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 사운드 슈퍼바이저(이하 김석원 슈퍼바이저)는 “1985년부터 오디오 밥을 먹은”(김석원) 한국영화 사운드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5년 사운드 스튜디오 ‘블루캡’을 설립한 뒤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접속>(1997)부터 <헤어질 결심>(2022)까지 수많은 한국영화의 음향이 김석원 슈퍼바이저의 손끝에서 빚어져왔다. 극장 관객들의 귀를 책임져온 김석원 슈퍼바이저가 넷플릭스 코리아와 협업한 이래 넷플릭스 시청자들 역시 수혜를 입고 있다. 최근 공개된 <스캔들>을 비롯하여 넷플릭스 코리아의 대표적 시리즈인 <지옥> 등이 그의 작업물이다.
김석원 슈퍼바이저는 “가정에서든 차에서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어디에서나 최적화된 사운드를 시청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최적의 규격을 끝없이 탐색 중이다. 그 비밀을 듣기 위해 파주에 있는 블루캡을 직접 찾았다. 인터뷰 자리에는 김현준 블루캡 팀장이 함께하여 사운드 작업의 과정을 더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들려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넷플릭스 콘텐츠의 사운드 작업을 위한 믹싱룸이 별도로 있다는 점이었다. 극장용 영화의 작업실과 따로 마련된 공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운드 믹싱을 위한 가장 좋은 환경이란 이 콘텐츠가 재생될 환경을 최대한 그대로 재현하는 것”(김석원)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TV모니터를 활용하고, 모니터와의 거리도 가정 환경과 유사하게 조성했다. “극장용 믹싱룸에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작업하면 실제 관람 환경에 비해 소리의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부터 거실 TV까지, 최대한 다양한 상영 공간을 가정한 곳에서 사운드를 시뮬레이션하는 편이 가장 정확하다.”(김석원)
최적의 규격을 찾는 과정
영화·시리즈 제작에서 사운드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대사, 음악, 효과다. 사운드 후반작업은 시청자들의 귀에 대사와 효과음이 적절하게 들리도록 균형을 맞춘다. 음악과 음향의 융화를 이루게 하고, 화면과 서사에 가장 적합한 소리를 찾아 삽입하고, 볼륨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사운드 슈퍼바이저는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며 작품의 전체적인 컨셉과 장면별 세부에 맞춰 소리를 총망라한다. 예를 들어 <지옥>을 작업할 땐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지옥 사자의 목소리를 중성적이면서도 두렵고 전지전능한 톤으로 만들며 발소리 하나하나를 새로이 창조”(김석원)하며 작품의 핵심을 다듬었다. “사운드 슈퍼바이징은 콘텐츠의 후반작업 중에서도 마지막이다. 말 그대로 콘텐츠의 모든 조각을 하나로 완성하는 일”(김현준)인 셈이다. 블루캡은 이 전반적인 음향 후반작업을 분업화하여 모두 진행한다.
“넷플릭스 콘텐츠의 음향 관련 규격과 기술 수준은 일전의 방송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르다. 훨씬 엄밀하다. 여타 OTT 콘텐츠보다도 선두에 있는 수준”(김석원)이다. 넷플릭스 콘텐츠의 소리는 시청자들의 모든 관람 환경을 고려한다. 최고급 홈 애트모스 환경에서도 최대한의 품질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지옥>은 국내 OTT 환경에 애트모스 음향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사례다. 반대로 스마트폰을 최소 음량으로 시청해도 세세한 소리가 빠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대사의 볼륨 하나까지도 사전에 지정된 레벨로 만들어야 한다. 사운드디자인에서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품질은 반드시 지키게 되어 있다.”(김석원)
시청자를 위해 소리의 규격을 지키는 일은 국내 영화·영상 업계의 전반적인 수준도 높였다. “한국 영화산업의 사운드 작업엔 정확한 기준이랄지 규정이 없었다. 각 스튜디오의 믹싱룸에서 자체적으로 노력하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상영이 극장으로 제한되다 보니 다양한 관람 환경을 고려할 필요도 적었다.”(김석원) 다만 넷플릭스의 시스템이 산업 전반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소리는 기본적으로 물결과 같기에 일직선의 형태로 크기를 정할 순 없다. 다만 어느 시간 동안에 어느 수준의 물결이 왔다 갔다 하는지는 조정할 수 있다.”(김석원) 넷플릭스 콘텐츠의 작업을 시작하며 국내 사운드 산업도 넷플릭스가 제안한 표준을 맞추게 됐고, 표준에 맞추기 위한 새 기술과 기업들도 생겨났다. “넷플릭스 내에도 오디오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팀이 있다. 대사가 과연 몇 데시벨이어야 최대한 다양한 관람 환경에서 잘 들릴 수 있을지 계속하여 함께 고민”(김석원)하는 중이다.
국제로 뻗어가는 기반
“할리우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듣는 귀가 바뀌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김석원) 넷플릭스 시스템의 도입을 통한 음향 작업의 규격화는 국내 영상·영화 산업이 국제표준을 따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어떤 언어로 재생하든 동일한 품질의 음향이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력의 측면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처럼 고가의 하드웨어가 필수적이기보다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소프트웨어가 작업의 중심이 됐다. 다소 보수적인 작업 환경의 할리우드는 여전히 하드웨어를 통한 물리적 작업을 선호하지만 한국의 새로운 사운드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에 더 친밀하다. 1천개가 넘는 소리의 트랙을 다루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김석원)
김현준 팀장은 넷플릭스가 사운드 업계 종사자들에게 탁월한 데이터베이스인 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예전엔 사운드 작업의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블루레이를 구매한다거나 극장에 가야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생긴 이후엔 할리우드영화의 가장 좋은 소리를 손쉽게 찾아 들을 수 있게 됐다.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주요 배경이 되는 것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작업한 작품에 대해 일본이나 미국, 중국에서 피드백이 온다. 우리의 무대를 전세계로 넓힐 수 있도록 도운 것이 넷플릭스다.”(김석원)
ITEM
AVID S1(사운드 믹싱 기기)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김석원 슈퍼바이저는 이 기기의 페이더(손으로 조작하는 믹싱 장치)만으로 영화의 주제를 바꾸는 분이다. 페이더로 음악의 볼륨, 공간음의 비율 등을 조절하며 한편의 영화를 스케치하고 완성하기까지 한다.”(김현준) 아주 특별한 기기는 아니지만 장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기능은 무한해진다. 김석원 슈퍼바이저는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 작품을 예로 들어 믹싱 작업을 시연했다. 로봇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로봇의 기계음을 키울 것인가, 사람의 비명을 키울 것인가. 이 세밀한 소리의 차이만으로도 장면의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됐다.



