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은 늘 동료를 구조하기 바쁘다. 납치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고깔을 쓰고 차도를 건너고, 용수철로 이루어진 몸을 최대한 늘려 징검다리를 만든다. 영화가 만든 이들을 닮은 것인지, 이제껏 나온 네 편의 <토이 스토리> 또한 매번 좌초 위기를 겪었다. <토이 스토리>를 지키기 위해 픽사가 벌인 수많은 소란을 정리해보았다. 각 영화가 개봉된 당시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사진 또한 함께 붙인다.
양철 인형에서 우주 영웅으로
<토이 스토리>는 극장에서 개봉한 최초의 CG 100%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이전에도 픽사와 존 래시터는 <룩소 주니어>(1986), <틴 토이>(1988)와 같이 CG로만 만들어진 단편애니메이션을 연출했다. 두 작품은 단연 <토이 스토리> 기술적, 스토리적 초석이다. <룩소 주니어>는 인간의 방에서 뛰어노는 전기 스탠드(픽사의 그 로고 맞다) 이야기고, <틴 토이>는 아기로부터 도망치려는 양철 인형 티니의 이야기다. 존 래시터는 1991년, 앤드루 스탠턴과 함께 <틴 토이>를 장편화할 방안을 고민한다. 하지만 픽사와 디즈니의 임원들은 아이들이 갖고 놀기엔 양철 인형이 지나치게 ‘구식’이라는 이유로 아이디어를 반려했다. 존 래시터 또한 “주인공 소년이 양철 인형을 생일 선물로 받았을 때, 기존의 장난감들이 과연 티니를 질투할까?”라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티니의 자리는 우주 영웅 버즈 라이트이어가 차지했다. 티니는 이후 <토이 스토리 4>에 우정 출연한다. 그 장소가 골동품점이라는 게 슬프지만.
우디에 톰 행크스를, 버즈에 팀 앨런을
<토이 스토리 2> 월드프리미어 당일 팀 앨런과 톰 행크스(왼쪽부터). 톰 행크스는 당시 <캐스트 어웨이> 촬영 중이었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토이 스토리> 전체를 책임지는 단 한명의 주인공은 단연 우디다. 그리고 우디의 목소리는 31년째 무려 톰 행크스가 전담하고 있다. 제작진은 당시로선 낯선 개념인 CG 애니메이션에 할리우드 우디에 톰 행크스를,버즈에 팀 앨런을특급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해 회심의 프러포즈를 건넸다. 우디가 <터너와 후치> 속 톰 행크스의 대사를 발화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이다. 톰 행크스는 1편 녹음을 마친 이후 제작진이 “이대로 영화가 개봉하면 우디가 너무 재수 없어요”라며 시나리오 수정고를 보냈을 때도 군말 없이 재녹음 부스로 향했다고 한다. 한편 픽사는 버즈 역에 빌리 크리스털을 캐스팅하기 위해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이번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속 빌리 크리스털의 대사를 말하는 버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캐스팅이 불발되자, 제작진은 뒤이어 시트콤 <아빠 뭐하세요>와 영화 <산타클로스>로 당시 범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팀 앨런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렇게 또 다른 인생 캐릭터를 만난 앨런은 길거리에서 웬만하면 입을 열지 않는다. 그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행인들이 “버즈다!”라며 정체를 알아채기 때문이다.
백업을 생활화하자
하마터면 <토이 스토리 2>를 영영 보지 못할 뻔했다. 2편의 개봉을 1년 앞둔 1998년. 부기술 책임자였던 오렌 제이컵은 작업 도중 모니터에서 기현상을 목격한다. 우디의 의상이 그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당황한 제이컵은 즉시 파일 서버를 종료했지만, 그 시점엔 이미 지난 2년간 작업한 결과물의 90%가 손실됐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픽사에는 백업 프로토콜에 대한 검증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즉 복원본과 백업 테이프까지 모두 망가진 상황. 어느 애니메이터가 파일 정리를 하던 중 실수로 공유 네트워크에 파일 삭제 명령어를 입력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픽사를 도왔다. 출산으로 재택근무 중이던 게일린 서스먼이 사고 2주 전 작업을 위해 데이터의 일부를 집으로 복제해갔던 것이다. 팀 토이 스토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스먼의 컴퓨터를 픽사 스튜디오로 옮긴 뒤 주말과 밤잠을 포기한 채 2교대로 데이터 복구에 매진했다. 다행히 사고 2주 전의 상태까지는 복원이 가능했고, 픽사는 즉시 데이터 백업 프로토콜을 재정비했다.
