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올해 7월24일, 덥고 눅눅한 공기 중으로 기름 냄새가 풍기는 장안동의 한 중고차 매매 건물이 스태프들로 북적였다. 조성하 배우를 두고 세명의 연출자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이를 하나의 장편영화로 묶는 <페이시스: 조성하 프로젝트>의 첫 촬영작인 <재>를 위해 카메라와 붐카 메라 등 장비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조성하, 손병호 배우는 소파에 마주 앉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병호 배우가 중얼중얼 대사를 소리내 외우는 반면 조성하 배우는 조용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대사를 곱씹었다. 바깥은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쨍쨍하게 내리쬐는 오후 2시지만, 해지는 시간대를 표현하기 위해 노란빛의 조명이 켜졌다. 조경호 감독의 “액션” 소리와 함께 10신 촬영이 시작됐다.
손병호 배우가 연기하는 강 사장은 유골함의 문을 닫으며 “니가 태운 시체를 헤쳐 모여 시켜서 일렬종대시키면 연병장 다섯 바퀴는 될 거야”라고 말한다. 인심 좋게 웃는데 말의 내용은 섬뜩하다. 조성하 배우가 연기하는 두길은 ‘카론로지틱스’란 비밀스러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도대체 카론로지스틱스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물으니 조경호 감독이 “항구 근처에서 물류를 운반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업체인데 시체를 태우기도 한다”고 슬쩍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고 시체를 태워 없애는 곳”이라는데 두길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단다. 그리고 취재진이 찾은 이날 현장은 두길이 모종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순간을 촬영 중이었다. 강 사장이 “너 없으면 우리 회사 어떡하냐”라며 슬며시 웃는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 가르치면 관두고….” 두길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합니다”라고 읊조린다. 전투 배낭에 퇴직금을 두둑하게 담아 받았는데도 조성하 배우의 얼굴은 홀가분하거나 기쁜 기색이 없다. 초조함 사이로 무언가를 숨긴 자의 얼굴이 비쳤다.
떠나려는 사람과 붙잡는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자니 한여름 더위도 잊혔다. 미묘한 공기에 시간도 길게 늘어지는 듯느껴질 때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짐 챙겨 가지고 이 앞으로 나와. 터미널까지 태워줄게”라며 강 사장이 빙그레 웃는다. 두길이 “번 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강 사장이 성큼성큼 앞서 가버리고 혼자 남은 두길은 난감한 듯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과연 두길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리스신화 속 저승 가는 내의 뱃사공 카론의 이름을 딴 카론로지스틱스 사장실 에서 몇 시간 머물며 <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두길의 앞날이 불길 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전작 <거래완료>에서 독특한 상상력에다 따뜻함을 녹인 조경호 감독의 차기작이니 두길이 단순히 무의미한 고행을 겪지는 않을 듯하다. 조경호 감독의 <재>, 봉준영 감독의 <진공인간>, 연제광 감독의 <개와 인간의 대화>는 한편의 장편영화로 묶여 <페이시스: 조성하 프로젝트>란 제목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벌써 그 결과물이 궁금해진다.
강 사장은 일을 그만두는 두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주며 수고했다고 말한다.
강 사장의 사무실 안. 두길 뒤에 뱃사공이 강을 건너는 그림이 걸려 있다. 카론로지스틱스란 사명에 딱 맞는 그림이다.
강 사장의 친절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