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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넷플릭스 예능이라는 생태계 - <솔로지옥>부터 <흑백요리사>까지 ‘예능맛집 넷플릭스’ 윤현준 스튜디오 슬램 대표, 김수아 시작컴퍼니 대표

어쩌면 예능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판타지적인 재미를 바탕으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만들고, 국경을 넘어 낯선 시청자에게까지 닿는 가능성. 넷플릭스의 한국 예능 투자는 그동안 레거시미디어 틀 안에서 만들어지던 예능의 제작 환경과 위상을 조금씩 바꿔왔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과 <크라임씬>을 만든 윤현준 스튜디오 슬램 대표, <솔로지옥>을 만든 김수아 대표가 그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제작자들이다. 이들은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라는 기존 관계를 넘어 제작사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을 플랫폼에 제안하고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관을 구현해내는 경험을 통과했다. 다음 세대의 PD들이 그 세계관을 이어받아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예능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 지금, 넷플릭스와 협업해온 두제작자에게 한국 예능의 3.0 버전 경험 빅데이터를 들어보았다.

윤현준, 김수아(왼쪽부터).

- 넷플릭스가 한국 예능에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후 현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무엇인가.

윤현준 나는 KBS, JTBC 등 방송국에도 몸을 담았고 제작사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처음 제작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넷플릭스가 예능 업계에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지닌건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고, 모든 콘텐츠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실패를 교훈 삼아 계속 발전하고 진화했다는 점이다. 그과정에도 투자 측면에서는 굉장히 꾸준했다. 과거엔 소규모였는데 점점 투자 규모를 늘린 게 아니다. 예능 산업을 향해 꾸준히 투자를 지속해왔고 그 연속성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었다. 실패해도 계속 투자하는 건신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제작자들에겐 굉장히 행운이다. 현재 큰 규모의 예능프로그램을 꾸릴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넷플릭스밖에 없다.

김수아 본격적인 분기점은 넷플릭스에 예능팀이 꾸려지면서인 것 같다. 그전에는 콘텐츠팀에 예능과 드라마가 함께 다뤄졌는데, 예능 PD 출신의 디렉터가 예능팀을 구성하면서 예능 PD들에게 직접 기획안을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때 내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게 <솔로지옥>이었다. <솔로지옥>은 사실 TV방송을 염두에 두고 방송국 예산에 맞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 글로벌 OTT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지금의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솔로지옥>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사랑받으며 탄력을 받았다.

- 그 과정이 작은 제작사들에도 영향을 줬나.

김수아 넷플릭스가 예능에 투자하면서 우리 같은 작은 제작사들이 독립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그전에는 예능 제작사가 수익을 내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웠다. 방송프로그램의 외주제작이나 작은 코너 등을 맡아 납품하고, 일이 끊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박리다매로 공급하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예능이라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예능프로그램 하나를 똑똑하게 기획해서 성공시키면 그것으로 회사를 운영할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 본래 콘텐츠 산업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가 있다. 영화, 드라마는 보다 우아한 것으로 여겨지는 데 비해 예능은 쉽고 가벼운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지금의 투자 규모 변화와 산업적 지형도 변화가 예능의 장르적 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김수아 그 피라미드는 지금도 있다. (웃음) 기존 레거시미디어에서 예능은 박수받으면 끝나는 일이 없었다. 대중의 반응이 시들해질 때쯤 끝나니까. 작품성도 끝이 있어야만 나올 수있는데 좋을 때 끝날 수가 없는 거다.

윤현준 내가 1997년부터 PD 일을 시작했다. 그때 방송국에서도 예능의 위치가 상당히 애매했다. 먼저 드라마와 비드라마로 나뉘었고, 비드라마 중에서도 교양과 시사가 영향력이 더 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를 따라잡는 예능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청률 20~30%대를 돌파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런데 예능은 드라마와 달리 작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조금씩 예능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PD들 사이에서 커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완전히 실현시켜준게 넷플릭스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사전제작을 진행하고 완결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필적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가장큰 계기다.

