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씨네21>이 연말에 꼽는 한국영화 베스트에서 최상단을 차지했다. 2020년 한국영화 베스트 1위는 그의 작품 <도망친 여자>였고, 2021년엔 <당신얼굴 앞에서>가 1위, 2위는 <인트로덕션>이었다. <탑>은 2022년 2위에 올랐고, <소설가의 영화>는 3위를 차지했다. <물안에서>는 2023년엔 8위에 그쳤으나 2024년 <여행자의 필요>로 홍 감독은 다시 1위로 돌아왔다. 2025년에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가 4위로 꼽혔다. 매년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공개되는 사실이 놀라운 한편, 평론가들에게 늘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늘 고른 지지를 받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데뷔 때부터 비평의 한가운데 있었기에, 여러 각도의 호불호가 담긴 비평문을 동시다발적으로 받았다. 홍상수 영화를 향한 평가가 지금처럼 균일해지기 전, 시간을 되돌려 비평의 역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를 살펴보는 것은 그러므로 그의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우리, 그때로 돌아가보자.
홍상수 감독은 많은 평론가들의 호평과 지지를 온몸으로 받으며 데뷔했다. 1996년 5월 개봉한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두고 김소영 평론가는 “한국영화의 희귀한 한순간이 열리는 소리”라고 극찬했고, 유지나 평론가는 “한국영화의 누벨바그는 이 영화부터 다시 써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김영진, 남동철 평론가는 “작은 얘기를 진짜처럼 말할 줄 아는 한국 영화감독의 탄생. 홍상수는 한국영화의 ‘현대화’를 선포했다”라고 말했다. 평론가들의 호평 덕분이었을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개봉 첫주 1만 관객을 동원했고, 코아아트홀에선 수회 매진되기도 했다. 그해 10월 아시아태평양 지역 신인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상인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을 수상했고, 해를 넘긴 1997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도 받았다. 한마디로 화려한 데뷔였다.
1998년 내놓은 두 번째 작품 <강원도의 힘>은 고르게 호평받았지만 전작만큼은 아니었다. 안정숙 전 <씨네21> 편집장은 “<타이타닉>과도 안 바꾼다”라며 별점 4점을 선사했으나 유지나 평론가는 “돼지의 관찰적 시선 위에 자기 연민의 필터를 얹었다”라며 전작에서 별 반개를 깎아 3.5점을 주었다. 허문영 평론가는 “단 두 작품만으로 홍 감독은 어느덧 ‘작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홍상수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찮고 비논리적이며 비균질적인 것으로만 가득 차 있는가를 심각한 표정으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관습적인 영화형식의 쉴 새 없는 전복을 통해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우리만 알던 홍상수’가 ‘칸의 홍상수’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홍상수 감독은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돼 <강원도의 힘>을 들고 칸을 찾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 특유의 사회적 맥락이 탈각된 형상을 향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다. 전찬일 평론가는 <강원도의 힘>을 두고 “일상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연결고리 부재”를, 이영기 <중앙일보> 기자는 “권태로운 일상의 풍경을 묘사하는 걸 넘어서는 조망과 전망의 부족”을 지적했다. 데뷔작을 극찬했던 김소영 평론가는 “한 영화에 대한 독해를 결정하는 것은 작품의 내부성뿐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서사 대신 소서사 그리고 일상이 강조되던 96년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된 것은 그 영화로 보아선 행운이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뜬금없음은 오히려 호재였다. 어떨 것인가. <강원도의 힘>은? 바로 이 98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끼는 이즈음에.” 시대가 바뀐 까닭이었다. 1997년 IMF 사태가 터진 바로 직후 홍상수 감독의 한량 캐릭터들이 비평가들의 눈엔 다르게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홍상수 감독이 이후로도 쭉 사회상과 이데올로기에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연출자가 되리란 사실을.
이윽고 홍상수 감독은 세 번째 영화 <오! 수정>으로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두 번째 부름을 받는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서사는 훗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원형 혹은 뼈대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홍상수 감독이 시간과 기억을 뒤섞는 대신 ‘찌질한 남자’의 이야기로 읽는 서사 중심 독해가 많았다. 김소희 전 <씨네21> 편집장은 “섹스에 관한 사담을 재치 있게 풀어낸 코믹 소품은 충분히 즐길 만한 것이기는 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시네아스트’라는 프랑스발 찬사를 여전히 승인하는 것이 과연 한국 평단의 중론인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라고 고백한 것이 대표적이다.
