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라는 비일상적인 단어는 낯설지만 동시에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밀집을 이루는 무언가다. 이것이 연상호 감독의 신작 영화 제목이라면 무엇의 무리일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군체>에서 좀비는 바이오기업이 주최한 콘퍼런스 현장에서 등장한다. 여기에는 재임용에 실패해 일자리 기회를 찾아 나선 생물학 교수 세정(전지현)과 그를 지지하는 전남편 규성(고수), ‘인간의 진화’라는 주제에 집요하게 천착한 생명공학 박사 영철(구교환), 건물의 보안팀 직원 현석(지창욱), 그리고 그의 누나 현희(김신록)가 있다. 돌연 알 수 없는 감염 사태가 발생해 당국이 건물을 봉쇄하자 고립된 이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에 돌입한다. 아직 알려진 바가 적은 <군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연상호 감독의 작업실을 찾았다. <지옥>의 지옥사자를 비롯한 수많은 피규어의 시선을 느끼며, 전과 다른 좀비물에 관한 대화가 시작됐다.
- 전작 <얼굴> 인터뷰에서 <군체>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오락성에 힘을 줬다는 뜻일까.
<군체>를 하면서 좀비물의 재미를 강하게 느꼈다. 물론 <부산행>과 <반도>도 있었지만 그 영화들은 좀비가 출현하는 공간에 집중한 경우였다. 반면 <군체>는 ‘어떻게 하면 색다른 좀비를 만들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고, 그 결과가 관객에게 직관적인 재미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한다.
- 그렇다면 <군체>의 좀비는 이전에 본 적 없는 비주얼인가.
시그니처 포즈나 특이한 동작이 많기는 하지만 겉보기에는 비슷할 거다. 다만 내용적인 면이 다르다. 이번 좀비에는 지금 시대의 질문과 불안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요즘 사회는 정보 교류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내가 가진 문제의식은 지식을 주고받는 SNS, 개인의 데이터가 계속 축적되는 AI 플랫폼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체>의 좀비는 교류할 수 있는 장치가 있고, 감염이 확산돼 개체수가 늘어날수록 사고 속도가 빨라지고 지성도 강화된다. 다만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학습하며 실패하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기괴함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좀비 떼를 상대하는 인간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 자연스럽게 ‘팀 좀비’와 ‘팀 인간’의 대결 구도가 연상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는데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개별성이 얼마나 위대한지가 드러날 것이다. 개별성 안에서 휴머니즘이 발견되는 놀라움도 있다. 이 지점들이 <군체>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 제목이 군무처럼 움직이는 좀비들의 액션 시퀀스를 기대하게 한다.
실제로 그런 장면이 많다. 좀비들의 움직임을 말할 때 이런 표현을 썼는데, 하나의 노래를 연주하는 열개의 손가락 같은 느낌이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손가락들이 각자의 역할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며 전체를 이루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도움이 될 거다. 전체적으로 액션 비중이 큰데, 이전 작품들과는 다를 것이다. 과거의 액션이 달리고 피하고 죽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서로를 속이고 파악하는 전략적이고 지능적인 액션이 많다. 아마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 지금 후반작업 막바지라고. CG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궁금하다.
그리 크지 않다. 현장에서 실제로 해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공간 구현에 있어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으나 크리처는 최대한 쓰지 않으려 했다. 내 작품을 CG 비중순으로 나열한다면 <정이> <반도> <기생수: 더 그레이> <지옥> <부산행> 순일 텐데, <군체>는 <지옥>과 <부산행> 사이에 해당한다.
- <지옥>과 <계시록>을 함께 쓴 최규석 작가와 다시 협업한다는 점도 흥미 요소다. 두분이 처음 나눈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나.
역할이 계속 바뀌면서 생기는 서스펜스를 강조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좀비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계속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인간들은 게임처럼 미션을 부여받고 그것을 클리어하기 위해 역할을 바꿔가며 행동한다. 그런 변화가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함, 뒤틀림이 재미를 만든다. 후반으로 갈수록 게임성이 더 중요해지는데, 세계관에 깊이 빠져드는 몰입형 콘텐츠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진지한 주제 의식에 대해 말하긴 했으나 이번에는 관객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궁극의 목표였다. 그래서 인물들의 사연에 해당하는 감정적인 장면을 드러냈다.
- 전지현 배우는 <암살>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팀의 리더인 세정이 전지현 배우의 카리스마에 힘입어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까.
세정은 외톨이에 가까운 인물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데, 개별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하다. 전지현 배우가 가진, 쉽게 타협하지 않는 곧은 이미지가 세정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훨씬 또렷하게 만들어줬다.
- 영철은 구교환 배우가 맡으면서 전형적인 인텔리 박사와는 다른 결을 보여줄 것 같다.
덕분에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왔다. 배우의 다양한 매력이 입혀지면서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탄생했다. 영철은 영화사에 남을 만한 빌런이 될 거라고 자부한다.
- 지창욱 배우는 경비원이라는 역할의 특성상 신체적 움직임이 상당했을 듯하다.
정확하다. 액션의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부산행>의 윤상화(마동석) 같은 포지션이기도 하다. 드라마도 함께 안고 있어서 배우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체>
제작 와우포인트, 스마일게이트 | 감독 연상호 출연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 | 배급 쇼박스 개봉 202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