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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칙으로 맞서기 - 게임으로 재구성한홍상수의 영화 34편 ➁

PHASE 2 ACT 6 – 행위, 죽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변호텔>

당신은 사망했다. 혹은 돌아왔다. 이승에서의 움직임과 만남을 포기하고 머릿속에서만 산다. 또는 가장 행복할 때 삶의 시간을 멈췄다. 홍상수의 세계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강변호텔>의 영환(기주봉)이 된 당신은, 예감했던 죽음의 스산함을 현실로 마주한다. 아들들을 만나고 조금은 힘이 생겼나 싶었는데, 역시나다. 혹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속의 보경(이응경)이 되어 아파트의 베란다 문을 연다. 영화는 그 추락의 이미지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영혼이 그 죽음을 증명한다. <물안에서> 영화를 찍던 젊은 청년 성모(신석호)는 끝내 자신의 영화랄 것을 찍지 못한 채 <극장전>의 경수처럼 배회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구경남(김태우)처럼 몸을 드러내놓은 채 누우며 모든 것에 해탈한 듯 군다. 결국 성모는 <탑>의 병수(권해효)가 되었고 계획했던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탑인 듯 감옥인 듯 한 건물의 옥상에서 삶을 마감했다. 홍상수 월드에서 죽음은 직접적 기호로 등장한 적이 드물며 주로 뉘앙스로만 언급됐다. 아직 그의 영화에서 살인이란 암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즉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미상의 세계로서 죽음은 다뤄졌다. 그럼에도 당신의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졌으니, 희귀하면서도 애석한 사례다. 다만 나쁘지만은 않다. 죽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듯도 하다. 생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들, 오래된 물건들, 최초의 영화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다시 태어날 순 있다. 죽음을 수용해도 되고, 죽음 안에서 생각이란 것을 노려봄 직도 하다 어떻게?

PHASE 2 ACT 7 – 행위, 뛰기, 돌아가기, 올라가기

<북촌방향>

<당신얼굴 앞에서>

당신은 도시를 돌아다니거나 천성을 거부하여 자신 속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아무런 정답도 얻지 못했다. 정답을 얻지 못했음이 삶의 실패는 아니다. 돌아다니며 본 것이 있었고, 만난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도 해본 것이 있었다. 시도 써봤으며 연기의 흔적도 세상에 남겼다. 다만 당신은 다시 어딘가 멀리 떠날 기력까진 없고, 새로운 것을 해볼 여력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움직여보자. 당신은 <그 후>의 봉완(권해효)이 되어 사랑과 일상의 갑갑함에 시달리던 중 그냥 뛴다. 아파트 근처를 헐떡이며 뛰다 보니 신발 끈이 풀렸다. <북촌방향>의 세계로 들어가 신발 끈 묶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 뛰고 묶다 보니 조금은 생각이 정리되는 것도 같고, 다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더 커다란 차원의 행위들도 있다. <당신얼굴 앞에서>의 상옥(이혜영)이 된다. 곧 삶을 마감할 것 같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돌아가 이것저것을 보려 한다.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멜랑콜리하다. 혹은 어딘가로 올라갈 수도 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해원(정은채)이 되어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꽤 아름다운 하늘빛이 보인다. <수유천>의 전임이 되어 흐르는 강물들을 보아도 상황은 꽤 좋아질 것이다. <우리 선희>의 세 남자처럼 자그마한 계단을 올라 궁궐에 들어가면 무언가 말끔해질지도 모른다. <그녀가 돌아온 날>의 여배우(송선미)도 아주 작은 계단을 힘차게 올라 기분을 전환했고, <소설가의 영화>의 길수(김민희)는 계단을 올라 컬러의 세계로 간다.

자, 이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PHASE 2 ACT 8 – 행위, 실패하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변의 여인>

당신은 실패했다. 예술로서 무언가를 해보려 했지만, 고꾸라졌다. 사랑을 구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새로운 것이 되려 했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남에게 가르치려 하거나, 자신의 고집을 고수하다가 혼자 남게 되었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에서 젊은 시인이었던 동화(하성국)는 자기의 시를 믿지 못하고 타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동화는 <우리의 하루>에서도 시인 의주를 찾아가 시에 관해 물었으나 별다른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안느의 애인이었던 중년의 남자(문성근)는 그전의 <오! 수정>에서도, 그 후 <옥희의 영화>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지독히 사랑을 좇고 버리더니 결국 산낙지를 토해낸다. <생활의 발견> 속 경수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구경남은 예술과 사랑 둘을 모두 취하려다가 전부 실패하고, <해변의 여인>에서 그의 곁에 있던 중래(김승우)는 문숙(고현정)에게 막 그림을 그리며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려다 애쓴다. 다만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여러모로 실패하더라도, 끝났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다소 뻔한 말이지만 실패는 또 다른 실패의 동력이고, 한 세계가 끝났더라도 또 다른 세계에 진입할 수 있음을 일컫는 신호다. 실패를 빤히 바라보다가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다. 이 세계에 머물러도, 혹은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해도 뾰족한 방책이나 무조건적인 실패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선택이다.

