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홍상수 감독은 2017년 무렵부터 국내 매체와의 접점을 최소화했고, 줄곧 영화로만 대화했다. <씨네21>과의 마지막 인터뷰 역시 <도망친 여자>(2019) 당시가 마지막이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욕심을 억누르고 단순하게 물었다. 되도록 하나의 영화에 한두개의 질문을 건넸다. 그의 말처럼 홍상수의 영화를 “딱 떨어지는 말로 설명하려는 건 억지를 쓰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그의 영화를 설명하려는 욕심을 멈추지 못하는 이들에겐, 이번 인터뷰가 꽤 솔깃한 소식일 것이다(질문을 꾸리는 일엔 김병규, gkd 영화평론가가 도움을 주었다).
그의 영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치밀한 이론을 논의하던 시절은 한철 지난 듯하다. 이를테면 <생활의 발견> <극장전>, 또는 <옥희의 영화>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설명할 수 있던 영화의 구조론과 비평적 도구들은 근래의 홍상수 영화에 딱 떨어지는 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홍상수의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3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이상한 현상일 테다.
대신 요즘의 홍상수를 편히 마주하기 위한 단서들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만희 감독이 두고 간 낡은 재킷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입었다는 일화, <소설가의 영화>의 결말은 흔치 않게 정해진 마지막이었다는 예외들 말이다. 대개 주어진 것에 충실했고, 편하게 느껴지는 대로 찍었다는 홍상수 감독의 말들 속에 종종 감지되는 뾰족한 편린들, 이 사소함을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고 닦아보는 쪽이 지금의 홍상수를 체험하는 일에 더 어울리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보기’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홍상수 감독과 나눈 서면 인터뷰의 내용을 가급적 원문 그대로 옮긴다.
2022년 제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GettyimagesKorea
- 안녕하세요, 감독님. 최근 <그녀가 돌아온 날>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오셨습니다. 조금 환기가 되셨는지요. 그 이후 어떻게 지내시나요.
일할 거 하고, 생활하고, 쉬려고 하고, 조금 아프고,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 <도망친 여자> 이후 만드신 10편의 작품, 이전에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영화 각각에 관해 간단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풀잎들>은 관찰자(아름, 김민희)가 여러 인물을 바라보는 일종의 군상극에 가까웠습니다. 다수 인물의 느슨한 병렬 구도는 그간 드물었던 듯합니다. 왜 이리 많은 사람이 필요했을까요. 한 가지 더, 재명(김명수)은 왜 뒷모습과 그림자로만 등장해야 했을까요.
그 영화의 촬영 얼마 전에 영화의 그 커피집에 가서 앉아 있어봤습니다. 앉아 있으면서 배우로 누가 좋을까 생각해봤고, 그때 몇명의 배우들이 연이어 생각났습니다. 생각난 배우들에게 모두 전화했고, 촬영 기간으로 잡은 기간에 시간이 되는 사람들로 배우들이 정해졌습니다. 김명수씨의 뒷모습만 보이는 앵글은 좀 망설였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다 그냥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두 사람 대화의 내용에 대한 그때의 저의 느낌, 그 밥집 안으로 잠깐 비치던 햇살, 김명수씨의 목소리에 대한 저의 느낌 등등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강변호텔>을 두고 많은 이가 “홍상수의 가장 어두운 영화”라고들 말했습니다. 감독님께도 그런가요. 과거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인터뷰(<하하하>)에서 “희극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강변호텔>은 꽤 비극처럼 보입니다. 세 번째 흑백영화였던 <그 후> 다음, <풀잎들>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등 흑백영화의 비율이 높아지고도 있습니다. <그 후> 인터뷰에선 “영화가 좀 어두운 면을 갖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고요. 흑백을 좋아하면서도 조심스러워하는 생각”이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비극과 흑백에 점점 더 끌리시나요.
비극이나 희극이나, 그런 말들이 제게 와닿는 말들은 아닙니다. 제가 사용할 수 있는 틀들도 아닙니다. 다만 희극에서 표현되어온 어떤 삶을 향한 태도 같은 것들이 비극의 그런 것들에 비해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았고, 그래서 했던 말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배우와 장소 앞에서 제게 주어지는 시작점 같은 게 있는데, 그건 어떤 전체의 모양이나 효과를 담고 있는 틀 같은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시작점에 대한 끌림과 과정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씩 뭔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흑백과 컬러 중 선택은 촬영 시작 바로 전에 보통 결정하는데, 딱 떨어지는 이유 같은 걸 찾지는 않습니다. 그냥 느낌입니다.
- <인트로덕션>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감독님의 영화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규칙과 원리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장면이 이따금 나옵니다. 이런 대화의 순간에서 무엇을 발견하시나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떤 앎을 구하려 한다는 것이 뭔가?’란 생각을 가끔씩 했습니다. 왜들 그렇게 읽고, 보고, 집까지 찾아가고 그러는 건지, 그냥 마음이 많이 가는 사람들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앎이란 게 뭔가, 앎이란 것들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앎이란 걸 담아낸다는 말은 뭔가, 말과 실체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되나, 그런 유의 생각들을 때때로 했습니다.
