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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기를 진짜로 사랑해준다는 것 - <그녀가 돌아온 날> 배우 송선미

그가 <씨네21> 스튜디오를 처음 찾은 건 <두사부일체>(2001), 마지막 인터뷰는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2006)이었다. 이후 20년. 송선미는 <해변의 여인>을 시작으로 <북촌방향>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강변호텔> <도망친 여자> <탑> <우리의 하루>까지 홍상수 감독과 7편을 함께했고, <그녀가 돌아온 날>로 처음 홍상수 영화의 한가운데에 선다. 도시적 인상의 매력을 각인한 <북촌방향>에서 송선미는 쉽사리 자신을 내맡기는 법 없이 취기 가득한 밤을 건너갔고, 가시 돋친 후배에게 “예쁜 너를 누가 사랑해줄까” 하고 다독이며 입맞추거나(<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준희), 배신당한 그녀가 부르자 눈 내리는 호텔로 달려오는 선배(<강변호텔>의 연주)의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돌이켜보면 그는 홍상수의 영화가 남성적 욕구의 세계에 덜 몰두하고 여성, 자연, 현재적 지각에 충실한 순간들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결정적 분기점의 동행자다. 언제나 누군가의 곁에 있어준 사람이 <그녀가 돌아온 날>에선 홀로 낯선 이들과 대면하고 풀밭에 남겨진다. 배우로서, 삶의 주인으로서 깊어진 얼굴로 오랜만에 돌아온 그녀에게 말 걸었다. 독일 맥주 대신 쿠키를 나눠먹다가 영화 속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종종 물색없는 질문도 던지고 말았다.

- 2월에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그녀가 돌아온 날>이 초연했습니다. 현지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처음 보셨죠?

네. 완전히 처음 보는 거라 일단 저를 보기 바빴어요. 배우들이 그렇잖아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내 모습에 적응해서 좀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

- 의외의 순간에 관객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독일 음식과 맥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현지 관객들이 유독 유쾌하게 반응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게요. 외국인이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김치찌개가 맛있잖아” 같은 말을 할 때 우리가 피식 웃게 되는 그런 느낌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 2006년 <해변의 여인> 이후 처음으로 단독 주연작인데요. ‘홍상수 영화 속 송선미’를 유독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죠.

그렇게 봐주신다니 뭉클한데요. 저도 연락받고 ‘아싸! 드디어 감독님 영화주인공을 하는구나!’ 하고 좋아했지만. (웃음)

- 감독님은 전화로 처음 캐스팅 제의를 하던가요?

홍 감독님은 항상 전화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시간 되니?” 하시고 제가 “돼요” 하면 “그래, 이번에 작품 하나 해보자” 하세요.

- 이혼 후 작은 독립영화로 복귀하게 된 배우 역할입니다. 촬영 전에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요?

감독님 영화를 여러 번 했으니까, 저도 이제 미리 다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 여자의 직업이 뭔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애써 묻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배우고, 이혼했다가 조그마한 영화 하나 찍어서 인터뷰하는 거야”라고 하셨는데 저도 거기서 멈췄어요. 어떤 작품에서는 캐릭터의 전사나 배경을 깊이 생각하고 나아가 더 풍성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런데 예전부터 감독님 영화엔 그런 게 없어도 캐릭터가 저마다 다르고 살아 있더라고요.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물이 충분히 표현된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오히려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 연기라는 게 도대체 뭘까, 고민하게 돼요.

- <해변의 여인>부터 8편을 함께했는데, 오랫동안 함께한 감독과의 현장에서 최근의 변화라 할 만한 것이 있나요?

음… 대사를 외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진다는 거? (웃음) 그러니까 아주 짧은 시간에 굉장한 집중력을 갖고 촬영을 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힘에 부쳐요. 옛날만큼 빨리빨리 안 외워진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만큼 얻는 것도 크죠. 홍 감독님과 작품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들이 있어요. 나한테서 이런 면을 또 보네, 이런 걸 얻어가네, 다음에는 내가 좀더 이렇게 할 수 있겠네.

- 관객에게도 매번 미세하게 새로운 각도가 열립니다. 그동안 홍상수 영화 속 송선미는 <북촌방향>을 결정적으로 해서 한결 사회성 있고 정돈된 사람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녀가 돌아온 날>에선 더 연약하고 수수해 보입니다. 편안한 소재의 원피스를 입은 외양에서부터 그렇죠.

지시가 구체적이세요. 이런 핀을 꽂았으면 좋겠다, 머리를 한번 넘겨볼래, 옷은 이게 나을 것 같아, 신발은 이거. 기본적으로 제가 갖고 있는 의상을 보고 그 안에서 감독님이 고르는 거죠.

