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에 기여하는 수많은 이들 가운데 극장과 가장 닮은 환경에서 일하는 스태프는 VFX 아티스트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노동은 어두운 곳에서 이뤄져서 빛을 발한다. 깜깜한 방 안에서 모니터를 노려봐야지만 VFX 숏을 정밀하게 세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낮의 햇살이 말끔히 차단된 덱스터스튜디오 복도와 그 끝에 자리한 홍정호 VFX 슈퍼바이저의 작업실은 그 표본이다.
극야를 밝히는 건 상패들이다. 지난 9월에도 하나가 추가되었다. 제8회 대전특수영상영화제의 일환으로 개최된 DFX OTT어워즈에서 <군체>가 기술상 부문 대상을 받았다.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든 홍정호 VFX 슈퍼바이저는 좀비가 된 원숭이들을 개체별로 모델링하고, 감염자들을 엮는 점액성 물질을 구현하고, 모션 캡처를 적용한 군중 신을 다듬는 등 <군체>의 VFX를 도맡아 극 중 재난 사태를 생생하게 시각화했다. <어쩔수가없다> <기생충> <1987> 등 굵직한 작품들의 시각효과를 담당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의 이름은 이제 넷플릭스의 엔딩크레딧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2020년 공개된 시리즈 를 시작으로 영화 <승리호> <정이> <계시록>,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 <지옥> 시즌2 등의 VFX를 그가 책임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한다
홍정호 슈퍼바이저는 “덱스터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작품들은 최고의 퀄리티로 완성한다는 목표”로 임한다고 운을 띄웠다. 그런 그에게 넷플릭스와의 만남은 신선한 도전이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초창기에는 VFX 역량을 입증하기 위한 테스트에 응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일부 VFX 업체에 합성, 라이팅, 렌더링 등의 과제를 줬고, 이를 완수한 덱스터스튜디오가 능력을 인정받으며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는 후문. 덕분에 홍정호 슈퍼바이저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드라마 참여가 늘어났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준비된 콘티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신을 촬영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에피소드가 여럿인 드라마는 주요 시퀀스 중심으로 콘티를 짜기 때문에 VFX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넷플릭스 또한 완성도 높은 VFX를 추구했다. 충분한 퀄리티를 갖출 수 있도록 일정과 예산을 조율할 수 있었다.”
대작의 경우 100명이 넘는 인원이 VFX에 투입되기도 한다. 그 모두를 통솔해 파트별로 일감을 부여하고, 결과물을 컨펌하는 슈퍼바이저의 여정은 대본을 검토하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떤 신에 VFX가 들어가야 하는지 분석하고, 제안하고, 감독과 계속해서 교류하며 VFX 숏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동안 미술감독이나 소품감독 등 주요 스태프들과도 소통한다. 실제 세트를 제작하는 신과 VFX가 적용되는 신 등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촬영감독과는 프리비즈(pre-visualization)를 위한 로케이션 헌팅에 나서기도 한다. 공간을 3D로 스캔해보거나 카메라를 움직이며 VFX 신을 구상하는 것이다. 보통 VFX는 후반작업에 국한한다고 비치는데, 슈퍼바이저는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받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동행한다.”
홍정호 슈퍼바이저와 이 과정을 거듭한 파트너로 연상호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영화 <정이>로 처음 연을 맺은 뒤 <계시록> <얼굴> <군체>,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 <지옥> 시즌2로 내리 합을 맞췄다. 그에게 연상호는 “감독이라는 직책을 잘 이해하는 창작자”다. “머릿속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다 들어 있어 그걸 스태프들에게 제시할 줄 알고, 새로운 시도에도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금은 마이너한 취향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측면에서도 홍정호 슈퍼바이저와 잘 맞았다. 일례로 <기생수: 더 그레이> 때는 컨셉아트부터 협업했는데, 상모 돌리는 동작으로부터 크리처의 자유롭고도 위협적인 상체 모션을 착안하기도 했다. <정이>의 라스트신을 위해 함께 산을 탄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로봇이 된 정이(김현주)가 태양을 마주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새벽같이 정상에 올라 일출을 봤다. “그때 찍은 풍경은 그대로 살리고, 로봇은 VFX로 재구성했다. 캐릭터의 감정이 고스란히 표현된 엔딩이라 만족스러웠다.”
상생을 꿈꾸며
이들의 차기작은 연상호 감독이 기획하고 각본을 쓴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타미야>다. 2027년 공개를 목표로 하는 이 작품의 연출은 가키모토 겐사쿠, 나카가와 가즈히로 감독이 맡는다. 부제로 등장한 ‘타미야’는 원작에서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와 대립하는 고등학교 교사로, 인류와의 공존을 고민하는 기생수. 연상호 감독은 “매력적인 빌런”인 타미야가 “원작 <기생수>를 단순한 소년 영웅 만화가 아닌 깊이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준 캐릭터”라 소개하기도 했다. 원작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되는 이 작품은 일본 감독이 연출하고, 일본 배우들이 출연하는 만큼 홍정호 슈퍼바이저도 일본 출장을 다녀온 참이다. 신작을 통해 국내 현장과는 다른 시스템을 경험하는 중이다. 일본 스태프들이 기대하는 VFX와 한국 스태프들에게 자연스러운 VFX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타미야라는 인물이 인간과 기생수의 공존을, <기생수: 타미야>라는 신작이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추구한다면, 홍정호 슈퍼바이저는 극장과 OTT의 상생을 바라고 있다. 다수의 구독자가 그러하듯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OTT와 친해졌다고 돌이킨 그는 영화인으로서 품어온 속엣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집에서 즐길 수 있어 흥미를 느꼈다. 관객도 OTT 플랫폼에 익숙해지면서 극장 영화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극장과 OTT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 같이 사랑받기를 꿈꾼다.”
ITEM
행운의 키링
“<기생수: 타미야>를 함께하는 일본인 스태프가 한국인 스태프들에게 선물해준 키링을 책상에 올려두고 일하고 있다. 그때 들은 설명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복을 가져다주는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기생수: 타미야>를 작업하는 동안에도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