네 번째 작품인 <생활의 발견>은 서사를 변주하고 비트는 구조의 정교함으로 호평받았다. 김의찬 평론가는 전작들에 비해 시간을 다루는 영화의 구조가 진일보했다며 “‘회전문’에서 은유적으로 암시되듯 사건과 대사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맴돈다”라고 보았다. 김봉석 평론가는 “여전히, 전폭적으로 홍상수의 시선과 언어를 지지한다”라고 힘을 보탰고, 이동진 평론가는 “이 차가움, 이 솔직함, 이 뻔뻔함”이란 평과 함께 별점 4점을 매겼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 특유의 반복 구조에 대해 지겹다는 반응도 점 차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평식 평론가는 “홍상수의 자아도취, 밉지는 않으나 지겨워진다”라며 3점을 매겼다.
돌이켜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본격적인 비판을 받기 시작한 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부터다. 정한석 평론가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2005년 <씨네21>이 꼽은 올해의 한국영화 5위에 올랐으나 “페미니즘 비평 담론을 흔들었고, 김기덕 감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잦아진 대신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상으로 올랐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기록하고 있다. 김경욱 평론가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다룬 비평문에서 “홍상수의 여자들이 더욱 이상한 점은, 남자들은 비록 속물적인 욕심이라고 해도 무엇이 되려고 동분서주하는 데 비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주인공 남자가 원하는 그 자리에 도착해 있을 뿐”이라고 쓰고 있다. “홍상수의 반복은 거기에 반성적 성찰이라는 매개를 괄호쳐 넣음으로써 차이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린다”라면서 “이것은 지옥의 영겁회귀에 다름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파도가 치고 빠지듯, 혹평이 다시 호평으로 돌아선 계기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6편을 통틀어 가장 보기 편하다”(임범 대중문화평론가)란 말을 들은 <극장전>이었다. 심영섭 평론가는 “영화에 대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든 홍상수 자신마저 패러디되는 경지”라고 평가했고, 유운성 평론가는 “홍상수 스스로가 그간 자신이 만들어온 영화들과 그것들을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평가와 해석들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유머러스한 논평”이라 보았다.
<극장전>이 열렬한 지지를 받았기에 평론가들은 다음 영화가 평이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후속작인 <해변의 여인>에 관한 근사한 평이 이어졌다. 정성일 평론가는 “홍상수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고, 그걸 영화 속에서 매우 실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말하자면 영화 자체가 하나의 신체감각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홍상수의 새로운 경지”라고 표현했다. 김소영 평론가는 “많은 실험영화들이 추구하지만 좀체 이루지 못하는 목표가 무의미를 의미화하는 작업인데, 홍상수는 의미와 무의미의 변주를 굉장히 잘 만들어낸다”라고 평가했다. 정한석 평론가는 “또 한발 나아가며 홍상수 영화 세계가 변화와 진전을 쉼 없이 거듭하고 있음을 입증했다”라고 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아 1996년부터 시작해 2006년까지 홍상수 감독을 가리키던 비평의 지대가 변화무쌍했던 10년을 돌아보았다. 이후로 홍상수 감독은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어 총 34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영화들을 향한 평가는 비슷한 메아리처럼 다가왔다. 비평의 용어부터가 그랬다. 홍상수 감독의 세계가 투명해졌고, 한층 달라졌고,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갔다는 말들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비평의 언어는 더는 그의 영화를 평가할 형용사나 서술어가 없고, 별점이란 제도도 작품과 작품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가장 최근작인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를 두고 별점을 매긴 평자는 모두 세명, 점수는 모두 4점이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첫 10년은 달랐다. 그를 둘러싼 비평의 영토가 1~2년 주기로 새롭게 선이 그어졌고,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홍상수 영화를 익숙한 어휘와 안정된 평가 속에 가두지 않기 위해서, 지금 다시 돌아봐야 하는 것은 그 영화를 둘러싼 비평의 시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