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바닷바람처럼 유쾌하고 설레는 - ‘넥스트 마스터즈’ <고백의 역사> 남궁선 감독 × 봄바람영화사 박지영, 곽희진 대표

1998년 부산, 세리(신은수)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현(차우민)에게 반한다. 현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세리의 악성 곱슬머리가 발목을 잡는다. 세리의 계획은 다리를 다쳐 깁스한 윤석(공명)의 학교생활을 돕고 윤석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를 받는 것이다. 과연 세리는 찰랑이는 생머리와 함께 현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영화 <고백의 역사>는 2025년 8월29일 공개된 후 9월1일부터 9월7일 사이 한국과 글로벌 비영어 부문 1위, 온두라스, 니카라과, 필리핀에서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톱 10에는 공개 이후 6주간 진입하며 다양한 국가와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 호평받았다. 누군가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상기하고 또 누군가에겐 세리의 설렘을 감지하며 같이 즐길 자리를 마련한다. <고백의 역사>는 <82년생 김지영>을 제작한 봄바람영화사, <십개월의 미래> <힘을 낼 시간> 등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한 인물의 서사를 구축해온 남궁선 감독이 뜻을 함께한 작품이다. 캐릭터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남궁선 감독의 특성이 발휘된 작품으로 그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고백의 역사>가 봄바람영화사와 남궁선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여보았다.

박지영, 남궁선, 곽희진(왼쪽부터).

- <고백의 역사>가 공개된 지 갓 1년이 넘은 시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들려준다면.

곽희진 부산 올로케이션이라 3개월 수학여행 떠나듯 가서 일하고, 배우들도 서로 무척 친해졌다. <고백의 역사> 관련해선 좋은 기억만 남았다.

박지영 <82년생 김지영> 뒤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새로운 작품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전환점을 마련해준 의미 있는 작품이다.

남궁선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플릭스가 다음해에 공개될 한국영화 라인업을 발표할 때 <고백의 역사>를 이미 촬영 중이었다. 로맨틱코미디를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행복해하며 현장에 있던 기억이 난다. 원래 로맨스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봄바람영화사를 좋아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 택한 것도 있다. 전작인 <힘을 낼 시간>은 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제작한 영화라 이들의 존엄성,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다. 우울해지는 감이 있어 그렇지 않은 작품을 하고 싶었던 참에 <고백의 역사>의 제안이 왔다. 작품을 마치고 나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 제작사, 감독 입장에서 <고백의 역사>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나.

남궁선 그에 앞서 대표님들이 시나리오를 내게 맡기신 이유가 궁금하다. (웃음)

박지영 처음 감독님께 연락드렸을 땐 봄바람영화사의 제안드릴 작품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독님 전작의 에너지가 좋아 뵙고 싶었다. 이후로 1년에 한두번씩 연락드리다 <고백의 역사>를 준비할 때 감독님이 떠올랐다. <개월의 미래>와 <고백의 역사>가 맞닿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가 그렇다기보다 작품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밝고 귀엽게, 사람들이 보면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감독님의 능력이 에도 잘 맞을 것이라 판단했다.

남궁선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캐릭터성을 강조하면 재밌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90년대 배경의 멜로 코드가 접목된 하이틴물 카테고리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 같은데 그중 <고백의 역사>는 세리 캐릭터가 독특해 그 점에 집중하면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가 될 것 같았다. 세리는 주변에 친구들도 많아서 단순한 로맨스보단 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강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인물들을 행복하게,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또 로케이션이 부산이지 않나. 세리의 캐릭터성과 부산이라는 장소성, 그 두 가지 차별점 혹은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다.

박지영 봄바람영화사가 오래 갖고 있던 영화다. 하이틴 로맨스의 경우 최근 대만영화 등의 리메이크작이 많았고 제작까지 이어지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 흐름에서 봤을 때 세리 캐릭터가 차별점이 아니었을까. 하이틴 로맨스는 남녀 사이의 케미스트리나 상황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데 세리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이 있었다.

곽희진 우리가 실제 겪었던 에피소드를 많이 추가하며 즐겁게 작업했다. 우리 세대에겐 추억 여행이 되고 젊은 세대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 <고백의 역사>의 활기를 형성하는 데 배우들이 큰 몫을 했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곽희진 세리 역의 신은수 배우는 귀엽고 발랄한데 단단한 면도 있어 보자마자 ‘세리다!’ 싶었다.

남궁선 세리가 귀엽고 예쁘지만 특이하기도 하지 않나. 사투리 등 아직 미완성 상태였지만 신은수 배우가 역을 맡는다면 뭘 해도 밉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은수 배우가 예전엔 차분한 역을 많이 맡았지만 배우 본인에겐 세리 같은 발랄한 면이 있다. 아직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살린다고 생각하니 신이 나더라.

곽희진 선하고 무심한 듯 다정한 윤석 역에 누가 어울릴까 고민하다 공명 배우에게 연락했는데 흔쾌히 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계속 막내 위치에서 영화를 하다 <고백의 역사>에서 최고 선배가 되니 책임감이 드는 듯했다.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그들도 공명 배우에게 의지했다.

박지영 차우민 배우는 공명 배우와 전혀 다른 매력을 가졌다. 90년대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을 학생 분위기도 지녀서 신은수, 공명 배우와 어울릴 것 같았다. 실제로 부산 출신이고.

