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은 리듬의 예술이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 오직 운전대를 손에 쥔 자만이 영화 속 여정의 리듬을 결정할 수 있는 법이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흐름이 끊긴다’거나 ‘흐름이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도 리듬을 다루는 편집 영역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나영 편집감독은 한국영화·드라마 업계에서 오랫동안 마법을 부려왔다. 컷의 길이,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간격, 반복과 생략을 통제하면서 드라마적 긴장감을 고양시켰다. 날렵한 장면전환과 사건 위주의 길을 만들어 서스펜스를 높인 <레이디 두아>, 전 지구적 흥행 이후 후속작에서 대중의 이해를 맞추기 위해 친절하게 해석해나간 <오징어 게임> 시리즈, 연쇄적인 블랙코미디와 풍자를 여유롭게 연결한 <닭강정>, 우주의 광활함과 VFX의 실험적 시도에 초점을 맞춘 <승리호>까지 많은 작품이 남나영 편집감독의 손 안에서 리드미컬하게 재탄생했다. 다시 말해 남나영은 그에게 주어진 창작의 세계를 다시 빚고 세공하면서 촬영 다음 단계의 창작을 펼친다. 장면의 순서와 변곡점을 고민하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검은 고양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리 편집실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공중에 띄웠다.
어떤 장면을 어떻게 보여줄까
편집은 완성된 장면을 이어 붙이는 일만은 아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화면을 상상하며 흐름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승리호>처럼 VFX가 중요한 작품이 그렇다. 가장 공들여야 하는 CGI 작업 시간을 고려하여 편집을 선행할 때면 오직 시각적 상상을 비롯하여 감독과 상세하게 단계별로 나눈 논의에 따라 편집을 진행한다. 이런 케이스는 쉬운 경우는 아니다. 더욱이 CG, VFX 등 기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조성희 감독이었기에 머릿속 청사진이 더 섬세하게 공유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통해 개인적 교감을 쌓는다. 편집은 정확히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감독의 취향을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대화 과정에서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운다. (웃음) 조성희 감독과도 많이 싸웠다. 작품을 같이할 때마다 싸운다. 그렇기에 <승리호>처럼 집념이 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집감독은 어떤 기준으로 장면을 선택할까. 아름다운 미장센, 밈으로 선택받을 만한 후킹 신, 화려하고 웅장한 장면…. 영화의 한가운데 장면들이 살아남는 데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남나영 편집감독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개연성이다. 배우의 호연이나 훌륭한 심미성도 전체 완성도에 필요한 요소지만 전체 내러티브의 균형을 해친다면 과감히 선택하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이 원칙은 이어졌다. 특히 대대적인 흥행을 거둔 시즌2에서부터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이해도와 시선을 평균화할 편집 방식이 필요했다. “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시즌3는 보다 친절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시청자들이 마지막 시즌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게임도, 관계도도, 서사의 흐름까지도 그 사이에 걸리는 게 없어야 했던 이유다. 특히 한국의 게임 규칙이나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어렵지 않게 이해되어야 했다. 러닝타임 안에 정보를 압축해야 하는 영화와 달리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줄 수 있어 가능했다.”
자유롭게 장면 사이를 넘나들며
남나영 편집감독의 집념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바로 <레이디 두아>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작품이 지닌 목표와 색깔을 선명히 이뤄내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김진민 감독에게 딱 열흘만 달라고 말했다. 열흘 동안만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사라 킴(신혜선)의 과감한 선택과 예측 불가한 충동성을 흥미롭게 드러내기 위해 편집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홀로 남은 작업실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리듬을 찾아냈다. 서정적인 드라마적 속도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문법이, 친근한 거리감보다는 의구심 넘치는 거리감이 작품에 적합한 박자를 완성할 거라고. 그렇게 <레이디 두아>는 주인공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신과 사건, 수사의 흐름이라는 어두운 물음표를 따라가도록 재창조됐다. 이야기의 위치와 순서, 정보의 범주를 변형하니 장르적 결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장면 사이에 묵언된 흐름을 조용히 캐치한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변주다.
남나영 편집감독은 이를 재창작이라고 부른다. “완전한 창작은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몫에 가깝다. 편집감독은 그들이 만든 것을 갖고 재창조하고 재해석하는 게 일이다. 편집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이미 존재하는 장면들 가운데 어떤 것을 남기고, 무엇을 뒤로 보내고, 어디서 이야기를 끊을지 계속해서 선택하면서 가장 좋은 버전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감독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십분 이해하면서도 최대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 남나영 편집감독에게 편집은 단순한 기술보다는 해석에 가깝다.
넷플릭스 작품들을 함께하면서 그는 전 세계적 이목을 받았다. 더욱이 올해에 그는 프랑스 칸에서 열린 AI 영화제 ‘WAIFF Cannes 2026’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 국경을 가로질렀다. “<오징어 게임>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전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이 고정된 넷플릭스여서 가능했던 것 같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석 작가의 <문유>를 원작으로 한 중국영화 <문맨>이 제작되었는데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팬이어서 내가 편집한 모든 영화를 봤다고. <문맨>의 편집을 모니터해줄 수 있겠느냐고. 보통 모니터링이라고 하면 몇 가지 디테일한 피드백을 주지만 나는 아예 편집 버전을 두 가지로 나눠서 보냈다. 사실상 편집을 두번 새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새로운 단계로 확장을 더한다.”
ITEM
아시아필름어워즈 선물
“<악마를 보았다>를 작업하고 아시아필름어워즈에서 편집상(Best Editing)을 받았을 때 함께 선물로 받은 와인병. 위에 새겨진 상패를 뜯지 않아도 되도록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이때 이 상을 받은 게 참 영화적이다. 수상 소식이 미리 들려오지 않아 나는 내가 수상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통역을 위해 동행했던 친구는 웃으며 ‘술 마시고 있을 테니 시상식 빨리 끝내고 오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웬걸.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것 아닌가. 나는 구두도 마련하지 못해서 무대 위에서 딱딱딱 소리가 울리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극적인 순간이라 작업실에 잊지 않고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