모두의 눈물 버튼 노래
존 래시터는 <토이 스토리>가 여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뮤지컬이 되는 길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가사가 있는 곡을 영화에 쓰고 싶다는 작곡가 랜디 뉴먼의 아이디어엔 동의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곡 <You’ve Got a Friend in Me>는 그렇게 탄생했다.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슬픈 O.S.T, 세라 매클라클런의 <When She Loved Me>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존 래시터는 제시(조앤 큐잭)가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시퀀스가 대사가 아닌 가사로 표현되길 바랐다. 랜디 뉴먼은 이렇게 슬픈 음악이 어린이 관객에게 호응을 얻을까 우려했고, 디즈니 또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느린 노래는 관객들의 흥미를 앗아간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최종 시사 당일, <You’ve Got a Friend in Me>가 흐르자 어린이들은 물론 톰 행크스와 팀 앨런까지 극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최근 세라 매클라클런은 라디오 <잭 생 쇼>에 출연해 곡의 비하인드를 털어놓았다. “매니저는 곡이 별로라며 거절하려 했지만 나는 곡을 듣자마자 눈물이 나서 바로 랜디 뉴먼에게 연락했다. 나 역시 시사회에서 <When She Loved Me>가 나올 때 오열했다. 오직 나의 어린 딸만이 옆에서 엄마를 창피해했다.”
대체 3편은 언제 나와?
2편의 개봉 이후 수익배분 및 저작권 소유권 문제를 두고 디즈니(투자배급사)와 픽사(제작사) 사이의 법적 마찰이 길어졌다. 그사이 캐릭터의 속편 권리를 가졌던 디즈니는 버즈 라이트이어가 대규모 장난감 리콜 사태에 휘말린다는 내용으로 3편 제작을 자체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토이 스토리> 프로젝트는 다시 픽사로 이관됐다. 픽사의 CCO가 된 존 래시터는 취임 24시간이 되지 않아 디즈니의 계획을 무효화했다. 그해 새 판을 짠 <토이 스토리 3>의 제작이 확정됐다. 리 언크리치는 당시 <토이 스토리 3>가 픽사 전 직원의 관심사였다고 말한다. “스토리 담당자 중 한명은 첫 <토이 스토리>가 나왔을 때 9살이었다. <토이 스토리>가 단 두편으로 스토리텔러, 영화 제작자, 애니메이터가 되도록 이끈 것이다.”(<할리우드 리포터>) 앤드루 스탠턴, 피트 닥터, 리 언크리치 등은 오리지널 <토이 스토리> 제작진이 첫 번째 <토이 스토리>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샌프란시스코 북쪽 만의 오두막집으로 ‘심기일전 워크숍’을 떠났다. 그곳에서 2010년 6월18일이라는 개봉일을 확정했고, 현실의 10년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서도 흘렀다는 설정하에 이야기를 써나갔다.