남궁선 윤석과 현, 두 캐릭터가 상반된 이미지를 지녔다. 윤석이 서울 남자를 대변한다면 현은 세리의 마음을 흔들 만한 부산 남자다. 차우민 배우가 수영선수 출신이라 피지컬이 좋고 매력도 있어서 됐다 싶었다. 그 정도는 돼야 여자주인공의 마음이 헷갈리지 않겠나.

- 세리, 현, 윤석의 삼각관계와 더불어 세리 반 친구들도 눈에 띈다.

남궁선 세리 친구들은 최대한 부산 배우를 데려오려고 했다. 오픈 캐스팅으로 부산 출신의 그 나이대 여자배우는 다 만나본 것 같다. 성래 캐릭터가 표현의 여지가 많은 캐릭터였다. 윤상현 배우를 보는 순간 공부에는 관심 없고 까불거리고, 속마음은 여린 이미지가 떠올라 캐스팅했다. 다른 캐릭터들과 조금 다른 느낌의 반장 상철 역에 천명우 배우까지 캐스팅하니 모든 퍼즐이 맞춰진 기분이었다.

- 세리가 현, 윤석과 마주치는 것을 포함해 바다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배경인 부산의 장점이 드러난 장면들이다.

박지영 우여곡절이 있었다. 촬영 전날 장소 확인하고 세팅을 맞춰뒀는데 다음날 가니 바닷가에 미역이 엄청 밀려들어와 있었다. 제작부가 새벽부터 미역을 건져내야 했다.

곽희진 현이 수영하다 바다에서 나오는 신을 찍어야 했는데 파도도 세고 추운 데다 바위가 많아 힘들었을 텐데도 차우민 배우가 정말 열심히 해줬다.

남궁선 컷 하면 스태프들이 긴 장화를 신고 들어가 미역을 건지고, 이걸 감수했기 때문에 바다의 감성이 잘 구현됐다. 부산에서 영화를 찍음으로써 생기는 연출적 이점이 정말 많다. 그런 측면에서 제작사와 넷플릭스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준 게 무척 기뻤다. 부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광안대교 등도 일부러 넣었고 그런 부분이 완성도를 높여줬다.

- 자주 거론되는 신이 짝피구다. 학창 시절의 재미와 설렘이 동시에 느껴진다.

남궁선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가장 걱정했던 장면이다. 세리와 친구들의 특성상 이 신을 아기자기하게 연출할 수 없었고 반 대항 피구라 초반부터 스포츠영화처럼 접근해야 했다. 80명이 등장하는 스포츠 신이 쉽지 않더라. 짝피구의 설렘에 학생들간의 불타는 경쟁심을 넣었고 무조건 성별에 따른 롤을 정하는 대신 성래 같은 친구로 예외를 뒀다.

- 그 밖의 작업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골라준다면.

남궁선 학교 스탠드에서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장면. 제각기 자기 모양대로 앉아 있는데 그 사이에서 세리랑 윤석이 서로 찌릿찌릿하게 오가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 모습들이 정확하게 과거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또 하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다.

- 부산 올로케이션 촬영과 같이 넷플릭스와 협업이 작업에 어떤 도움을 줬다고 느끼나.

박지영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을 깊이 나눠주고,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며 단계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하는 좋은 파트너였다. 다음 영화도 넷플릭스와 작업 중인데 준비 과정의 만족도가 높다.

남궁선 <고백의 역사> 이전에 독립 장편 2편을 찍었다. 흥행 부담이 크지 않고 자율성이 있는 환경에서 만들었다. <고백의 역사>도 제작 과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훨씬 더 많은 지원을 받았고 편성이 확정된 작품을 만드니 안도감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대화가 통한다는 게 무척 중요한데 넷플릭스와 소통이 잘돼 팀워크를 꾸리기 좋았다. 부산 로케이션 등 연출적으로 고집하고 싶던 것들을 전부 세팅해줘서 작품 내적인 연출에만 집중하면 됐다. 마케팅 회의를 할 때 세리의 곱슬머리가 결코 못생긴 것으로 묘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을 때 잘 받아들여져 인상적이었다. 좋은 작품이 목표가 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그 방향성이 확실히 느껴졌다.

- 봄바람영화사와 감독 모두 OTT 플랫폼에서 영화를 공개한 건 처음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고백의 역사>가 큰 사랑을 받았다.

곽희진 전 세계에 동시 오픈이 되고 여러 국가의 시청자들이 각자의 언어로 리뷰를 보내는 게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느 나라에서 반응이 좋았는지 체크하면서 좋은 이야기는 국가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체감했다.

남궁선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 로맨스 장르가 어떤 시장에선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주요 장르가 아닐 수도 있는데 전세계 로맨스 팬들이 전부 모이니 기세가 어마어마하더라. 무대인사를 돌며 관객을 만나진 못했지만 SNS에서 다양한 반응이 오가는 걸 보니 할 만한데 싶었다.

박지영 보통은 영화를 홍보할 때 특정 플랫폼을 정해 광고를 집행하는 식인데, 넷플릭스는 플랫폼이 가진 힘이 커서 자체적으로 홍보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백의 역사> 관련 내용이 공개되면 그에 대한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온다. 10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가 제작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은데 잘 완성돼 전 세계 10대부터 40~50대 관객들도 즐겁게 본 것을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