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장난감 밖이다. 기존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장난감들 사이의 분열을 다뤘다면 이번 5편에는 장난감을 넘어서, 전자기기로 그 영역을 넓혔다. 태어났을 때 이미 인터넷 네트워크와 인공지능, SNS와 ‘좋아요’ 비즈니스가 발달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현실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보니와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장난감들은 동네를 위협하는 무서운 소문 혹은 실체를 알게 된다. 어린이들이 태블릿PC에 빠져 더 이상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직 스크린에만 집중한 채 더 이상 예전처럼 상상하지 않는다고. 이 공포는 보니의 집에도 마침내 도래하고 만다. 릴리패드의 등장. 개구리 모양의 뽀로통한 패드는 실로 많은 기능을 지녔다. 게임, SNS, 사진 촬영, 온라인 검색, AI형 대화까지…. 이제 보니는 장난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단순히 누가 보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니가 지닌 원론적인 고민,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는 슬픔을 ‘누가’ 해결해줄 수 있냐는 거다. 장난감들은 그 과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지만 이미 오래전에 장난감과 멀어진 담장 너머의 아이들을 보니에게 연결해주긴 쉽지 않았다. 바로 그때 릴리패드가 이 난관을 아주 손쉽게 해결해낸다. 같은 댄스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친구 추가 걸기! 그리고 집에 놀러오라는 DM의 도착! 마침내 보니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Toy meets tech.’ 시대적 변화를 노골적으로 맞닥뜨린 장난감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토이 스토리 5>는 ‘기술이 좋냐, 장난감이 좋냐’와 같은 단편적인 질문을 건네지 않는다. 보니는 앞으로 릴리패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기술이란 그런 것이다. 한번 진보하고 나면 다시 그것이 없던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토이 스토리 5>는 기술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같은 구시대적 물음이 아니라, 이미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안착해버린 존재를 어떻게 활용하고 상호보완하며 살아갈 것이냐를 묻는다. 릴리패드도 보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비록 온라인상의 친구 맺음은 오감으로 상대방을 느낄 수 있는 오프라인과 다르게 덜 신중하고 덜 예민해서 문제를 만들지만, 보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릴리패드의 마음은 순전히 사랑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우디가 저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지 7년 만에 나온 속편은 제시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동시대적 문제를 첨예하게 끌어안는다. 이 세대 전환에 관한 이야기는 어쩌면 제작진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처음 시작된 <토이 스토리 1>에서 각본가로 활약한 앤드루 스탠턴이 처음으로 <토이 스토리>시리즈의 감독으로 나섰고, 그와 함께 여성감독 매케나 해리스를 공동 연출자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두 감독 사이엔 30살이 넘는 나이 차가 존재한다(실제로 앤드루 스탠턴은 한 인터뷰에서 매케나 해리스가 자신의 자녀와 동갑이라고 말했다). <토이 스토리>가 5편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 31년이 두 감독 사이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장난감과 태블릿PC의 교차점, 원로 감독과 신인 감독의 협업. <토이 스토리>는 이견 없는 중요 변곡점을 한창 지나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 장난감들은 신기술과 어떻게 어우러질까. 대머리로 우스꽝스러워진 우디의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걀걀걀 웃게 되는 우리는, 이미 너무나 오랜 친구 사이다. 어떻게 해도 변형되지 않고 변함없는 이 전 지구적 우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일종의 고백 편지 같은 이야기들을 준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