- 실제로 창작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있는 자유도도 달라졌나.

김수아 <솔로지옥>의 헬기가 대표적인 것같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방송국이었다면 “헬기를 쓰면 어떨까”라는 의견을 꺼내고선 하하하 웃다가 끝났을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넷플릭스에 이야기했더니 실제로 헬기를 쓰게 됐고, 그게 우리의 시그니처가 됐다. 단순히 돈을 많이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라면 그것을 구현하는 데 투자를 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 팀원들도 아이디어를 낼 때에도 “이건 예산 때문에 안될것 같다”는 생각을 미리 하지 않게 됐다.

윤현준 <크라임씬 제로>도 비슷하다. 미술감독과 세트장에 관해 논의하면서 오랫동안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상상만 했던 것들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흑백요리사>도 처음에는 요리사 100명이 함께 요리하는 화려한 그림을 생각했다. 100명이 동시에 요리하는 그림을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광경은 만들어낼 수있었다. 요리 시설, 조리와 배수 시설, 안전까지 포함한 상세 사항을 다른 플랫폼에 제안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 그런 환경이 후배 PD들에게도 영향을 주나.

김수아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어떤 프로젝트는 연출이 3명, 4명씩 붙기도 한다. 방송국에는 연차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팀에서 여러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끌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데 넷플릭스 프로그램은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내기 좋다. 후반작업, 촬영 등 방송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시스템을 배우는 것도 젊은 PD들에게는 큰 경험이다. 나도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하면서 처음으로 ‘포스트 슈퍼바이저’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촬영부터 보정, 사운드 등 기술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하는 사람이다.

윤현준 넷플릭스는 마케팅, 홍보, 후반작업 등부서마다 슈퍼바이저가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한국 시장에선 이런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넷플릭스 같은 체계적인 환경을 경험하고 나면 다른 업무를 할 때 괜히 마음이 답답해지는 측면은 있다. (웃음) 다만 넷플릭스가 제작자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과 별개로 다른 플랫폼들도 같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전체 생태계의 균형이 좋아질 수 있다.

김수아.

- 넷플릭스는 콘텐츠 공개 방식이 일관된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프로그램마다 공개 방식이 다른데 이 또한 연출의 일부라고 느끼나.

김수아 그게 넷플릭스 예능이 지닌 가장 차별화된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2회를 만들더라도 3회부터 재미있어지면 3회까지 동시에 공개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4회까지 끊을 수도 있다. 1, 2, 3회에서 서사를 깔고 4회에서 터뜨리는 식으로 공개 방식을 조절할 수 있다. 공개 회차를 정하고 몇주에 나눠서 내보낼지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플랫폼 속성 중 하나라고 느낀다.

윤현준 넷플릭스는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공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를 고민한다. 한꺼번에 내보내는 게 맞는지, 하나씩 보여주는 게 맞는지, 몇편씩 끊는 게 맞는지. 방송국은 매주 슬롯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러한 고민은 하기 어렵다.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고민하는 것과 슬롯을 채워야 해서 내보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차이도 결국 투자와 연결돼 있다.

- K 수식어가 붙는 수많은 주제 중에 이제는 K예능도 떠오른다. 한국 예능의 글로벌 인기를 실제로 체감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김수아 출연자들의 해외 팔로어가 엄청나게 늘어날 때. (웃음) 일반인 출연자가 어느 날해외에서 팬 미팅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놀랍다. 처음 <솔로지옥>을 만들 때는 해외 시청자를 고려해서 형식적인 부분을 고민했다. 회당 60분에 맞추어서 해외 리얼리티처럼 자막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한국과 일본은 화면에 글자가 너무 많다고들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회당 2시간씩 나갈 때도 있고, 자막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흑백요리사>도 이제는 해외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국 중요한 건 형식보다 어떤 재미를 추구하느냐이다. 글로벌 시청자를 포용하려다 우리의 장점을 잃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윤현준 해외 반응을 염두에 두고 뭔가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어느 나라를 타깃화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인지, 이탈리아인지, 프랑스인지. 나라마다 선호하는 주제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넷플릭스 코리아가 한국에서 많이 볼만한 것을 만드는 게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재미있으면 해외에서도 재미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문화적 차이 때문에 조정해야 하는 부분은 있다. <흑백요리사>도 인종문제가 민감한 해외에서 현재 제목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해외에서는 <Culinary Class Wars>라는 제목으로 나갔다. 동성애나 성적인 표현처럼 문화권에 따라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른 부분도 있다. <크라임씬 제로> 같은 경우에는 에피소드마다 어떤 부분이 유럽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미국에서는 어떨지 굉장히 세세하게 이야기해준다. 콘텐츠 자체를 바꾸는 게아니라 각 문화권에서 잘 소비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다.

