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auteur)는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지속되는 것일까. 이 질문을 탐구하는 데 있어 홍상수는 이상적인 존재다. 우선 그의 작가적 지위를 굳이 정당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타고나고, 어떤 이는 시간이 지나며 그 지위를 획득한다면, 홍상수는 분명 전자에 속한다.
홍상수 영화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홍상수 영화’다. 그의 영화는 반복되는 상황들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데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미니멀하면서도 조용히 급진적인 영화미학으로 구축돼 있다. 이제는 일종의 장르처럼 여겨지는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부터 북미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을까. 홍상수 감독의 명성은 시간이 갈수록 꾸준히 높아졌고, 대중적 인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작이 나오면 큰 기대를 모은다. 이제는 그의 영화가 1년에 한편만 나온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안기는 정도에 이르렀다.
홍상수는 현재 북미 배급 환경에서 독보적인 작가다. 홍 감독의 최신작이 배급사 시네마 길드(The Cinema Guild)에 의해 극장 개봉용으로 판이권 확보되었다고 알리는 <버라이어티>의 “단독”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것은 업계의 통과의례이지만 나와 친구들에게는 하나의 농담처럼 들린다. 시네마 길드는 현재 북미에서 홍상수 영화 26편의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감독과 배급사간 관계로서는 북미 배급 시장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 지속된 사례일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5편의 판권은 그래스호퍼 필름(Grasshopper Film)이 보유하고 있다. 영화 제작자이자 그래스호퍼 필름의 창업자인 라이언 크리보셰이가 시네마 길드 시절 구매했다가 자신의 회사를 차렸기 때문이다(라이언 크리보셰이는 시네마 길드를 나와 2015년 그래스호퍼 필름을 창업하고 독립·예술·다큐멘터리영화 등을 전문적으로 배급하고 있다. -편집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향한 찬사는 데뷔 초기부터 시네필과 영화제 관객들 사이에서 존재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과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홍상수 감독은 “같은 영화를 반복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봉준호 감독 등 같은 한국 감독들과 달리 장르를 넘나들며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리란 사실이 분명해지자 평론가들은 그의 고집스러운 지속성을 오히려 수용하기 시작했고, 그 예술성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 <필름 코멘트>나 <시네마스코프>같은 영화잡지들도 꾸준히 그의 작업을 지지해왔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네이선 실버와 같은 미국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고, 저예산·소규모 제작 방식이 변주되어 이어지고 있다.
국제영화제가 취향 형성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홍상수 감독이 받아들여진 경로는 일반적이지 않다. 칸영화제에서 그의 영화 12편이 상영되고 그중 6편이 경쟁부문에 진출했음에도(수상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하하하>가 유일하다), 그가 폭넓게 수용된 시점은 칸 이후이다. 2015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황금표범상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고, 이어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도망친 여자>가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받으며 그의 위상이 확고해졌다.
라이언 크리보셰이에 따르면,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협업은 북미에서 그의 관객층을 확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전환점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다”고 말한다. 당시 누군가가 홍상수에게 제작 속도를 늦추라고 설득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라고 크리보셰이는 설명한다.