- 촬영 기간은 나흘 정도였다고요.

처음 3일은 매일 찍었고 한참 있다가 나머지 4회차를 찍었어요. 3일째에 감독님이 이제 영화가 다 된 것 같다고, 그만 찍어도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제가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감독님에게 정말로 이렇게 영화가 완성될 수 있는 거 맞냐고 걱정스럽게 반문할 정도로. (웃음)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 3개를 딱 마친 상황이었거든요.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가 연기를 잘 못했나, 왜 그만 찍으시지 싶어 실은 걱정도 했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하루 더 하자고 부르셨고 연기학원 장면을 찍었죠.

-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메시지를 던지는 말들보다는 지금 느끼는 것들을 순연하게 주고받는 말들로 채워지는 것 같아요. 배우가 체감하는 바도 있을까요.

아후, 전 현장에선 외우기 바빠서! 독일 음식점에서 장사 시작하기 전 오전 시간에만 촬영을 했어요. 스케줄이 타이트했고 그래서 대본을 다 외우고 촬영한다기보다 촬영하면서 외우는 쪽에 가까웠달까.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감독님 영화를 촬영할 때는 점점 더 의미나 의도의 바깥 지점에서 멋진 게 나온다는 생각이어서 전 다른 것보다 그걸 신경 쓰면서 촬영해요. 감독님이 여태 주었던 디렉션 중에 특히 제게 남아 있는 말씀이 있어요. “그건 진짜가 아니야. 진짜는 그렇게 안 해.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한번 해봐. 그런데 ‘그냥’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 그래서 가끔은 카메라 앞에서 덮어놓고 일단 하고 어떻게 나오는지 봐요. 그 방법밖에 없을 때가 있어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걸 해야 하니까. 사는 것도 비슷한 점이 있구나 싶어요. 나도 모르게 안전한 선택들을 반복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도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해야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말이에요. 현장에서 계속 그걸 기억하면서 시도해보려고 해요.

- 단기간의 암기와 주의력이 요구되는 현장에 빠르게 스며드는 방법 같은 게 있나요?

일단 제가 편안해져야 해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것들을 최대한 비워요. 저도 사람이니까 욕심이나 의도 같은 것들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최대한 내려놓으려고 해요.

- 베를리날레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에 “자기를 던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나를 잘 던지고 있다는 느낌은 스스로 자각되나요?

본인이 제일 잘 알 걸요. 자기가 얼마나 자기를 던지는지, 아니면 안전하게 붙잡고 하는지.

- 그럼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 배우는 실제의 자신에 한층 밀착한 연기를 하게 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라는 필터를 거쳤을 때 나오는 결과물과 같은 대본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산 배우의 결과물은 완전히 다르게 표현되겠죠.

-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 인터뷰하러 온 기자들은 모두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인생의 지혜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배우는 번번이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을 돌려주고요. 유튜브 채널 <그래, 송선미>에서 같은 말을 들려주시던데요. 우연한 연결일까요, 아니면 언젠가 배우가 감독에게 한 말이 반영된 경우일까요.

후자예요. 감독님이 제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주셨고 예전에 상대 배우와 대화할 때 옆에서 지켜보신 적도 있었겠죠. 전 젊은 시절에는 제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살다 보니까 막상 아닌 거 있죠. 내가 나를 진짜, 진짜로 사랑한다는 게 어려운 거예요. 삶의 많은 영역을 지배하는 문제라고 느껴요.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그만큼 사랑할 수 있고요. 그래서 아끼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 <그녀가 돌아온 날>의 대화는 인터뷰 또는 연기 연습이라는 특수한 형식에 기초해요. 그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담긴 일상 대화와는 사뭇 다른데, 배우에게 유효한 차이도 있었나요.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전 의식하진 않았어요. 전 인터뷰도 그 순간엔 진실한 대화라고 생각해요. 정말로요. 그런데 영화의 아이러니는 자신이 기자와 진짜로 대화를 한다고 믿지만 끝나고 나서 어떤 내용은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고 연락하는 모습에서 나오죠.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 모습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 왜 다 지워달라고 할까요.

불쑥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불안한 거 아닐까요. 실컷 속내를 보여주고 맥주도 같이 한잔할까 했는데 끝나고 보니 ‘내가 너무 나를 드러냈나’ 싶어 무서운 거죠. 불안하면 자기를 보호할 수밖에 없잖아요.

- 기자와 인터뷰 장면을 찍을 때부터 이후에 전화를 걸어서 내용을 빼달라고 할 거란 걸 아셨어요?

아뇨, 전혀! 나중에 차례대로 시나리오를 받은 건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어요.

