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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쭈그린 자태의 고귀함 - 홍상수 감독의 34번째 장편영화 <그녀가 돌아온 날> 비평

1.

잘나가던 배우가 결혼 후 연기를 그만뒀다가 복귀했다. 이혼 후에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작은 독립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약 12년 만. <그녀가 돌아온 날>은 한 독일 음식점에서 세명의 기자를 차례대로 만나 아주 오랜만에 인터뷰하는 배우 배정수(송선미)의 하루를 보여준다. 홍상수 영화의 주 질료인 식탁과 약간의 음식, 술 또는 차, 마주 보거나 나란히 앉은 사람들의 대화는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인터뷰라는 특정한 형식 안에 자리 잡는다. 테이블 위는 단출하고 처음 만난 기자와 배우가 가만히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게 전부다. 배우는 늘 같은 자리에서 상대를 맞이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는 말하자면 ‘모범적인’ 인터뷰가 못 된다. 기자의 질문은 사적이거나 지엽적인 질문으로 흐르고 배우는 자꾸 맥주를 마시겠냐고 묻는다. 인터뷰의 형식과 약속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의 교류인 셈인데,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세 여성 기자에게 배우는 대체로 비슷한 말을 하지만 사람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른 각도와 깊이가 드러난다. 작은 차이가 인터뷰 후의 여운을 달리 만드는가 싶지만, 이내 어떤 관계도 오래 그녀 곁을 머무르지 못하고 사라진다. 모든 인터뷰가 끝났을 때 여자는 고민하다가 자기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들 중 일부를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담담한 얼굴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떠난다.

2.

홍상수의 영화에서 술 취한 인물들은 자주 설파했다. 사랑과 예술에 대해, 잘 사는 것과 잘 보는 것에 대해. 자기 감정을 해명하려 하거나 세련된 언어로 욕망을 포장하는 대화는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 그 괴리가 어떻든 열망과 실패로 가득 찬 말들 자체는 오래 전에 줄곧 충만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언은 더더욱 후퇴했다. 남은 것은 단순한 교환들이다. “예쁩니다.” “참 좋아요.” “그렇구나.” “정말이에요?” 의미의 빈곤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의미다. 홍상수의 영화는 말이 담으려 하는 것 너머를 좇는 대신, 말이 지금 이 순간 실제로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인터뷰라는 형식은 의미 있는 진술을 향한 압력을 만들지만 이 배우는 압력을 반복적으로 어긋나게 받아낸다. 세번의 인터뷰 끝에 세 기자는 똑같이 묻는다.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배우는 답한다. “자신을 사랑해주세요.” 기자들은 약간 놀란 표정이다. 더 정교하고 복잡한 말을 기대했을까? 그들이 받은 말은 그들이 필요로 했던 것이지만 그들이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건축보다 교환의 순간 자체에 존재하는 진실이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도 반짝였다가 순순히 자취를 감춘다.

3.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 배우는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거기서 안락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풀밭에 쭈그리고 앉는 선택은 남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걸 수도 있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몸이 원하는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한 것 같다. 이 모습이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가장 눈을 떼기 힘든 형상이다. 어떤 자세나 몸짓엔 응축된 감정적, 역사적 에너지가 있다. 무방비의 편안한 실루엣이 찬찬히 보여질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어떤 세월을 산, 적당히 피로하고 마모된 여자의 존재다. 요컨대 포즈가 진실을 노출한다고도 할 수 있을까. 길가에서 남들이 잘 보이지 않게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여자의 자세에는 그래서 약간의 누추함과 함께 설명하기 힘든 고귀함이 따라붙는다. 한때 면밀하게 관리되고 촬영되고 제시되던 몸. 지금은 한결 편안해진 몸. 홍상수의 카메라는 이 자태를 인터뷰의 세번의 반복만큼이나 오래, 판단하지 않고 바라본다.

4.

연기학원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이다. 하루의 인터뷰를 마친 배우가 연기학원에 가고, 오늘 나눈 대화를 대본 삼아 상대 배우와 함께 연기를 연습한다.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에서 ‘배우’(actor)와 ‘모델’(model)을 구분한 로베르 브레송은 감 정을 의식적으로 재현하고 보여주는 연기 행위 자체를 진실의 장애물로 봤다. 브레송의 모델이 목표하는 것은 연기하지 않는 것, 즉 표현(representation)이 아닌 존재(being), 수십번의 반복을 거쳐 의식적 표현이 제거된 뒤 기계적 자동성의 경지에 이른 존재다. 역설적이게도 표면만 보면 가장 브레송적인 장면은 연기학원이다. 대본을 들고 평탄하게 말을 주고받는 두 여자. 하나의 약속된 테두리 안에서 배정수는 안전함을 느끼고 있다. 너무 오랜만에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말해야 할지 긴장되는 하루를 보낸 다음, 그 말들을 다시 펼쳐서 솎아보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번엔 온전히 자신의 리듬대로 집중해본다. 기계적인 훈련이지만 배우의 체온은 진짜다.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생기는 침묵과 혼란, 망설임, 현실과는 조금 달라지고 어긋난 순간들이 역설적으로 순간의 밀도를 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재구성으로서의 연기가 펼쳐지는 이 4부 장면은 1~3부와 비슷한 상황을 동일 인물이 재연하지만 종전과는 달라진 질감을 보여준다. 양쪽 모두 다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 구조는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영화 만들기 방법론-현실의 조각들을 변주한 설정들을 쓰고 현장에서 대본을 숙지하고 배우가 짧은 준비를 거쳐 곧장 연기에 돌입하는 상황-을 스스로 되묻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5.

연기학원을 나온 배우가 집으로 걷는다. 딸이 기다리는 곳으로. 영화의 마지막은 귀환이다. 제목은 그녀가 영화계로 복귀한 날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날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의 영어 제목은 ‘The Day She Returns’다. 홍상수의 2011년작 <북촌방향>의 영어 제목 ‘The Day He Arrives’와 대구가 성립한다. 그가 도착하던 날이 이젠 그녀가 돌아오는 날이다. 홍상수의 세계에서 귀환과 도착은 반복의 일부이고 반복은 차이를 낳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명의 기자가 그녀를 알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때 우리는 그녀를 전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오히려 그녀가 알려지는 것에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맥주를 권하고, 주제를 돌리고, 이혼 이야기를 들려줬다가 전화로 취소하는.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선언하는 여자의 마지막 장면은 정의를 요구하고 인용 가능한 진술을 추출하려는 모든 압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걸음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