국제영화제 못지않게 북미 내 영화제들도 홍상수 감독의 정전화에 기여했다. 토니 레인즈 프로그래머에 의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북미에 상영한 밴쿠버국제영화제, 30년간 홍상수 감독의 영화 15편을 상영한 토론토국제영화제, 그리고 특히 미국 배급과 관련해서는 뉴욕영화제가 그의 명성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뉴욕영화제 상영 여부는 미국 배급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며,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는 보통 그해 후반 링컨센터극장에서 개봉된다. 링컨센터는 미국 아트하우스 배급에서 중요한 거점이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프리미어 중심이라 베를린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잘 다루지 않지만(<탑>과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뉴욕영화제는 작가성을 지닌 감독 중심으로 올해 가장 중요한 영화들을 선정한다. 현재까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 23편이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대부분이 25~30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메인 슬레이트 안에 포함됐다. 그의 영화는 켄트 존스 위원장 시절부터 꾸준히 뉴욕영화제에 초청되었고(켄트 존스 위원장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위원장을 맡았다.-편집자), 2020년 이후 데니스 림 예술감독은 그의 모든 영화를 상영했다. 2022년 데니스 림 예술감독은 <극장전>을 중심으로 그의 작가성을 분석한 비평서를 발표했으며, 영화 <극장전> 한편을 매개로 해 홍상수 감독의 작가주의 전체의 분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꾸준히 만든다는 사실은 그의 명성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작품 수는 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이들은 줄어드는 시장에서, 매년 또 하나의 저예산 미니멀리즘 한국영화를 개봉하는 것이 괜찮은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스타일뿐 아니라 주제, 서사, 배우, 그리고 이제는 코믹스럽게도 제목까지 이전 작품들을 거의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에서 홍상수 감독의 해외 배급을 담당하는 화인컷이 책정하는 가격은 낮은 편에 속하므로 위험 부담은 적은 편이다. 북미 개봉으로 벌어들이는 초기 수익이 10만달러(약 1억4500만원)를 넘지 못하더라도, 홍상수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수익이 나기에 충분하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경향은 짙어진다. 그의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우리가 알다시피 계속해서) 이전 작품을 향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 극장 상영, 회고전, 혹은 온라인 대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홍상수 감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빠짐없이 섭렵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이다.
라이언 크리보셰이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그의 다작하는 작업 방식과 그의 영화들이 ‘서로 비슷하다’고 인식되는 지점은 TV시리즈를 몰아보는 데 익숙한 젊은 관객들에게 공명한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비판받았던 홍상수의 접근 방식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주장이 완전히 설득력 있다고 보진 않는다. 하루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세편, 네편 연속으로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으로 나타나는 익숙함의 매력은, 약간의 비틀기를 통해 지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분명 반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복제는 결코 아니다. 비평가들과 관객들 모두가 발견하는 지점은, 홍상수를 작가로서 고찰할 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영화들 사이의 유사성이 아니라, 미세한 차이들이란 사실이다.
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의류 브랜드 도큐먼트(DOCUMENT)의 철학적 토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브랜드는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전개한 이론들에 따라 옷을 디자인한다. 나는 들뢰즈 전문가도 아니고 홍상수 감독 역시 그럴 가능성이 낮지만, 그의 영화는 반복이 어떻게 창조적 행위가 될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면) 앞으로 그의 영화를 다루는 박사학위 논문들은, 홍상수식 영화 만들기가 시간-이미지뿐 아니라 반복이 어떻게 창조적 행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들뢰즈의 이론까지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내용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에 관해 논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인, 들뢰즈에게 반복이란, 내적 차이를 품은 단일한 사건이다. 반복은 동일성이 아니기에 오히려 새롭고, 예기치 못한, 혹은 감추진 어떤 진실을 출현시킨다. 홍상수 감독의 미세하게 이동하는 시점, 어긋나는 기억, 사소한 선택들이 낳은 결과들은 정체성이 결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드러낸다. 이러한 원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홍상수 영화에 존재하며, 분명 한편의 홍상수 영화에서 다음 영화로, 또 그다음 영화로 이어지며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이중구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영화의 구조는 동일한 상황 속에 숨겨진 두 가지 상이한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내가 영화잡지 <시네마스코프>에 게재했고, 이후 로카르노영화제가 홍상수의 황금표범상 수상을 기념해 티셔츠로도 만든 적 있는 홍상수의 드로잉과 그 아래 쓰인 “무한한 세계는 가능하다”(infinite worlds possible)라는 문구는 이러한 미학을 잘 보여준다.
무한하다, 그렇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닮았다. 거대한 홍상수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동안 발견될 차이들에 대한 즐거운 기대감이야말로 관객들을 매번 새로운 영화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이며, 이제는 그 장치가 작품 홍보에 영리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작가로서 홍상수 감독의 여정은, 반복 속에 창조성이 내재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며, 일상적인 세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 과정과 같다. 우리는 매일 비슷한 날들을 살아간다. 하지만 매일이 마치 다른 날인 듯 경험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