- <인트로덕션>엔 세번의 포옹이 영화의 구조를 가르는 행위로 등장합니다. 감독님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포옹 장면이란 거의 언제나 아름답지만, 때로는 보는 이의 마음에 고통을 남기기도 합니다. 육체적 접촉이 덜해진 최근의 작품으로 올수록 포옹, 몸이 닿는다는 것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서로 안는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며 찍는 걸까요.
그냥 1부 끝을 쓸 때 그런 포옹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2부, 3부 끝을 쓸 때도 포옹을 넣어도 좋은가, 내게 물어봤고, 그게 맞다고, 괜찮다고 느껴져서 그렇게 찍은 겁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과 나누는 어떤 포옹은 참 좋다고 느낍니다.
- <당신얼굴 앞에서>에서 이혜영 배우를 초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후 <소설가의 영화> <탑> <여행자의 필요>에서 이혜영 배우는 어떤 인물로 영화에 스며들었나요.
그분 아버지(이만희 감독-편집자)가 저희 어머니와 영화 일을 같이 하신 적이 있나 봅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저희 집에도 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날 자신의 재킷을 집에 놔두고 가셨는데, 그게 낡은 짙은 쥐색의 옷이었습니다. 그땐 낡은 옷들을 좋아하는 때였어서 그 옷을 제가 많이 입고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낡았다고 아파트 쓰레기통에 버리셨는데, 제가 내려가서 다시 가져와 계속 입었습니다. 시간이 몇십년이 지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 때, 이혜영씨가 어머니의 친구 분들과 함께 오셨고, 그때 처음으로 뵙고 짧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두 가지 기억 때문에 나중에 그 영화를 만들겠다고 시작했을 때, 이혜영씨가 떠올랐나봅니다.
- <소설가의 영화>의 마지막 소설가의 영화에서, 길수(김민희)가 다른 이와 함께 공원의 커다란 계단 위를 오르는 장면은 감독님의 근래 영화에서 흔히 만나지 못했던 숏 사이즈(롱숏)로 촬영되었습니다. 길수가 향하는 계단 너머의 곳은 표백된 것처럼 새하얗고요. 이어지는 숏이 컬러로 바뀝니다. 덕분에 꽃의 색깔이 잘 보이기도 합니다. 음악의 고조와 함께 꽤 감정적인 순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어떤 마음으로 찍으신 대목인가요.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혜영씨와 김민희씨가 결정됐고, 이혜영씨가 소설가인데 갑자기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 거고, 그가 만드는 영화는 제가 찍은 김민희씨가 나온 홈무비 중 하나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결말이 이렇게 확실히 정해지고 시작하는 영화는 거의 없습니다. 초반의 시나리오가 있었던 때 몇편을 빼고는. 홈무비에 찍힌 사람이 드러내는 것과 대본이 있는 영화에 나온 배우가 드러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감지되는 차이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처음에 든 생각 중 하나였습니다. 마지막에 들어가게 될 홈무비란 결말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본하에 찍은 영화의 부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제한을 받아들이면서, 하루씩 촬영 과정이 진행됐습니다.
- <탑>은 어느 측면으로 보아도 특정한 공간에서부터 시작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의 작품 중 드물게, 어떤 곳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부가 거의 다 드러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왜 이곳에 끌리셨나요.
아는 분의 건물인데, 몇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건물 자체가 그대로 영화의 구조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고 좁은데 층이 꽤 되고 옥상도 있고, 지하실도 있고, 맘에 들었습니다.
- <물안에서>에 관해선 진부한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전부 흐릿하게 찍어야 했을까요. 어떠한 계절, 공간, 사건, 관계보다도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이 형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영화를 본 관객 등 주변의 반응은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촬영 첫날, 첫신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셋업하고 뷰파인더를 보고 있으면서, 포커스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속으로 고민을 좀 많이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게 한다 싶었을 겁니다. 몇분을 심하게 망설이다 결국은 그렇게 찍게 됐고, 그래서 그렇게 끝까지 가게 된 겁니다. 그런 과정으로, 그런 경험으로 제게 주어진 것이 주어졌던 겁니다.
- 감독님의 영화에서 실내 공간(카페, 술집, 방)은 현실의 공간이 건네는 느낌과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유독 특이한 공간은 옥상입니다. 시각적으로 열려 있지만 물리적으로 닫힌 역설적 공간이며, <탑> <우리의 하루>처럼 사람이 어떠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 찾게 되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옥상이란 곳에서 어떤 즐거움, 혹은 긴장감을 느끼시나요.
어릴 적에도 옥상은 거의 항상 시원하고 숨통이 트이는 공간으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건물을 가게 돼도 거기 옥상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귀찮아하지 않고 올라가서 구경을 하고 가는 편입니다. <우리의 하루>에서 시인의 집을 정했을 때 아마 그 옥상이 있어서 정했을 겁니다. <탑>의 그 건물도 그 옥상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을 겁니다.
