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은 슬픔 속에서도 툭툭 터져나오는 삶의 활기,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포획한다. 김미조 감독은 막내딸을 잃은 엄마 옥실(이정은)이 가해자의 출소 소식을 듣고 세딸과 함께 복수를 위해 경주로 떠나는 여정을 따라간다. “복수라는 명확한 목적지를 향해가지만, 결국 그 길 위에서 인물들이 마주하는 건 잃어버렸던 서로의 얼굴이다.” 전작 <갈매기>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편견에 처한 중년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서늘하게 응시했던 감독은 이번에 복수극과 로드무비의 외피를 빌려 상실의 사후적 풍경을 재구성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2014년, 딸만 넷인 김미조 감독의 가족이 떠난 경주 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 내리는 대릉원에서 파란 우비를 입고 가족과 일렬로 걸었다. 묘하게 스산하면서도 신비로웠다.” 감독은 관광지, 수학여행지의 화사함 뒤에 숨겨진 경주의 중의적인 얼굴에 주목했다. 삶과 죽음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고분의 도시 경주는, 과거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떠도는 네 여자의 감정과 맞물려 영화의 정신적 장소가 된다.
<경주기행>을 견인하는 동력은 단연 “각기 다른 결의 슬픔을 안고 충돌하는 네 여자”의 앙상블이다. 복수극의 설계자이자 여정의 구심점인 엄마 옥실 역은 배우 이정은이 맡았다. 김미조 감독은 옥실을 비극적 모성에 가두지 않고 “자식의 수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며 집념과 인간적인 허술함 사이의 간극을 포착한다. 세딸의 면면 또한 다채롭다. 배우 공효진은 엄마의 돌발 선언 앞에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실적인 얼굴을 보여주고, 배우 박소담은 독자적인 행동파 둘째로 분한다. 막내딸인 배우 이연은 상실의 고통을 가장 엉뚱하고 날것의 상태로 표출하며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김미조 감독의 복수극은 여성의 피해를 적확히 보듬지 못하는 사법제도의 사각지대 아래 응축된 가족의 광기와 인간성을 동시에 드러낼 이야기다. “복수를 하러 가는 길에도 배는 고프고 좁은 차 안에서 옥신각신 싸우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비극 뒤에 숨겨진 진짜 삶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경주기행>
제작 스튜디오하이파이브 | 감독 김미조 | 출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 202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