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 빠진 뒤 마음이 요동치는 그 감각, 단순히 ‘첫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거대해서 한 시절의 챕터가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으로 가족영화의 서정을 넓혔던 윤단비 감독이 이번엔 소년, 소녀의 떨리는 여름으로 시선을 옮긴다. 신작 <첫 세계>(가제)는 대교도 없는 외딴섬에 사는 고등학생 소녀가 어린 시절 헤어졌던 또래 소년과 재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윤단비 감독은 자칫 가벼이 소비되기 쉬운 첫사랑 소재를 한 인물의 세계관이 송두리째 재편되는 ‘첫 세계’와의 조우로 격상시킨다. “아동에서 청소년으로 훌쩍 자라고 나아가 이성적 존재로 변모하는 성장기의 변신 자체가 관계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만드는 힘이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남매가 머무는 할아버지의 낡은 양옥집이 품은 시간의 결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냈던 윤단비 감독은 신작을 통해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장소들의 고유함을 읽어낸다. “아름다운 풍경을 채집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주민들의 일상을 가능한 한 생명력 있게 담아내려 했다”는 감독은 2025년 여름에 약 3개월간 소완도에서 제작진과 머물렀다. “‘밥 먹고 가라’며 환대하는 주민들과 부대끼는 사이에 시나리오상 계획하지 않았던 생활적 디테일이 영화를 더욱 두텁게 했다”는 후문이다. 덕분에 영화 곳곳에 섬 주민들의 생활상이 자연스럽게 담겼다. 그 속에 자리한 10대의 사랑, 특히 윤단비 감독이 그려낸 혈기 왕성한 미성년의 초상은 어떨까. “카메라가 방 안에 없다면, 혼자 있는 10대 여성은 과연 무얼 할까, 솔직하고 거침없이 담았다.” 영화는 에너지 넘치는 여성주인공의 변덕과 욕망, 날것의 표정을 포착했다. “<남매의 여름밤> 이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였다면, 이번에는 카메라가 인물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더 가까이 다가갔고 섬을 가로지르는 인물의 보폭에 맞춰 함께 요동친다.” 윤단비의 카메라가 비추는 17살의 세계는 섬마을의 정다운 풍경화 밖으로 흘러넘쳐 생생하고 야생적인 힘을 보여줄 듯싶다. 눅눅한 습기와 뙤약볕 아래서 한 시절의 문턱을 넘어서는 성장통을 다듬기 위해 감독은 현재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