- <여행자의 필요>는 예전에 그렸던 아래 도형으로부터 시작한 영화일까요. 혹은 그 이름만 가져온 별도의 작품일까요. 작중에서든 인터뷰에서든 여러 도형을 그리며 생각을 정리하는 때가 종종 포착되는데, 요즘도 그러시는지요.
<씨네21> 752호 홍상수 스페셜 에디션에 실렸던 그림.
<해변의 여인>이란 영화를 시작할 때 그 말이 마음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여행자의 필요>를 만들려고 시작했을 때 그 말이 갑자기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영화의 제목이 되면 좋겠다 느꼈고, 그 느낌이 끝까지 계속됐습니다. 보여주신 도형 그림은 제가 그린 건 맞는데,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렸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림으로 그리면서 남에게 제 생각을 전달하면 훨씬 편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마크 퍼랜슨 평론가의 글에도 홍상수의 그림이 실렸다.-편집자)
- 로카르노영화제의 <수유천> 토크 행사에서 “화가의 작업 방식을 부러워하는 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수유천>은 (전통적 화가는 아니지만) 베틀로 강물을 본뜨는 전임(김민희)의 통찰력이 빛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은 것은, 왜 감독님은 글과 그림이 아닌 영화를 계속 택하시는 것일까요. 이에 관해선 예전 정성일 영화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발견으로서의 영화’라는 맥락으로 남겨주셨던 감독님의 말씀을 덧붙여 이야기해보고도 싶습니다.
“계속해서 발견을 위해 몰두하려고 노력해요. 그렇지 않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변기 물이 빨려 들어가듯 두려움의 논리, 성공의 논리,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바로 빨려 들어갈 거예요. 그만큼 억세고 무섭게 존재하는 공포가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 자극을 주고 발견을 유지하면 다른 지점들이 연결되고 다른 지점들이 또 다르게 연결되면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노끈처럼 돼서 어디로 빨려 들어가는 걸 막아주거든요. 제가 만약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인위적인 발견을 해서 그런 자극을 만들어나가겠지만, 지금은 제 영화의 결과물이 바로 그런 발견의 부산물로 주어지는 것들이에요.”(<씨네21> 752호)
제가 쓴 대사 중에 “인생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 중에 내가 정말 왜 하는지 알고 하는 것은 없다”란 말이 있는데, 제가 처음에 영화를 하게 된 것도, 그리고 계속하게 된 것도 그런 식으로 느낍니다. 딱 떨어지는 말로 설명하려는 건 억지라는 느낌입니다. 주위에서 많이 요구하니까, 또 해보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그랬습니다. 나중에는 그게 애당초 하면 안되는 짓이란 걸 믿게 됐습니다. 제게 진짜 발견들은 제 앞에 주어진 것을 조금 더 온전히 경험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런 발견이 일어날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 발견은 진짜의 사실 가까운 쪽으로 얼굴을 향하게 하고, 그것의 진동을 조금 더 온전히 느끼게 해줍니다.
-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극단적인 줌인과 로케이션의 환경 탓인지, 유독 화면의 저화질이 표면에 두드러지는 영화였습니다. 이를 포함해 최근 작품에서 낮은 화질의 화면을 선택하곤 합니다. 촬영감독으로서 카메라에 비치는 낮은 화질의 화면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포커스 조절도 그렇고, 줌도 그렇고, 많은 게 그냥 그때 그게 좋고 편하고 맞는 것 같아서 하게 되는 겁니다.
2022년 제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GettyimagesKorea
-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의 촬영 일지를 하성국 배우가 <씨네21>에 쓴 적이 있습니다. 작품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맛있는 닭백숙을 함께 먹던 강소이 배우의 부모님이 전원생활을 한다는 이야기에 감독님께서 직접 그곳을 방문했던 일이 출발이었다고 말입니다. 감독님께서는 영화의 시작점으로 “구조 혹은 어떤 덩어리(사건, 관계 등)”가 찾아오고 둘이 합쳐져 구상이 된다는 점을 설명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비슷하신가요. 근래 영화 작업의 전반적인 과정은 어떤 편인가요.
영화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느낄 때, 처음에 공간과 배우들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둘을 제가 믿는 어떤 과정이란 걸 통과시키면서 결과물들이 하루씩 만들어집니다. 그런 어떤 과정을 통해 활동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하고 진실한 태도가 되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주어지는 것들을 믿고, 그리고 저의 그 과정을 믿습니다.
- 질문은 끝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씨네21>이 오랜만에 감독님과 나누는 인터뷰이고,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호이니만큼 질문이 다소 길어졌습니다. 애초의 마음과 달리 조금 욕심을 낸 것 같습니다. <씨네21>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을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며, 모쪼록 다시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0년 동안 <씨네21>을 통해서 제 영화를 깊이 느껴주신 분들의 글들은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반가움과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