실패한 뒤에 실패 앞으로 가기, 실패와 함께하기. 혹은 예술이란 것을 다시 사유하기.

PHASE 3 ACT 9 – 상태, 관념 앞에, 혹은 안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탑>

이곳은 관념뿐인 곳이다. 열심히 움직여 무언가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 태어난 듯싶더니 당신이 그 생각이 되어버렸다. 홍상수 월드는 그 관념을 어떻게든 이미지로 보여주려 애써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개입한 꿈에서부터, <강원도의 힘>부터 시작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하하하> 등의 시간 맞추기 게임. 또는 <생활의 발견>의 회전문과 이것을 이어간 <옥희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구조 사이 틈들. 혹은 <탑>에서 들려오는 미상의 목소리나 <소설가의 영화>가 끝내 보여준 마지막의 홈무비까지. 우리가 흔히 머릿속으로 스쳐 보내는 것들, 관념적 체계를 언어로 전환하려는 몸부림들을 홍상수의 세계는 가뿐한 표면적 현실로 바꿔왔다. 그러니 이곳은 어쩌면, 가장 홍상수적인 곳이면서 홍상수가 가장 싫어할 법한 곳이다. 너무나 많은 것이 주어진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곳, 달리 말해 너무나 많은 것이 주어진 덕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 방향도 벡터도, 부피도 질량도 없다. 지금 당신은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결과는 보장하지 못한다.

관념의 대척으로 향해보든지, 이 상태를 누리든지.

PHASE 3 ACT 10 – 상태, 좋게 있기

< 그 후>

<수유천>

홍상수 월드에서의 해피 엔딩이란 거창하지 않다. 조그마한 변화들, 이를테면 강물의 유속이 나날이 바뀌는 정도, 해의 기울기가 바뀌는 정도의 것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무언가를 발견해가고, 시간을 보내는 쪽이 가장 마음 편해 보인다. 그 변하는 것들을 보려면 아마 조금은 높은 곳에 올라가야 더 수월할 듯하다. 또는 반대로, 가끔은 고개를 높이 들어 위를 보는 일도 좋겠다. <그 후>의 아름(김민희)이 택시의 창밖으로 보았던 눈처럼 새하얗고 깨끗한 무언가의 움직임을 볼 수도 있다. 매번 해피엔딩을 누리려 하는 욕심은 당연히 실패를 수반한다. 하지만 이 실패들도 새로운 발견을 안겨준다. <수유천>의 전임이 된 당신은 한강부터 중랑천, 수유천까지 오르는 강의 상류를 스케치하고 직물 작품으로 만든다. 매분, 매초 바뀌는 강의 풍경을 옮기기란 불가능하지만, 그것에 시도하는 일이 우리가 이 주어진 세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발견에 가깝다. 지금까지의 세계 중 아마 가장 행복한 곳일 수도 있다. 이곳은. 그러면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영원히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여하튼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이 게임은 종료되지 않는다.

규칙을 어겨 멈추거나, 새로운 것을 또 마주하거나, 이 일에 싫증내거나.

PHASE 3 ACT 11 – 상태, 무(無)의 히든 페이지

<물안에서>

죽음이란 무(無)에서 당신은 무엇일지라도 지나가는 생각을 손에 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무(無)는 무(無)일 뿐. 그 안에서 무언가를 생각해 보려 해도 보이는 것이 없다면 헛돌 뿐이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하하하> <강변호텔>은 엄밀히 말해 죽은 곳이 아니다. 그들은 영화에서 등을 보이고, 남들과 싸우고, 멈춘 사진에서도 웃으며 대화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진정한 무(無)에 가장 가까운 곳은 바로 여기, <물안에서>다.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찍을 수 없다면, 영화는 무엇을 할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이 있어야 세계가 주어진다. 죽음에는 선택지가 따르지만, 이 불가능의 어딘가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행위는 이 게임을 리셋하는 것뿐이다.

새로 시작한 게임에서는 조금의 반칙을 써서라도 이곳에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며.

ENDING ACT 12 – 극장극

<극장전>

영화는 재밌었나요. 동수(김상경)씨. 당신은 방금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로비에 나왔습니다. 평소 알던 선배의 신작을 보셨네요. <극장전> 왠지 예전의 당신 이야기가 섞인 듯해 찝찝하기도 하고, 여주인공으로 나온 영실(엄지원)이 눈에 아른거리기도 하네요. 뭔가 앞으로 마주칠 것만 같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잡념에 휩싸이다 보니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싫게만 보이고, 싫었던 것들은 더 싫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말처럼 “생각을 더 해야 합니다. 생각만이 당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생각에서 멈춘다면 당신은 다시 죽거나, 관념이란 공포에 빨려 들어가거나, 무(無)의 지대에 머물겠죠. 당신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 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낫겠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주어진 것을 어떻게 볼지 카메라를 움직여봅시다.

당신의 영화를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