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Groundbreaker) <토이 스토리> 1편이 처음 공개된 1995년 <할리우드 리포트>는 영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토이 스토리>는 당시 (애니메이션 산업만으로 좁혀 말하기엔 부족할 만큼) 영화산업에서 혁신이자 터닝 포인트였다. 애니메이션을 작업하기 위해 CG를 일부 차용한 게 아니라, CG가 장편애니메이션 전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산업적 증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편애니메이션은 <토이 스토리> 전과 후로 나뉜다는 표현은 상투적인 예우가 아닌, 실질적인 산업사의 구분이다. 그렇다면 <토이 스토리>가 나오기 전의 애니메이션 업계 분위기는 어땠을까. 1990년대 초중반까지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은 2D 셀애니메이션으로 작업됐다. <토이 스토리>의 배급을 맡았던 월트디즈니 픽처스가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등으로 전성기 중심부에 있을 때 모든 명작은 수작업의 힘을 믿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유용히 활용됐다. <미녀와 야수>의 무도회 장면이나 <알라딘>의 동굴 붕괴 시퀀스, <라이온 킹>의 누 떼 질주 시퀀스 등 컴퓨터그래픽의 한끗을 빌려 작품성과 환상성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때 컴퓨터그래픽은 2D애니메이션을 보완하는 수준이었다. 주인공부터 배경까지 전부 컴퓨터그래픽이 활용된 작품은 없었다. <토이 스토리> 전까지는.
“예술은 기술에 도전하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기술이 낙후되었던 건 아니다. 그보다는 업계 전반에서 손 기술만을 ‘진짜’ 애니메이션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1990년대 초반, 산업 내에서 컴퓨터그래픽은 차갑다, 감정이 없다, 인간다움을 표현하기 어렵다 등 상대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관련 논문 ‘더 메이킹 오브 토이 스토리’(The Making of Toy Story, 마크 헨·할 히클·이완 존슨· 소노코 고니시, 픽사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따르면 당시 기술로는 인간 피부, 머리카락, 천처럼 곡선형의 부드러운 소재를 구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따라서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이 장난감인 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첫 번째 CG 장편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장난감이어야만 했던 건 플라스틱, 금속, 고무같이 단단한 질감 표현에 능한 컴퓨터그래픽의 발달 수준과 묘사 역량을 적극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토이 스토리>는 장난감 캐릭터, 공간, 조명, 카메라, 움직임, 최종 출력까지 장편영화 전체를 디지털 제작 공정으로 처리했고, 아카데미 시상식 또한 <토이 스토리>를 “최초의 컴퓨터애니메이션 장편영화”(the first computer-animated feature film)라고 소개한다. 이때 픽사가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바로 렌더맨(Renderman)이다.
렌더맨이란 픽사가 자체 개발한 렌더링 기술이자 소프트웨어로서 <어비스>(1989), <터미네이터2>(1991), <쥬라기 공원>(1993)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된 기술이다. 처음엔 픽사의 자체 기술로 출발했지만 이후 외부로도 라이선싱을 제공하면서 혁신적인 공이 영화사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예술은 기술에 도전하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The art challenges the technology, and the technology inspires the art)라는 픽사의 말은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실제 기술 개발과 작품적 도전을 통해 실현되었다.
세계적 흥행과 예술적 성취, 아카데미 3개 부문(각본상, 주제가상, 음악상) 후보 입성 및 특별공로상 수상 등 애니메이션도 다른 극영화처럼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경험은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산업 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CG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에 적극적으로 돌입하기 시작했고 이때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이 드림웍스다. <개미>(1998), <슈렉>(2001) 등 CG 장편부문을 개발하면서 급속도로 픽사와 경쟁 가능한 스튜디오로 우뚝 섰다. 이외에도 <아이스 에이지>(2002)를 통해 블루스카이는 완전히 CG 장편 스튜디오로 자기매김했고,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자체도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2D에서 3D로 작품 방향을 선회했다. 다만 모두가 픽사의 성과를 보고 노선을 바꿨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토이 스토리>가 체계적·산업적·문화적·대중적·비평적으로 쌓은 것을 토대로 역사적인 경향과 트렌드를 조성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1편만이 기술적 의의를 남긴 것은 아니다. 1편의 앤디가 다소 투박하고 조악한 형태를 띠고 있다면 2편부터는 본래 <토이 스토리>가 어려워 난색을 표한 털, 실, 천 등 더 복잡한 형태의 재질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제시의 머리카락, 천을 꿰매 만든 불스아이의 질감, 잠든 치킨맨의 구겨진 티셔츠와 팝콘 알알이까지. 3편에서는 렌더맨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는 혁신이 등장하는데 그건 바로 조명이다. 어두운 소각장에서 펼쳐지는 난투극이나 여러 어린이들이 교차하며 내달리는 써니사이드 어린이집은 기술적으로 대규모 캐릭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애니메이션에서 군중 신이 유독 어려운 이유는 계산량이 비교적 통제 가능한 소수 인원과 달리 요소별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때 캐릭터 애니메이션과 물리 시뮬레이션, 광원 계산이 모두 한 장면에서 치러진다. 예를 들어 소각장 시퀀스는 다량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동시에 불, 연기, 빛 등이 뒤엉키기 때문에 기술과 인력 투자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4편에서는 보다 디테일에 집중했다. 도자기 같은 매끈한 보핍의 얼굴 질감, 우디와 보핍이 각각 마주하는 먼지 모습, 빛의 산란 등을 실제처럼 묘사했다. 사실적 렌더링과 광원 표현이 정점에 이르며 실사 같은 표현이 가능해졌다.
