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시즌1 첫회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던 2024년 9월로 돌아가보자. 한국에서 요리 예능은 이전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해왔고, 요리 서바이벌 역시<흑백요리사>가 처음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요리 서바이벌이었던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4와 <한식대첩> 시즌4가 모두 2016년 종영한 뒤 한동안 한국의 요리 예능은 예능인의 맛집 탐방이나 <편스토랑>처럼 연예인의 레시피와 일상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변모했다. 물론 그사이에 <냉장고를 부탁해>가 있었으나 이 역시 시청률이 점차 하락하자 2019년에 막을 내렸고, 알려진 대로 <흑백요리사>의 인기에 힘입어 2024년 리 부트되었다. 이는 <흑백요리사>가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 셰프들의 팬덤과 화제성을 입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즌1 방영 전 티저 영상에서 공개된 ‘흑수저, 백수저’라는 계급 설정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세트는 이전의 서바이벌 예능에 견주어 우위에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흑백요리사>는 다른 요리 경연과 달랐다. 미슐랭에서 검증된 셰프가 심사위원석에 앉고 요리사를 꿈꾸는 무명 요리사가 그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 기존의 요리 서바이벌이었다면, <흑백요리사>는 검증된 유명 셰프와 숨은 고수를 맞붙이는 구도로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 운다. 출연 셰프가 100명에 달하고, 제작 기간 1년, 참여 스태프의 규모 역시 300명 내외로, 쿡방에 익숙해진 한국 시청자들조차 기존 예능 문법을 비켜간 공식과 스케일에 압도당하며 붙들릴 수밖에 없었다. 당초 <흑백요리사>의 구상도 앞선 요리 예능과 비슷했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모은설 작가는 인터뷰에서 “처음 내가 받은 기획안은 ‘무명 요리사 100’이었다. 무명 요리사 100명이 출연하고 요리연구가 백종 원씨가 심사를 본다는 설정”(<씨네21> 1550호)이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재미를 위해 유명 요리사를 섭외했고, 유명과 무명의 구도를 ‘계급’으로 바꾸어 ‘흑수저, 백수저’라는 셰프간 집단 명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콜로세움 모양을 한 세트장의 아래층엔 80명의 흑수저 요리사를 모아두고 서로를 가늠하게 만든 뒤, 백수저 요리사들을 위층에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등장시킨다. 아래층의 흑수저 요리사들이 백수저 요리사들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세트 구조로 컨셉을 시청각적으로 각인한 것이다. 계층 구도와 더불어 시즌1은 12부작 동안 흑과 백의 일대일 토너먼트, 팀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연을 진행하며, 출발선이 달랐더라도 오직 ‘맛’만으로 겨루는 절차적 공정성을 강조했 다. 여기에 VCR 같은 스튜디오 바깥의 일상 영상을 배제하고, 셰프의 전문성과 단체전에서 드러나는 팀워크,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가 참가자의 실력과 인성을 함께 평가하도록 했다. <흑백요리사>의 성공 요인으로는 압도적인 세트와 종잡을 수 없는 대결 과제, 한국적인 경쟁의 속도감을 방송에 이식한 점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가장 먼저 짚어야할 것은,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참가자들의 인간적 매력에 시청자가 매혹되었다는 사실이다.시즌1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는 고기깡패와 맞붙으며 “저는 다른 경쟁자는 신경 쓰지 않아요.오직 제 자신과 경쟁합니다”라고 말해 서바이벌 참가자의 교과서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어떤 요리든 화려하게 더하기보다 본질에 충실할 때 높은 점수를 받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승패 바깥에서 시청자를 끌어당겼다.
<흑백요리사> 전후 무엇이 달라졌나
<흑백요리사〉 이후 한국 대중문화 콘텐 츠는 이 방송의 대대적인 성공을 참고하고 표방할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는 물론이고 MBN <천하제빵>, 최강록 셰프의 <식덕후>, 선재 스님이 출연한 <공양간의 셰프들>, 시즌1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가 출연한 <셰프와 사냥꾼> 등 파생 프로그램이 발빠르게 탄생했다. 여기에 <흑백요리사>로 인기를 얻은 대부분의 셰프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열거나 이미 운영 중이던 자기 이름의 유튜브 방송을 본격화했는데, 심사위원이었던 안성재 셰프의 유튜브 채널 <셰프 안성재>는 <흑백 요리사> 제작사인 스튜디오 슬램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물 들어올 때 배에 모터를 달아버 리듯 스튜디오 슬램은 <흑백요리사> 이후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후덕죽, 박효남, 김도윤, 윤남노 셰프와 요리 여행을 떠나는 <요할배>, 윤남노 셰프가 동네의 숨은 손맛 고수를 찾아가는 <윤남노포> 등을 신속하게 제작했다.
<흑백요리사>의 영향은 요리 예능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의 인기 셰프가 과거로 날아가 왕의 요리사가 된다는 내용의 <폭군의 셰프>를 연출한 장태유 감독은 <흑백요리사>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예능과 드라마, 나아가 유튜브와 쇼츠, 밈으로 콘텐츠가 재확산되는 방식 까지 대중문화 콘텐츠의 성공 공식은 <흑백요리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흑백요리사>가 촉발한 쿡방 유행은 이전의 대중적 쿡방보다더 미세한 차원에서 한국 외식업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의 쿡방과 먹방이 ‘시청자가 익히 아는 맛’을 화면에 담았다면, <흑백요리사>는 상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음식을 선보이고, 그 요리들은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대로 레스토랑에서 판매된다. <흑백 요리사>의 인기 셰프는 한식보다 파인다이닝에 집중되어 있는데, 1인 식대가 30만원에 육박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예약률이 높아진 데에는 출연 셰프의 음식을 직접 맛보고 싶다는 시청자의 욕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외식업계의 가시적 변화를 데이터로 산출해 발표한 캐치테이블의 자료에 따르면, 방송 이후 출연 셰프들의 식당 검색량은 74배 이상 상승했고 예약이 가장 많이 늘어난 식당의 예약 건수 증가율은 4937.5%에 달한다. 시즌1 우승자인 나폴리맛피아 권성준 셰프의 식당 예약 오픈일에는 동시 접속자만 11만명이 몰려 뉴스가 되기도 했다. 신성일 캐치테이블 CMO는 <흑백요리사>가 외식업계에 미친 가장 큰 영향으로 파인다이닝 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꼽았다. “이전에 대중들이 파인다이닝 음식 가격대에 대해 ‘왜 그렇게 비싼지 모르 겠다’는 반응이었다면 방송을 통해 셰프들이한 접시를 내기까지 쏟는 노력을 본 후에는 높은 가격을 이해하게 된 부분이 크다. 프로그램에 백수저 셰프들 중 미슐랭 다이닝 셰프와 파인다이닝 비중이 높아 방송 이후 파인다이닝 시장에 대중적인 관심도가 높아졌다.” 또한 “방송 전 외식업계 전반적으로 매장 예약률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는데, 방송 후 출연 셰프들의 식당이 엄청난 붐업이 되었고, 지금은 거품이 빠진 곳도 있지만 일부 식당은 여전히 예약하 기가 어렵다”며 방송 종영 뒤에도 이어지는 영향력을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