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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시를 닮은 얼굴 - <토이 스토리 5>가 확장하고 변형시킨 친구 맺기의 방식은

픽사 가문의 대를 이을 후계자는 누구일까. 오프닝으로 영화사에 남은 <업>? 경이로운 상상력의 <인사이드 아웃>? 눈치챘겠지만 나는 역시 <토이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야말로 픽사 감성의 요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유년기와 동심을 다루지만, 픽사의 특별한 점은 그곳에 놓인 이별을 직시하고 끌어안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성장하기 위해 익숙한 것들과 헤어져야 한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토이 스토리>), 상상 속의 친구(<인사이드 아웃>), 하늘을 날며 탐험하는 꿈(<업>) 같은 것들. 사랑해서 떠나야 하는 순간이 있다. 픽사는 우리가 외면했던, 혹은 감당하지 못해 흘려보냈던 이별의 순간을 다시 소환하여 쓰다듬고 애도한다. 웃으며 작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어른이 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유년기를 상징하는 장난감의 눈으로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함께해왔다. 그건 어린 시절과 작별하는 과정에 관한 길고 아름다운 탐색이다. 네편의 작품이 나왔고, 장난감의 주인은 어느덧 앤디에서 보니로 바뀌었다. 이제 무슨 할 말이 남았을까 싶을 때쯤 5편으로 돌아온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선보인다. 그건 바로 ‘시점’의 이동이다. 장난감의 위치에서 앤디를 바라보며 관계의 본질을 탐색해온 <토이 스토리>는 이제 보니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무엇이냐고 자문한다. 화자는 여전히 장난감이지만, 중심축이 이동했다. 이 차이가 <토이 스토리 5>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앞으로 이어질 작품을 잇는 고리가 될 것이다.

이번 5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방대해진 스케일이다. 가령, <토이 스토리>시리즈에서 이야기는 늘 여러 갈래로 전개되곤 했다. 하지만 5편은 유독 역동적이다. 이야기는 세 갈래로 시작된다. 별을 좇는 버즈 군단과, 집으로 귀환하는 우디. 그리고 제시. 그와 릴리패드(이하 릴리)는 유년의 끝자락에 선 보니의 곁을 두고 경쟁한다. 캐릭터도 확 늘었는데, 먼저 릴리는 영화에 동시대의 공기를 기입한다. 아이들의 혼을 쏙 빼는 스마트 패드는 장난감계의 세대교체 선언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장난감과 전자기기간의 구태의연한 싸움이 전개되나 싶은 순간, 스마티 팬츠가 등장해 구도를 허물어뜨리며 영화의 흐름을 새로운 쪽으로 돌린다. 서사와 캐릭터 모두에서 묵직한 확장을 이룬 5편 앞에서,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에 대한 대답 대신, 한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는 블레이즈. 시리즈의 새 얼굴이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어쩐지 낯익다. 블레이즈가 키우는 말과 돼지는 제시 곁을 지키는 불스아이와 햄을 떠올리게 한다. 또 무릎까지 오는 멋진 부츠를 즐겨 신는 모습은 카우걸 인형인 제시와 닮았다. 약간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블레이즈와 제시는 쌍둥이라고. 제시가 인간이 된 버전이 블레이즈고, 블레이즈가 장난감이 된다면 제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보니는 또래 친구가 없어 슬퍼한다. 그는 이제 자기만의 상상의 나라에서 살짝 벗어나, 함께 신나게 놀 친구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이건 슬프게도 플라스틱 장난감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보니를 위해 제시는 자기와 똑닮은 블레이즈를 친구로 맺어준다. <토이 스토리 5>는 아이의 곁을 지키던 장난감이 사람이 되어 인연을 이어가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자 상심한 제시는 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제시는 첫 번째 주인 에밀리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가 자기를 잊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불행한 시기에 찾아온 작은 행운은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제시는 말한다. 장난감은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으면 된 거라고. 이 장면은 중요한데, 자기 운명을 대하는 제시의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제시는 주인의 곁에 누가 남느냐보다 어떻게 아이를 성장시킬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 이후 제시는 자연스레 릴리와 손을 잡는다. 달라진 목표 아래 릴리는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토이 스토리 5>에 이르러, 주인과의 놀이에 몰두해온 장난감은 오로지 아이를 위하여 자신의 가치관을 뒤집는다. 그것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곳에서 다른 존재(친구)의 자리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토이 스토리 5>는 다름 아닌 제시의 성장에 관한 영화다.

<토이 스토리 5>에서 픽사는 제시를 두고 여러 변화를 시도한다. 그의 리더십 아래 남성 캐릭터끼리 경쟁하는 구도나 전통적인 성역할을 뒤집는 결혼식 장면 등이 그 사례다. 이 장면들은 달라진 시대의 반영 같기도 하고, 이전 시리즈에 대한 변명 같기도 하다. 이런 시도도 인상적이지만 정작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반으로 접힌 채 블레이즈의 손에 들려 덜렁거리는 제시의 몸뚱이다. 그 좌절스러운 형상은 마지막에 이르러 아이들의 상상 안에서 즐거운 카우걸로 다시 태어난다. 어려운 현실 위에서 고난을 거쳐 피워낸 환상은 아리땁다.

현실과 환상. 어쩌면 장난감은 그 사이에 기거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으로 사소한 장면 하나를 언급하고 싶다. 이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은 버즈 군단의 야심찬 얼굴이다. 이들은 마치 DNA에 각인된 명령을 따르듯이 ‘별’(star)을 찾는다. 처음에는 창공의 별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고, 나중에는 별 문양의 보안관 배지를 보고 눈을 반짝거린다. 오로지 별만 보면 직진하는 이들의 단순함은 유쾌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예상 못한 감흥. 임무를 마친 이들은 처음으로 부드럽게 날아, 아이들의 품에 한명씩 안착한다. 이제 그들은 평생 함께할 자기만의 별을 찾은 것이다. 환상(별)은 그렇게 현실(아이)이 된다. <토이 스토리 5>가 하려는 이야기도 비슷할 것이다. 환상(제시) 속에 머물던 보니의 세계는 이제 현실(블레이즈)과 만났으니 말이다. 사소하지만 중대한 전환. 아이의 성장을 중심에 품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궁금증을 뒤로한 채, 놀이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