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악인 수출에 성공한 언더커버 수사물
한국 범죄드라마 역사상 이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악인 수출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수리남>의 주인공이자 대표적 악인 전요환(황정민)은 스스로 국제범죄를 모의한 인물로 묘사된다. 서슬퍼런 신군부 시절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주한 마약범죄 조직원으로, 반성은커녕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수리남에서 생존에 성공한 하이에나 같은 인물. 게다가 이 시리즈는 전요환의 글로벌 자수성가 과정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동료 사업가 강인구(하정우)와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의 언더커버 공조수사를 병치시켜 범죄스릴러 장르의 외연을 확장하는 캐릭터 관계도를 구축했다. 전통적인 피카레스크물과 언더커버 보디캅물의 캐릭터 구도가 느슨하게 결합된다. 드라마의 중심에 강인구를 놓으면 평범했던 가장의 기구한 역경을 다룬 범죄드라마 같아 보이고, 전요환 기준으로 재구성하면 넷플릭스가 이전에 뜨거운 성공을 맛봤던 <나르코스> 시리즈의 한국화 버전 전략의 일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국정원 해외 공작의 사실적인 수사 과정이 이야기 전면에 배치됐다는 점이 <수리남>의 범죄 사이즈를 키우는데 큰 몫을 했다.
한국 드라마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하거나 반도를 넘어 거대한 세계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인물의 대서사시를 다룬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김종학 PD 사단의 역사, 첩보 드라마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되짚어보면 그때도 강인구와 같은 탈현대사적 개인이 주인공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수리남>의 시대 배경이 2000년대 중후반이니까 해당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자연스레 현대사의 아픈 굴곡에서 약간 비껴나 있다는 직접적 영향이 있긴 하다(강인구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묘사된다). 다만 이 달라진 시대상을 한국 범죄드라마 계보의 변화상을 읽어내는 근거로는 충분하다. 플랫폼은 달라도 이후 드라마 <카지노>의 차무식(최민식) 같은 인물이 강인구와 전요환의 활약상 뒤를 잇게 된다고도 볼 수 있다.
PART 2 - 윤종빈의 노력하는 가장들
<수리남>이 보통의 범죄자의 성장 서사에 언더커버 수사 구도를 덮어씌우기하면서 도드라진 것이 강인구와 전요환의 관계다. 전요환이 밑도 끝도 없는 나쁜 놈인 건 잘 알겠 는데 그를 대하는 인구의 태도가 종종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테면 인구 입장에서는 요환이 자기 사업도 망쳐놓았고, 또 친구까지 죽였는데도 국정원의 공조수사에 종종 불응하려 한다.
민간인을 위험천만한 상황에 던져두는 공권력을 향한 불만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평범한 일반인을 사건의 중심에 놓는 드라마라면, 그를 대단히 억울한 위치, 또 상대의 악행이 두려워서라도 공권력에 최대한 협조하는 소시민처럼 묘사할 가능성이 크다. 윤종빈 감독은 명확한 선악 구도로 강인 구와 전요환을 구분 짓지 않는다. 인구는 서울에서 이미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던 남자다. 그것이 설사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놓인 유흥주점이라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전요환을 향한 분노를 품으면서도 동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더 희한한 것은 그가 돈을 밝히는 목적이 오로지 가족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 시절 흔한 남성의 사사로운 욕구 충족에도 딱히 관심이 없는 것처럼 묘사되고, 감옥에 갇혀서도 자식들 성적표를 받아볼 만큼 가정에 헌신적이며, 자기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오로지 애들 학교 보내고 키울 돈을 위해서 이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락한다고 말할 정도로 인구는 가족에 헌신한다. 도대체 인구가 국가를 신뢰하지 않으 면서도 가족을 최우선시하는 이 삶의 태도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윤종빈 감독의 전작 속 캐릭터와 비교하면서 생각해볼 지점이다. 예를 들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반달 최익현(최민식)이나 <공작>에서 국가 공작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했던 흑금성(황정민)의 인생이 오버랩된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속 가장들은 언제나 가정에 충실했다. 물론 법과 정의에 어긋날지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먹고 사는 일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남는다. 대체 전요환은 왜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에 마약범죄 조직원이 되었을까. 드라마가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지만 꽤 흥미로운 질문거리를 던져 준다.
PART 3 - 진짜로 믿게 만드는 배우의 힘
“너 사탄에 들렸구나.” <수리남>의 전요환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이 대사가 드라마 공개 당시에 화제가 됐다. 박해수가 연기한 국정원 요원 최창호의 “밥은 자셨어?”라는 대사 역시 그에 못지않게 화제였다. 이는 오직 배우만이 만들어낼 수있는 예술의 영역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극 중 일종의 반전 요소로 작용하는 노련한 조연 변기태 역의 조우진 역시 배신당한 중국 조직원에 거의 빙의된 듯한 표정과 분장을 하고 나타난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내부자들>의 조 상무 이후, 그는 지금 코미디와 스릴러를 종횡무진하는 보기 드문 커리어를 쌓고 있다.
사실 전요환을 비롯해 하정우가 연기하는 강인구 등은 모두 가상의 캐릭터지만 실제 사건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만큼 실존인물이 존재한다. 올해 초, SBS 예능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8회 ‘타깃 K 2부, 수리남 마약왕을 잡아라’ 편에서 <수리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실화에 관한 이야기가 방영됐고 이 국제 공조수사에 참여한 실존 인물들도 방송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건의 전말을 그대로 극화한 것은 아니다. 전요환의 경우 수리남에서 목사로 활동했다는 이력은 드라마 제작진이 상상력을 더해 각색한 허구다. 전요환이 마약상으로 활동하면서 수리남 정보 인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가짜 자개장이나 박찬호 사인볼 같은 걸 만들어 속이는 설정이 등장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기꾼의 캐릭터에 걸맞은 묘사다. 결국 인구가 요환을 감쪽같이 속인다는 결말까지 이어서 생각 해보면 사기꾼의 최후로 적절하다. 강인구와 전요환을 연기한 하정우, 황정민 두 배우가 윤종빈 감독 전작의 캐릭터 중에서 국경을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며 영역을 확장했던 캐릭터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 <공작>의 흑금성)를 각각 연기했다는 것도 작품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따져보면 영향이 없을 수 없)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