YOU MUST COME BACK HOME
미세스 포테이토 역의 에스텔 해리스와 앤디 역의 존 모리스(왼쪽부터).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11년 만의 속편은 관객 각자의 추억을 복원하는 데에 주력했다. 제작진이 가장 공들인 캐스팅은 1편과 2편에서 앤디를 목소리 연기한 어린이 배우, 존 모리스다. 앤디의 성장을 보이기 위해선 소년을 지나 변성기를 거친 존 모리스가 필요했지만, 그는 2001년 은퇴 후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서 캐스팅을 제안했고, 모리스는 <토이 스토리 3>의 비디오게임, <토이 스토리 4>까지 목소리를 더했다. 그는 배우의 삶을 살지 않지만, 앤디로 살았던 시간이 선사한 행복을 즐겁게 회상한다. “1편 개봉 당시 홍보용으로 제작된 우디 인형을 선물받았다. 받자마자 영화처럼 우디의 부츠 밑창에 ‘ANDY’를 써넣었다. 이 우디만큼은 자손 대대로 물려줄 것이다.”(<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작품의 본질을 이으려는 시도는 기성 배우들에게도 이어졌다. 톰 행크스는 <토이 스토리 3>를 만드는 동안 제작진에게 1편의 기억을 되살려 팀 앨런과 한 부스에서 함께 연기하며 호흡을 맞출 수 있길 요구했다. 제작진은 이를 수용한 것은 물론, 톰 행크스가 3편 최고의 명대사인 “잘 가, 파트너”(So long, partner)를 가장 마지막에 녹음할 수 있도록 전체 스케줄을 조정했다.
4편은 또언제 나와?
픽사는 당초 2017년 6월 4편이 나올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2018년 6월로, 또 2019년 6월로 미루어졌다. 그사이 픽사 내부는 다사다난했다. 2017년, 다수의 픽사 직원들은 존 래시터를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다. 존 래시터는 혐의를 인정하고 픽사를 떠났다. 각본을 맡았던 라시다 존스와 윌 매코맥도 프리프로덕션 중 창작적, 철학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 이후 <토이 스토리 4>는 조시 쿨리의 단독 연출, 작가 스테파니 폴섬의 합류로 새옷을 입었다. 보핍의 목소리를 연기한 애니 포츠에 따르면 이 시기에 캐스팅이 되고도 픽사에서 아무 연락이 없어 불안했지만 “초고의 4분의 3이 폐기된 채 수정된” 대본을 뒤늦게 받고 기뻐했다고 한다. 4편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왜 애니 포츠가 기뻤는지 바로 알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보핍은 거추장스러운 치마를 망토로 둘러 생존 도구로 활용하고, 수많은 전투를 진두지휘한다. 제작진은 보핍을 위해 팀 보(Team Bo)를 구성했다. 배우 애니 포츠를 포함해 스토리 아티스트, 애니메이터, 캐릭터, 테크니컬 디렉터, 리깅 아티스트 등이 총결집해 보핍의 히어로적 움직임을 공동창작한 것이다.
기술을 입증하라
보핍 역의 애니 포츠가 <토이 스토리 4> 개봉을 맞아 새 옷을 입은 보핍과 만났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토이 스토리 4>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들은 기술력 발전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제작진이 가장 사랑한 캐릭터는 포키(토니 헤일)다. 픽사의 수석 테크니컬 디렉터 밥 모이어에 따르면 “유아 보니(매들린 맥그로)가 조립했을 법한 수준 그대로 만드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고. 겉보기에 단순한 질감을 주기 위해 수많은 기술적 난관이 따랐다. 제작진은 포키의 팔이 철사 모루처럼 뻣뻣하게 움직이도록, 눈알이 초점 없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도록 만들었다. “우디는 플라스틱과 천으로만 만들어졌다. 다른 장난감들도 플라스틱 아니면 털로 이루어졌다. 반면 포키는 플라스틱, 모루, 눈알 등 잡동사니의 결정체라 복잡할 수밖에 없다.”(밥 모이어) 주지한 대로 보핍은 <토이 스토리 4>에서 새로 태어난다. ‘팀 보’는 아예 애니메이팅 기술 하나를 새로 개발했다. 보핍이 도자기 인형이라는 점에 착안해 그에게 미세한 빙렬(흙과 유약의 수축률 차이 때문에 표면 유약에 생기는 무수한 실금.-편집자)을 그려냈다. 보핍이 그동안 산전수전을 겪었고, 더 이상 얌전하지 않으며, 먼지 쌓인 선반 위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서사를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