- 인터뷰를 마친 배우가 연기학원에 가서 하룻동안 있었던 대화를 직접 재구성하고 연기의 재료로 씁니다. 박미소 배우가 훈련을 돕는 상대 배우인데, 두 사람의 재연쪽이 앞선 실제 인터뷰 장면보다 감정적이고 진실한 촉감을 줍니다. 앞에서 했던 대사를 반복하되 다른 질감으로 표현하는 롱테이크 장면, 어땠습니까.

정말 너무 힘들고 어려웠어요. 아악! 대사는 또 왜 그렇게 외워지지가 않는지! 그날 오전 9시쯤 촬영장에 갔었는데 다 끝나고 나와서 보니 새벽 4시였어요. 창문이 없는 곳이라 시간 가는 감각도 잘 못 느꼈죠. 이날 촬영 끝나고 사흘 정도 집에서 잘 못 일어났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종종 들은 게, 독기가 부족하대요. 살아보니 맞는 말 같고 타고나기를 좀 그런가보다 싶어요. 아무튼, 홍 감독님 현장은 그런 저도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게 만들죠. 힘들어도 제대로 끝내고 나면 감사함만 남아요.

- <해변의 여인>으로 홍상수 감독과 처음 만났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그때는 작품 앞두고 미팅했던 거죠. 밥 먹으면서 술도 조금 하고.

-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관객으로서 홍상수 영화가 달리 보이는 점이 있나요.

감독님도 사람이니까 살면서 변하는 생각이나 관점이 있을 테고 그게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지 않을까, 저는 그냥 그렇게 추측해보는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감독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저한테 너무 어려운 영화였기 때문이겠죠. 제가 은근히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나봐요. 감독님 영화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낯설었어요. 어릴 적엔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이 너무 찌질해서 또 싫었고요. 외국에 가면 “이런 거장과 협업하는 기분이 어떻냐”고 저한테 질문하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좋아하는 작업하셨음 좋겠다”고 하고 말았어요. (웃음)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전보다 조금 넓어질수록 감독님의 영화가 재밌어져요.

- <그녀가 돌아온 날> 속 배우이자 딸을 키우는 싱글맘 캐릭터에서 자신이 겹쳐 보이기도 했는지요.

포스터로도 나온 장면에서 제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걸 본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완전 아줌마야”라고 했어요. 다시 보니 정말 그렇구나, 싶은 거지요. 이 여자는 어느새 나이가 들었구나. 그걸 느낀 순간 갑자기 짠한 마음이 들었어요.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 관리도 했지만 그런 것들하고는 상관없이 그냥 세월이 보여요. 연민이 갔어요.

- 종일 이어진 인터뷰가 일말의 불안을 남겼고 여자는 연기학원에서 잠시 정돈하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딸이 있는 집으로, 온전한 보호자의 역할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뭉클한 데가 있습니다.

그게 정말 저 같아요. 일 끝나면 잘 내려놓고 딸에게 돌아가는 게 저를 회복시켜요. 우리 딸, 그리고 강아지랑 침대에 누워서 영화 보면서 간식 먹을 때가 그저 행복하고. 얼마 전에 제가 곁에 누워서 ‘엄마는 이런 게 너무 행복하다’ 했더니 딸이 자기도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거 있죠.

- 20년 가까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로만 스크린을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생명의 은인>이 개봉하기 전까지는요.

앞으로도 기회가 온다면 다양한 영화작업을 하고 싶지요. 신랑이 하늘나라 가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한동안은 조용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생명의 은인>은 시나리오 초고 단계에 합류해서 7, 8번 수정되는 과정을 함께한 덕분인지 각별해요. 워낙 저예산이었고 다 같이 ‘라테는 안 먹고 아메리카노만 먹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껴가면서 열심히 찍었죠. 힘들어도 무조건 완성시키자는 심정으로요. 감독님이 유튜브 편집 일을 하면서 제작비를 충당해서 후반작업에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제 애가 태어난 것처럼 기뻤어요.

- 금방 또 돌아와주세요. 자, 마지막으로 연기 외에 최근 송선미가 자신을 사랑한 순간을 하나만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예쁜 옷에 대한 욕구가 정말 없었어요. 왜 백화점 가면 금세 피곤해하고 무조건 빨리 집에 가야 하는 사람 있잖아요. (웃음) 슈퍼모델로 데뷔했고 직업이 배우인데 옷 입는 걸 너무 힘들고 귀찮아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안 그래요. 베를리날레 준비하면서 제이백 디자이너와 친해졌는데, 4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옷을 입는데도 안 지치고 재미있어요. 나이 오십에 이제야 패션의 세계가 궁금해질 모양인가봐요. 저, 왜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