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은 늘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따라 영화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그날의 날씨, 기분, 배우들의 상태, 기억나는 말들. 그렇다면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가 만든 34편의 장편영화 속에 ‘주어졌던 것’들을 추출하여 이해, 분석, 재구축한다면 새로운 물질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역행의 작업은 RPG 게임이나 선택형 게임의 논리와도 유사하다. 최소한으로 주어진 세계(월드)가 있고, 플레이어는 몇 가지의 역할을 맡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홍상수 영화의 규칙에 게임이란 반칙으로 대적해보는 것이다. 홍상수의 오랜 관객도, 낯선 입문자도 각자의 홍상수 월드를 가져보길 바란다.
PROLOGUE ACT 1 - 당신은 홍상수의 어떠한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가
온화하거나 조금은 더운 날씨가 맘에 든다면, 당신은 주로 반팔을 입거나 가벼운 겉옷 정도를 걸치게 된다. 혹은 단풍을 보거나 눈이 오기를 기대하나? 선선하거나 추운 날을 대비해 긴팔을 입고 두꺼운 옷을 챙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후를 선택했다면 이제 갈 곳을 정할 때다. 첫 번째, 평소 익숙하던 자신의 동네나 도시를 돌아다니고 싶은가? 홍상수 월드에서 익숙한 곳이란 대개 서울과 그 인근이다. 이미 보았고 걸었던 곳일지라도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 다른 곳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통영, 제천, 강릉, 양양 등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산세와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은 먼 외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의 기분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하면 어디든 길은 열린다.
네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각 페이지에 표시된 ACT로 이동하라.
PHASE 1 ACT 2 - 나를 찾기, 반팔을 입고 도시를 누빈다
주어진 세계: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풀잎들> <당신얼굴 앞에서> <우리의 하루> <그녀가 돌아온 날>
당신이 택한 곳은 위와 같다. 이제 세계는 주어졌다. 주어진 세계에 따라 당신의 기질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다. 아직 당신의 형상이 정확하진 않지만, 영수(김주혁)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상옥(이혜영)과 <그녀가 돌아온 날>의 그녀(송선미)와 같이 배우 생활을 오래 했을 수도 있겠다. 아름(김민희)처럼 글을 쓸 수도, 의주(기주봉)와 그를 따르는 청년(하성국)이 되어 시인이 되려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무래도 당신은 예술계에 임하는 쪽이 천성에 맞는가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주어진 운명은 대개 얄궂고, 어떻게든 발견한 우연은 아주 아름답거나 반대로 훨씬 더 얄궂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이별한 애인과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좋은 운명일지, 나쁜 우연일지는 각자가 생각할 몫이다(<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물론 홍상수가 만든 게임의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당신이 알던 홍상수의 규칙을 신봉한다면 영 다른 결과를 마주할 것이다. 섣부른 기대를 최대한 배반하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라.
당신은 이 천성에 따를 것인가? 혹은 주어진 것을 배반하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PHASE 1 ACT 3 - 나를 찾기, 반팔을 입고 여행을 떠난다
주어진 세계: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해변의 여인>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다른 나라에서> <자유의 언덕> <여행자의 필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여름의 열기와 여행의 기운은 아무래도 사랑을 추동하나 보다. 물론 그 사랑이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는다. 초기 홍상수의 세계에선 대부분 사랑은 아픈 것이었다. 사실 사랑이라 칭하기에도 머쓱한, 정분이라든지 육욕이라든지 하는 쪽에 가까웠다. <생활의 발견> 속 경수(김상경)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헤맴을 지속할 수도 있다. 회전문을 빙빙 돌면서. 홍상수 월드가 근래에 들어서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랄지, 혹은 사랑을 믿는 자신에의 믿음으로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여행자의 필요>에서 이리스(이자벨 위페르)와 인국(하성국)의 흥미로운 연애는 그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기보다, 결국 이리스의 독자적인 얼굴에 모든 것을 맡기곤 했다.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처럼 굳이 먼 곳까지 가 관계의 파탄을 맞이할 것인지, <자유의 언덕> <여행자의 필요>와 같이 서울의 이방인으로서 한때나마 상쾌한 사랑의 기운에 빠질 것인지 고를 때다.
몇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사랑을 택할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인가?
PHASE 1 ACT 4 - 나를 찾기, 긴팔을 입고 도시를 누빈다
주어진 세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오!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그 후> <탑> <수유천>
당신은 도시, 또는 그 인근에 있다. 도시에서 인간으로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빈번하지만, 매일의 실패를 베개 삼아 어느샌가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이곳은 대체로 서울이다. 근처를 누비다 보니 참 슬프고 애처롭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오! 수정> 등 초기 홍상수 월드의 도시(서울)란 대개 비정하고, 냉소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대체로 의심하고 격분하고 틀어졌다. 예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극장전>의 서울은 여전히 가혹했으나 영화라는 미로가 현실을 뒤엎을 수 있음을 본격적으로 증명했다. <북촌방향>의 골목은 그 자체로 꽤 기적적이었고,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의 서울은 영화가 지닌 구조의 가능성으로 여러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모험은 아마 모든 홍상수의 세계를 통틀어 가장 적극적이고 용맹했던 사례일 것이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쯤이었을까. 이후부터 서울과 그 외곽은 <수유천>의 전임(김민희)처럼 그곳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옹립하거나, 그곳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보이기도 한다.그래서, 당신은 이 도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도시를 더 헤맬 것인가, 혹은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영화에 진입할 것인가?
PHASE 1 ACT 5 - 나를 찾기, 긴팔을 입고 여행을 떠난다
주어진 세계: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클레어의 카메라>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도망친 여자> <소설가의 영화> <물안에서>
혼자일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때로 혼자였다가 누군가와 함께하고(<클레어의 카메라> <인트로덕션> <소설가의 영화>), 혹은 함께였다가 완전한 혼자가 되기도 한다(<밤의 해변에서 혼자> <강변호텔> <도망친 여자> <물안에서>).혼자 서기와 함께하기의 상태는 계속 교환되고 변주되지만, 어느 쪽이 편한지에 대한 근본적 기질은 분명히 당신 속에 도사리고 있다. <인트로덕션>처럼 홍상수의 흑백 세계에서 인물들은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끝내 포옹하면서 삶을 잇는다. <클레어의 카메라>와 같이 조금 쌀쌀한 저녁의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씨앗으로 싹틀 때도 잦다. 해변에 덩그러니 누워버린 영희(<밤의 해변에서 혼자>)처럼 외로움이 도리어 가뿐할 때도 있고, 남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혼자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주변 모든 것이 충만해진 길수(<소설가의 영화>)의 경우도 있다. <도망친 여자>의 감희도 비슷하겠다. 여러 지인을 여행하듯 만난 뒤 들어선 극장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혼자이든 함께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이겠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혼자는 없다.
도착점은 모르겠으나, 출발지는 골라야 한다. 혼자? 혹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