 내막을 좇는 <암살자(들)>에서 이민호는 자신이 맡은 동성일보 사회부 기자 한영일의 키워드로 “자유와 진실”을 꼽는다. 사건을 추적하는 결의 어린 얼굴 사이에서 영화가 가진 산뜻함과 여유로움이 드러날 때 그 장면의 중심에 한영일이 있다. <강남 1970> <전지적 독자 시점>, 드라마 시리즈 <파친코>를 지나온 이민호는 시대의 무게 아래서 진실을 말할 자유에 성큼 다가서려는 한영일의 굳은 의지를 선명하게 밀어붙인다.

사진제공 하이브미디어코프

- 한영일은 사회부 신입 기자다. 영화 배경이 되는 당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신입 기자와 기업가의 자제라는 두 설정 사이에는 간극이 커 보이는데.

그 설정이 오히려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고 여겼다. 영화 배경이 되는 1974년 무렵 이미 좋은 교육을 받아온 영일은 분명히 가슴속에서 끓는 지점이 있었을 거라 상상했다. 그가 가진 가족적 배경을 따라 주어진 길을 가면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있었겠지만 결국 영일이 원한 것은 더 주체적인 자유로움이었을 거다. 한때 가족적 뿌리를 부정했을 수 있어도 나이에 비해 성숙하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넓게 사고하며 자기만의 길을 꾸리려고 했던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 한국영화에서 이 시대의 기자는 주로 약삭빠른 기자와 패기 넘치는 열혈 기자, 두 모습으로 다뤄진 듯한데 한영일과 김재환 부장(박해일)은 이 두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보인다. 기존 시대극 속 기자와 다른 한영일을 어떻게 만들고 싶었나.

영일은 완성형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시대가 추구했던 저널리즘을 깊이 공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일 또래에게 주어진 시대적 억압을 얼마나 체감했겠는가, 그 시대에 자유로움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위험천만했겠는가에 대해 파고들었다. 시대상 기자라는 직업군은 특별한 위치에 놓이는데 여기 던져졌을 때 이 인물이 어떻게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갔을지를 우선했다.

- <암살자(들)>은 미스터리 추적극이지만 한편으로 한영일의 성장기로도 보인다.

신입 기자라고 하면 어리숙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나. 영일을 그런 인물로만 보지 않았고, 경험이 부족한 부분에 있어 방식을 터득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긴 해도 영리한 인물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란 영일이 약자를 직접 마주할 기회는 거의 없지 않았을까. 그랬던 그가 약자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영일이 가진 기본적 선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도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사건 현장의 또 다른 피해자에게 영일이 마음을 쓴다는 것부터가 그의 성장의 시작이지 않았겠나.

- 한영일이 등장하는 장면은 유난히 역동적이고 몸을 많이 써야 하던데.

현장 분위기는 꽤나 정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어떤 인물은 활어처럼 생동감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먼저 의견을 피력했다. 그 후로 리허설마다 어떻게 동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총성이 울리고 나서 앞으로 뛰어나갈 때 넘어지고 하는 것들도 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선이다. 그러다보니 영일은 늘 뛰어다니거나 누군가를 앞서 나가거나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로 표현됐다.

- 영화 전체가 가진 긴장 곡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영일이 가진 매력과 유머감각이 드러날 때가 있다. 현장에서 즉흥으로 연기했던 장면이 있나.

보통 인물을 준비할 때 과거를 충분히 정리해두고 현재와 미래는 느껴지는 대로, 직감에 맡기려 하는 편이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취재 과정에서 “쌍화차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는 신 같은 경우도 대본에서는 설명적이고 대사가 길었다. 감독님에게 다른 방향으로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린 뒤 현장에서 첫 테이크 때 그 대사를 말했더니 좋아하셨고 그렇게 해서 쓰이게 된 것 같다.

- 반대로 가장 치밀하게 계산했던 장면은.

정서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영일은 왜 기자를 하게 됐는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그 시대를 공부하고 그 시대에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추구했을 법한 설정은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했다. 시인들이 시를 써서 독립운동을 했듯이 영일은 펜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임했다.

- 한영일의 첫째 형과 만난 김재환 부장이 “너 많이 맞았겠더라”라고 말하고 영일은 “그 맷집으로 사는 거죠”라고 대답한다. 한영일이 기자가 된 배경에 대해서 상상해보게 만드는 장면 중 하나인데, 그가 기자가 된 이유는 집안에 대한 반항심일까, 시대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시대에 대한 반항이 더 컸을 거다. 그때쯤 대학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반유신운동이 일었고 영일도 당연히 동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 거다. 더 건강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분명히 했을 거고 의미 있는 데 그 에너지를 썼을 것만 같다. 집안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면 지금 영일의 느낌과는 달랐을 거다. 유복한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고 또 어느 정도의 존중이 있지 않았을까.

- 현대극도 그렇지만 시대극이 특히 잘 어울린다. 시대극을 연기할 때 현대극과 비교해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나.

이전만 하더라도 시대극에 이민호를 쉽게 매칭하기가 어려운 지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시대극에도 잘 어울린다라는 평가가 들려온다. 시간이 흘러 이제 어느 정도의 나이에 이르니 한 시대의 정서를 담는 데 괜찮은 배우가 되었다고 여겨주시는 게 아닐까. 현대극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면 시대극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 시대라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파친코>는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들이 발디딘 그 땅이 진정한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암살자(들)>도 결국에는 1974년에 발생한 사건이 주인공이라 여겼다.

- <암살자(들)>을 모두 마친 뒤 가장 오래 남아 있는 한영일의 모습은 무엇인가.

<암살자(들)>의 촬영 현장은 도서관처럼 조용하지만 묵직한 공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온전한 안정감을 느꼈고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거침없는 시도를 할 수 있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이런 면면이 한영일에게 담기게끔 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