윤현준.

-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은 장면이 있다면.

김수아 풋풋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을 좋아해주시더라. <솔로지옥>에서 손을 잡는 장면을 굉장히 설레는 장면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있다. 한국 드라마도 썸을 탈 때가 가장 재미있지 않나. 그런 영향이 있는 듯하다.

윤현준 <흑백요리사>에서는 여경래 셰프가 심사위원에게 탈락 판정을 받은 뒤 백종원씨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때 안대를푼 백종원씨가 자신이 떨어트린 사람이 여경래 셰프라는 것을 알고선 엄청 놀라고 죄송해한다. 한국에서는 선후배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인데 해외에서는 “심사위원이 도전자에게 왜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추지?” 하고 신기해하더라. 나는 또 그반응을 신기해하며 바라봤다. 자신에게 낯선 장면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 시즌제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의 숙명은 전편과 다른 변주를 주는 것이다. 너무 커서도 안되고또 너무 미미해서도 안되는 변화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나.

김수아 <솔로지옥>은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많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옥도와 천국도가 본질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핫한 지옥’이라는 슬로건 중 ‘지옥’보다는 ‘핫한’이 본질이다. 지옥도와 천국도가 없어도 핫한 출연자들이 있다면 <솔로지옥>을 할 수 있다. 출연자들을 잘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면 무엇이든 새롭게 구성을 해볼 수 있다.

윤현준 우리나라에서는 예능 시즌을 계속 이어가는 게 굉장히 어렵다. 좋게 말하면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예능을 보는 수준이 굉장히 높아서 비슷한 게 계속 나오면 견디지 못한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새로운 걸계속 해봐야 한다는 동기가 생기지만 동시에 굉장히 힘든 지점이다. <흑백요리사>도 시즌1과 시즌2가 달라야 하고, 시즌3도 달라야 한다. 그런데 다르기만 해서는 안된다. 완전히 다르게 만들면 낯설어한다. 그래서 시즌3에서는 흑백이라는 컨셉은 유지하면서 식당 대결을 넣었다. 식당들이 나오면서 팀 안에서 화합이 생기기도 하고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시즌을 얼마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나역시 걱정이 많다.

- 딱 반 발짝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그 반발짝의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윤현준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파릇파릇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잘합의해야 한다. 젊은 PD들은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막 PD 일을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꼭 그렇지 않다. 그런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 젊은 PD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너무 앞서 나갈 때 제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 발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을 통해 “여기까지 가면 시청자들이 낯설어할 것 같다”고 감각할 수있다.

김수아 동의한다. 젊은 PD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다 맞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서로 합의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선후배들이 뒤섞여 나누다 보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같다.

-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현재 어떤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나.

윤현준 지금 넷플릭스에서 <크라임씬> 다음 시즌을 제작하고 있고, <흑백요리사>는 편집 단계다. <크라임씬>은 그보다 조금 늦어져 늦여름에 공개될 듯하다.

김수아 우리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지금은 기존에 해왔던 일일 예능 시리즈를 계속 발전시키려 구상 중이고, <솔로지옥>은 내년 초에 공개될 것 같다. 보통 시즌은 뒤로 갈수록 커플들이 확정되면서 다소 힘이 빠지는데,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너무 재미있어서 설렜다. 우리 PD도 현장에서 보고 너무 좋아서 방방 뛰었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