스토리텔링 IP로서의 기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영화의 핵심인 이야기가 힘을 잃으면 모든 것은 ‘구경거리’로 전락할 뿐이다. 실제로 <토이 스토리>1편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후보로 올랐고,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타임>에서는 ‘올해 가장 창의적인 코미디’라고 수식하기도 했다. 기술적 진보와 발전 이전에 대중과 평단, 산업 관계자는 본능적으로 이야기로 돌아갔다. 2015년, <토이 스토리>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1편의 각본을 맡았던 앤드루 스탠턴은 프로젝트팀의 신념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가 컴퓨터그래픽 기술에서 혁신을 이루더라도 그것은 결국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귀속돼야 한다. 영화의 역사가 증명한 건 언제나 결국 이야기가 승리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픽사는 <백설공주> <오즈의 마법사> <스타워즈> 등을 계속 연구했다. 기술은 늙어도 이야기는 안 늙기 때문이다.”
픽사 공동 창업주인 에드윈 캐트멀은 아예 기술이 언급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고, 다소 파격적인 소신을 전하기도 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토이 스토리> 1편의 기술적 성취를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 제작진이 오랫동안 바라온 일이다. 우리의 작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에 기쁘다. 오직 이야기만이 관객 눈에 들어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속편 제작 측면에서도 중요한 선례이자 모범 사례로 기능한다. 본래 비디오 프로젝트였던 <토이 스토리 2>는 이후 극장 개봉작으로 전환되면서 1편보다 복합적인 스토리로 범위를 확장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새로운 과거사를 편승시켰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속편은 곧 상업적 돈벌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픽사는 1편을 뛰어넘는 철학적 스토리텔링을 고집하면서 대중적·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거두었다. ‘본편만 한 속편 없다.’ 시리즈 전개를 주시하는 많은 관객이 하는 말이지만,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압도하는 3편의 결말이나 새로운 챕터로 문을 연 4편과 5편은 세계적 IP로서의 유연성을 증명하기 충분하다.
젠더 감수성, 새로운 챕터를 열며
장난감들은 계속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마주해야만 한다. 릴리패드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보니와 자신의 모든 일과를 우디와 버즈에게 대응시키던 어린 앤디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3편에서 앤디와 우디가 구슬픈 작별을 한 뒤 장난감들은 질적으로, 서사적으로 한 단계 상승해야만 거대 IP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장난감들에겐 변화가 필요했다.
픽사는 그 답으로 우디와 버즈 콤비가 아닌 그 주변부로 시야를 넓혔다. 4편에서는 양치기 소녀 보핍을 24년 만에 귀환시키고, 5편에서는 2편에서 완전히 다뤄지지 않은 제시의 조각 역사를 새롭게 펼쳐냈다. 특히 방 주인이 앤디에서 보니로 뒤바뀐 이후이기에 여아 완구를 주인공 자리로 내세우는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진 여성주의와 젠더 감수성의 흐름을 십분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당연히도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성평등을 주축 삼은 프랜차이즈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 팔을 반창고 하나로 뚝딱 수리해내는 보핍의 독립적인 모습(4편)이나, 전체 우주사령관들을 호령하는 카우걸의 리더십(5편)은 기존에 우디와 버즈가 점유했던 이미지라는 점에서 현대적 가치로서 젠더적 측면을 고려했음을 이견 없이 알 수 있다. <토이 스토리>는 유연히 변화 중이다.
기술과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구심점이지만 한꺼번에 장착시키기 가장 어려운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핵심은 바로 이곳, <토이 스토리> 시리즈 안에 있다. 기술적 진보를 두려워 말 것.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과정을 즐거워할 것.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동시대의 행적을 성실히 좇을 것. 관객 모두가 <토이 스토리>를 함께 나이 든 삶의 동료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시간을 건너온 만큼 작품도 종종걸음으로,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왔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